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천주교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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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천주교인이요”
  • 김유철
  • 승인 2016.06.10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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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암살>에서. 김원봉과 김구.

[김유철 칼럼] 

약산 김원봉! 영화 <암살>에서 사람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울림을 주었던 김원봉의 말은 대사가 아니라 실제로 그가 했던 말이다. 그가 무장항일운동 조직단체인 의열단과 상해임시정 부 그리고 해방이후 월북하여 국가검열상 등을 통한 어떤 활동보다 많은 이의 뇌리에 남아 있는 미스터리한 그의 한마디는 “나, 밀양사람 김 원봉이요.”란 말이다. 이 말은 ‘민증까는’ 말이 아니라 오래전 나자렛 청년이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통해 밝히던 자기 정체성의 선언으로 접근 해야 한다. 그가 힘주어 말하던 ‘밀양사람’은 그에게 과연 무슨 의미였을까?

1996년 체세포 복제기술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과학자들은 이후 줄기세포와 바이오 기술 등 첨단 분야에서 잇따라 성과를 내며 의기양양했다. 이어 영국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5,000만 파운드(약 900억 원)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의회는 한 발 더 나아가 동물 난자에 인간 유전자(DNA)를 넣는 교잡배아 법안을 2008년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를 비롯한 법안 찬성론자들은 파킨슨병 등을 치료할 수 있는 줄기세포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지만 데스 브라운 국방장관, 루스 켈리 교통장관, 폴 머피 웨일스 장관은 성명을 내고 “인간과 동물의 교잡배아 법안을 통과시킨 영국의회는 마치 지뢰를 갖고 노는 아이들과 같다.”고 말했다. 그들은 현직 각료였지만 그 법안에 대해 같은 노동당 소속의 영국 총리에게 사표를 던지며 말했다. “나는 천주교인이요.”

20대 국회의원 총선이 요란하게 지나간 시점에서 입법기능을 하는 국회와 천주교회에 대한 교차점을 생각한다. 1996년 제15대 국회 때부터 2016년 임기를 마감한 제19대에 이르기까지 국 회에서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이 매번 발의되고도 통과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심지어 주 교들이 연판장을 돌리다시피 하는 사형제도 폐지 법안에 대하여 “나는 여당으로서” 혹은 “나는 야당으로서”가 아니라 “나는 천주교인”으로서 찬성 혹은 반대하는 경우를 단 한 번도 보질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가 말하는 평신도에 의한 자발적 전래를 자랑하는 한국천주교회, 죽음으로 신앙을 증거함을 자랑하는 순교자의 후예인 한국천주교회의 신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국회의원 총선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교계언론들은 발 빠르게 이른바 ‘독실한 신자’ 의원들에 대한 기사가 그득하다. 그들이 ‘독실한 신자’여서 당선이 되었다는 것인지, 당선되어서 ‘독실하다’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사실은 ‘신자-믿는 자’가 아니라 어쩌면 그냥 천주교회를 다니는 ‘교우’일 뿐인 경우가 수두룩하다. 

위에 말한 사형제도를 제외하고도 지난 몇 년 간 주교회의와 그 산하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 등지에서 사회문제에 대하여 결정하여 권고하고 성명서를 통해 말한 일들을 어떻게 이행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같은 주님을 고백하지만 개신교인은 차치하더라도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에 그다지도 많다는 천주교인들이 과연 그러한 일들 앞에서 ‘천주 교인이라는 정체성’에 비추어 판단한 일들이 있는지!

ⓒ한상봉

우리는 신앙고백 하듯이 돌이켜 생각해야 한다. 사실 주교회의는 주교회의대로, 교구는 교구대로, 사제단은 사제단대로 스스로와 신자들에게 호소한 많은 일들이 있었고 현재도 진행 중인 일들이 수두룩하다. 제주해군기지와 평화의 섬, 세월호 참사에 대한 조사, 노동법개악, 국정교과서, 핵발전소를 비롯하여 그리 멀지 않은 시간 속에도 4대강 난개발 사업, 줄기세포 연구중단, 새만금 방조제, 용산참사와 평택 대추리 등등에 대하여 “나는 천주교인”으로서 그 일들의 찬·반을 밝힌 정치인, 관료, 학자, 시민단체, 신자가 과연 있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만 “나는 천주교인”으로 모여 있는 이러한 공동체와 그 공동체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는 누구이며, 뒤집어서 그러한 예수를 고백하는 공동체와 구성원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고심해 봐야한다.

쇼핑하듯이 여러 종교 중에 하나를 선택한 신앙, 도토리 키재기지만 그나마 나은 것을 선택한 신앙, 남들이 가니 덩달아 시장 가듯 다가온 신앙, 무언가 엔틱하고 무언가 부띠끄하고 무언가 럭셔리한 듯 다가온 신앙, 스펙 관리하듯 명함 한 구석에 얹혀 있는 신앙. 그곳에서는 단지 “나, 성당 다녀요.”가 간헐적으로 나올 뿐. 어떠한 경우에도 “나, 천주교인이요.”라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나올 수도 없다.

우리는 순교자들의 후예라고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순교성월이면 각 본당마다 국내성지는 물론 해외성지까지 다니지만 정작 순교는 순교자들의 팔자려니 여길 뿐 순교 없는 시대에 태어난 것에 대한 안도만 누릴 뿐이다. 그러나 순교는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나, 천주교인이요.”라고 선언하는 일이다. 일상에서. 그리고 결국 칼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내가 천주교인”임을 거듭 밝히는 일이다. 그것이 예수의 제자됨이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들 뿐만 아니라 신자 한 명 한 명에 이르기까지 어떤 종교를 갖고 있느냐보다 각 종교의 가치를 일상에 어떻게 실현하느냐를 신앙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모 두의 중요한 몫이다. 그러기에 신앙은 어느 종교나 종교 창시자의 이념과 가르침이 박제된 도그마가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진행 중인 삶이며 선택이다. 그것이 그 사람을 신앙인이게 하며, 같으면서도 다른 선택이 그를 천주교인으로 식별하게 만든다.

“나 밀양사람 김원봉이요.”라는 말은 허투루 나오는 말이 아니다. 그가 당시 독립운동 메카 중의 메카라는 ‘밀양’을 자기 정체성의 반석으로 삼았듯 천주교인의 반석은 ‘죽음과 부활’이어야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그 길이 천주교인에게 유일한 길이다. “나는 천주교인인가?” 
 

김유철
시인. 한국작가회의. <삶 예술 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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