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잠자고 있던 군국주의 유령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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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잠자고 있던 군국주의 유령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 양승국 신부
  • 승인 2019.08.0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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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신부 묵상
사진출처=BBC.com
사진출처=BBC.com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4주년을 앞둔 지금, 패전국인 독일과 일본은 너무나 현격한 태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독일 지도자들은 매년, 아니 기회 닿는 대로, 피해를 입은 이웃 나라를 찾아가 눈물로 사죄하고 있습니다.

“사망자를 기리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 왔습니다. 독일인과 독일의 이름으로 피해자들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큰 부끄러움을 느끼며, 진심으로 용서를 청합니다. 저희가 희생자들의 묘소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해서 여러분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쟁 중에 독일이 저지른 범죄는 사죄나 배상으로 완전히 지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압니다.

과거는 지울 수 없기에 계속 사죄를 하고자 합니다. 사죄는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죄의 진정성은 계속 전달되어야 합니다. 피해국들에 대한 사죄는 현재와 미래에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피해국의 세대도 교체됩니다. 사죄는 과거를 모르는 새로운 세대에게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반면 아베의 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안 그래도 쓰라린 우리들의 가슴에 굵은 소금을 계속 뿌려대고 있습니다.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그런 망언들을 계속할 수 있는지, 그의 사고 구조, 뇌구조를 세밀히 분석해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세계 역사 기록에 정확히 기재되어 있는 침략과 강점, 강제 징용과 위안부 존재 조차 부인하니,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따로 없습니다.

“침략의 정의는 학계나 국제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입니다. 위안부는 강제 납치되어 온 사람들이 아니고 돈 벌려고 온 직업여성들입니다.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미 종지부를 찍은 한일청구협정을 한국이 일방적으로 위반하고 있습니다. 국교 정상화의 기반이 된 국제 조약을 깨트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말끔히 청산하고 진정한 독립을 이루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대법원이 내린 강제 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은 그런 흐름의 한 과정입니다.

일본은 1965년 졸속으로 처리된 한일청구권 협상으로 과거사가 다 해결됐다는 입장입니다. 독일은 전쟁 피해국들과의 협약을 관계 개선을 위한 기회로 보는데 비해, 일본은 협약 하나 맺었다고 모든 것이 이제 끝났으니, 더 이상 과거사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입니다.

기본적인 인간으로서의 소양과 양심을 갖춘 독일 지도자들의 진정성 있는 반성의 목소리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꽃다운 우리 소녀들의 동심과, 우리 청년들의 미래를 처참하게 짓밟은 일제 군국주의의 잔혹한 만행은 3억불, 5억불, 8억불이 아니라 천억불을 줘도 부족합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저지른 잔혹한 범행은 배상금만으로 해결될 일도 결코 아닙니다. 진정성있는 사죄가 매년, 매번, 틈만 나면, 아침에 눈만 뜨면 반복되어야 마땅합니다. 특히 피해 당사자들에게 직접 이루어져야 마땅합니다.

한국 사법부가 내린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을 아베가 극구 인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배상을 인정하면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긍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 독일은 끊임없이 과거사에 대해 사죄를 거듭합니다. 독일 지도자들은 피해국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관련 행사가 있으면 빠짐없이 참석해서 고개를 숙이고 헌화하고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진정성있는 사과 앞에 주변 국가들도 무릎꿇은 참회자들의 어깨를 두드려줍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사를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감추고자 기를 쓰며 군국주의 국가로 회귀를 꿈꾸는 아베 정권과는 무척이나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아베는 지금 잠자고 있던 군국주의 유령들을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군사대국으로서 태평양을 주름잡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강력히 대응하지 않으면 또 다시 어떤 문제를 야기시킬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마귀 들린 딸의 치유를 간절히 청하는 가나안 여인의 태도는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참으로 큽니다. 여인이 처해있던 상황은 너무나 절박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이 마귀에 들려도 호되게 들렸습니다. 백약이 무효였으며, 증세는 점점 더 심해져만 갔습니다. ‘이러다가 우리 딸 죽겠구나!’하는 생각에 젖먹던 힘까지 다내어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마태 15,2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신앙을 좀 더 성장시키기 위한 마음에서 살짝 뜸을 들이십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15,24~26)

꽤나 모욕적인 말씀 앞에 분노하고 포기할만 한데도 가나안 여인은 단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고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갔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15,27)

가나안 여인의 딸을 향한 극진한 모성애, 당신을 향한 강한 신뢰심과 믿음에 탄복한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치유의 은총을 베푸십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15,28)

오늘 백척간두에 선 우리나라, 우리 백성에게도 꼭 필요한 마음이며 믿음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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