장준하 루도비코 "박정희 씨에게 '너는 만주군 장교…'라고 면박한 독립군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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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루도비코 "박정희 씨에게 '너는 만주군 장교…'라고 면박한 독립군 선생"
  • 방진선
  • 승인 2019.08.1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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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루도비코 선종 44주기

존경하는 장준하 루도비코 선생님(張俊河, 1918년 8월 27일 ~ 1975년 8월 17일) 선종 44주년! 목하 한일 경제 전쟁의 와중에 횃불처럼 떠오르는 그 사람!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함석헌, <그 사람을 가졌는가>1947.7.20)

제국일본 강점기의 광복군 항일 독립운동과 <사상계>를 통한 지식인 의식개혁운동, 박정희 정권기의 반독재ㆍ민주화ㆍ통일 운동에 五體投地한 선생님의 구국 장정(長征). 바로 그 사람, 장준하 선생님!

"그는 사색인으로서 행동하고 행동인으로서 사색하는 지성인이었다. 그는 이론과 행동을 이율배반이 아닌 동일선상에서 일체화시킨 도덕인이었다. 그는 많은 지식인들이 순수하는 이름의 수인이 되어 보신에 전념할 때 정의를 위해서는 일신을 홍모처럼 버리고 일어서는 자유인이었다. 그는 금지된 동작을 맨 먼저 시작한 위대한 혁명가였다. 그는 젊은이들이 내출혈의 아픔을 감내할 때 고난의 면류관을 함께 쓰고 고행길에 오른 선지자였다."(김삼웅 <장준하 평전> )

박정희 씨에게 “너는 만주군 장교…”라고 면박한 독립군 선생! 세번의 투옥을 겪은 후 1975년 1월 8일 협심증과 간경화증이라는 중병의 병상에서 발표한 비판과 경고의 <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우리 민족에게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 지난 72년 7월 4일에 일어났습니다. 남북이 민족문제를 자주 평화통일로 발전시킬 것을 합의했다는 이른바 ‘남북 공동성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5·16 군사정변 이후 귀하의 정치노선에 계속 비판적이던 본인도 벅찬 감격으로 통일을 위한 남북대화가 기필코 성공되기를 기원하면서 귀하가 취한 역사적 결단에 찬사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의 모든 기대와 감격은 그해 10월 17일 이른바 ‘유신’이란 이 름으로 무참히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국헌을 준수한다고 서약한 귀하 스스로가 그 선서를 헌신짝 같이 버리고 헌법기관의 권능을 정지시키고, 헌법제정 권력의 주체인 국민을 강압적인 계엄 하에 묶어놓고 ‘국민투표’라는 요식행위를 통해 제정한 소위 ‘유신헌법’으로 명실상부하게 귀하의 일인독재 체제만을 확립시켰습니다. (·····) 
1)파괴된 민주헌정의 회복을 위해 대통령 자신이 개헌을 발의하되 민족통일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완전한 민주헌법으로 하여 앞으로 올 모든 집권자들이 규범으로 삼게 할 것.
2)긴급조치로 구속된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전원 무조건 석방할 것.
3)학원·종교·언론 사찰을 즉각 중지할 것.
4)자유언론에 대한 비열하고 음흉한 탄압정책을 즉시 철회할 것.
5)정부의 경제적 실책으로 가중되는 당면한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획기적인 경제정책을 강구할 것.
6)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이상적이고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통일정책을 수립 추진하되 민중의 대표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 "

(김삼웅 편 <민족·민주·민중선언>, 254~256쪽)

월간 사상계를 창간한 사상가 선생의 어록을 찾아 새깁니다.

동포론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 9,3) (1944년 7월 일본군 탈영후 2356㎞(6000리)를 걸어 쓰촨성 충칭의 광복군 에 합류하기 전 부인 김희숙(로사, 1926∼2018)씨에게 보낸 편지)

독립투쟁론

"무기라고는 목총도 없는 우리 광복군입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무기를 가졌습니다. 조국을 찾아야 한다는 목표물을 똑바로 겨냥한 젊음이란 이름의 무기입니다. 그 무기는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슬 것입니다. 우리의 피가 식기전, 우리는 싸워야 할 것이 아닙니까?"(<돌베개>1971년)

조국론 

"조국애를 몰라서 조국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고, 조국을 귀중하게 여기지 못하여 우리의 선조들은 조국을 팔았던가. 우리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련다. 나는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 이 가슴의 피눈물을 삼키며 투쟁하련다. 이 길을 위해 나는 가련다. 나의 인생의 과정은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라는 이정표의 푯말을 꽂고 이제부터 나를 안내할 것이다."(같은책)

선조론 

“나는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이 수기 속에서 중언부언했다. 왜냐하면 내가 광막한 중원 대륙 수수밭 속에 누워 침 없이 마른입으로 몇 번이나 되씹었고 또 눈 덩어리를 베개로 하고 동사(凍死)의 기로에서 밤을 지새우며 한없이 울부짖었던 이 말이 곧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못난 조상에 대한 한스러움과 다시는 후손에게 욕된 유산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우리의 단호한 결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같은책)

 

일본론 

"참으로 못난 조상들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우리는 후일 우리의 자손들로부터 또다시 「못난 匹上(필상) 들이었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도 오늘의 현실을 바르게 파악해야겠다. 2차대전 후 한국이 독립한 것은 연합국이 군국주의일본의 부활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본의 판도를 축소시킨다는 연합국의 전쟁처리 방안의 결과였다. (사상계 13권,10-11호 - 32쪽)

속칭 토착왜구론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까지 통역이 아니면 일선지구를 돌아다니는 아편장사나 일군위안소의 포주들까지도 하루아침에 광복군 모자 하나씩을 얻어쓰고 독립운동가, 망명가, 혁명가를 자처하는 목불인견의 꼴이었다."(돌베개)

생사론 

"이 지구상에 수억의 많은 가장들이 살다가 죽었다. 그런데 죽을 때마다 모든 가장들이 그런 걱정을 했을 것이다. 네가 죽고 나면 내 가족은 어떻게 될까. 네가 죽고 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지 한 번 더 생각해 봐라"

사회론 

"우리 사회는 힘이 제일이요, 힘이 곧 정의요, 힘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불행하고 부조리한 생각에 빠졌다. 관민을 막론하고 권력만능, 권력숭배사고에 빠졌다. 힘은 정의를 가져야하고 정의는 힘을 가져야 할터인데 정의에 힘을 줄 수 없기 때문에 힘이 정의라고 떼를 쓰게 되었다."

"신념이란 우리 인간이 가질 수 있고 구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생명력이라는 것을 나는 체험을 통해 확신했다. 나의 신념은 앞으로 계속 날 지배하고, 또 내가 속해 있는 단체를 지배할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도 나의 신념을 필요로 할 것이다."(돌베개)

청년론 

"젊은 세대는 나라의 기둥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잘못을 꾸짖기 전에 우선 나를 꾸짖는 충정이 있어야 하겠고, 그들의 그릇됨을 벌하기 전에 이를 시정하여주는 친절이 었어야 하겠고, 고난 속에서도 오히려 피어날 환경을 마련해 주어야 하겠습니다."(1956년 4월호)

 

선생의 영결미사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 말씀 

“장준하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더 새로운 빛이 되어 앞길을 밝혀주기 위해 잠시 숨은 것뿐입니다”

추모비 비문

"여기 이 말없는 골짝은 빼앗긴 민주주의 쟁취, 고루 잘 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평화, 통일운동의 위대한 지도자 장준하 선생이 원통히 숨진 곳. 뜻을 같이 하는 젊은이들이 맨 손으로 돌을 파 비를 세우니, 비록 말 못하는 돌부리 풀뿌리여! 먼 훗날 반드시 돌베개의 뜻을 옳게 증언하리라"

장준하 루도비코 선생님 !

총칼없는 경제전쟁을 치르는 저희가 선생님의 사상과 행동을 성찰하며 위기를 도약과 화합의 기회로 삼아 극복하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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