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수 신부 "피서보다 중요한 평화 ... 배부른 자들의 사치스런 구호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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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춘수 신부 "피서보다 중요한 평화 ... 배부른 자들의 사치스런 구호 아니다"
  • 하춘수 신부
  • 승인 2019.07.30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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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종전선언 평화정착 광화문 미사(7월 29일) 강론

안녕하십니까? 하춘수신부입니다. 남쪽 끝 창원시 진해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먼 길 마다하지 않으시고 이곳 광화문 광장을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자 모여 주신 신부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무더운 여름날 이 자리에 한 마음으로 자리해 주신 수도자님들과 교우 여러분,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들께도 환영과 감사의 정을 표합니다.

지난 100년 동안 이 땅 한반도는 결코 평화롭지 못한 시간들을 살아왔습니다. 일제강점기 36년동안은 서슬 퍼런 식민통치로 온 겨레가 짓밟히고 무너졌습니다. 해방 이후 나라는, 곧바로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미소군정과 6·25전쟁으로 또 다른 고통스런 시간들을 보내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엊그제 7·27 정전협정 66주년을 맞이한 지금, 아직도 우리는 불완전한 평화로, 때에 따라 변화하는 국내외 정치적 상황에 따라 종횡무진하고 있습니다. 

어렵사리 6·15선언과 10·4선언을 통해 평화를 위한 기틀이 마련되었지만, 지난 10년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에서 이러한 노력들마저도 깡그리 허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명박 정권은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고, 박근혜 정권은 개성공단 가동을 멈추었습니다. 그 결과로 일촉즉발의 전쟁의 공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했고 대북강경조치로 남북 대치상황은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다행스럽게도 2016~17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 정부에서 다시금 평화의 불씨를 지피게 되었습니다. 남북미 정상이 서로 만나 ‘한반도 비핵화’와 ‘체제 보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한발한발 내디디게 되었습니다. 물들어 올 때 노저으라고 하듯,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 왔으니 작금의 평화의 훈풍이 불어 올 때 이 땅의 평화, 완전한 평화, 되돌릴 수 없는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를 이루어 내어야 합니다.
 

사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우리 사제단은 지난 5월과 6월 월례모임에서 다시금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미의 움직임이 재개되도록 한 마음으로 기원하고자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월요미사를 이곳 광화문에서 봉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왜 우리 사제들은 이 광장에 나와 평화를 외치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평화의 고리는 너무나도 위태롭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극도의 긴장과 공포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가슴을 쓸어 내렸는지 모릅니다. 평화는 결코 배부른 자들의 사치스런 구호가 아닙니다. 평화는 곤 온 민족의 생존의 문제, 사활의 문제입니다.

누구나 평화를 말하고 평화를 바랍니다. 심지어 총칼을 들고 있는 군인도 ‘평화’를 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바라는 평화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바라는 평화는 결코 아련한 추상명사가 아닙니다. 단지 현재 전쟁의 부재만을 평화라고 말하지 않으렵니다. 남북미 정상들이 서로 만나고 손잡고 대화하듯이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만날 수 있는 평화를 바랍니다. 헤어진 가족들이 만나 서로 부둥켜 안을 수 있는 평화, 갈라놓은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향한 경멸과 불신의 총구를 거두고 벽없이 만날 수 있는 평화를 바랍니다.
 

사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우리는 더 이상 불완전한 평화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뜨면 사라지는 허망한 연기 같은 일시적 평화가 아니라 항구하고 지속적인 평화,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평화를 바랍니다. 이러한 완전한 평화란 남과 북의 평화통일을 통하여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선 우리가 이루어 낼 바가 있으니 오랜 ‘정전협정’을 하루 빨리 ‘종전협정’으로 이끌어 내어야 하겠고, 나아가 ‘평화협정’으로 그리고 마침내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정착’으로 나아가야 함을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우리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아왔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무서움에 떨며 살아왔습니까,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했습니까? 이제 여기서 멈추어야 합니다. 멈추고 생명과 상생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평화를 향한 여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직접·간접의 방해와 난관들이 도처에 산재합니다. 강제징용 노동자 보상판결에 반발하며 수출규제에 나서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 아베정권, 중·러 합동훈련으로 독도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뿐만 아니라 한미연합훈련에 불편한 심기를 가진 북한에서도 국내산 쌀지원을 거부하였으니, 복잡하고 얽히고 섥힌 이 문제를 언제 어떻게 다 풀어 낼 수 있을지 그 길이 멀고도 험난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한걸음씩 우리의 길을 내디디어야 합니다. 오늘의 이 한걸음이 미래에 천리길 만리길이 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시다!

 

사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진=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오늘은 마르타 성녀 기념일입니다. 마르타는 주님을 잘 섬기었고 그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마르타는 동생이 자기 일을 돕도록 해달라고 주님께 요청했고 주님께서는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하였다고 하시며 옹호해 주셨습니다. 그렇다고 마르타의 그 일을 부정하지도 중단시키지도 않으셨습니다. 두 자매의 각자의 몫을 다 인정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마리아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집중하는 마르타의 신앙의 행위는 우리에게 신앙의 균형감각을 일러줍니다. 경청하는 신앙행위와 실천하는 신앙행위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마땅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우리는 기도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만으로 멈추지 말고, 평화를 위에 무엇을 실천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평화를 위하여 사제단의 이 미사,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월요미사’에 동참해 주십시오. 이 더운 여름 남들은 피서다 휴가다 하여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신자들이 더 많은 수도자들과 사제들이 여기 모여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드리는 기도는 미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모여 기도한다면 하느님께서 더 큰 일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작은 빗방울이 모여 시냇물을, 시냇물이 모여 강물을, 그리고 마침내 강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가 닿듯이 우리의 작은 소망과 기도, 그리고 실천들이 모여 ‘평화’라는 좋은 성과를 일구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촛불혁명의 기억을 떠올립시다. 박근혜 일당의 국정농단을 심판하기 위해 모였던 하나의 작은 촛불들이 모여 이곳 광화문에서 거대한 바다를 이루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이 기도와 외침도 작아 보이지만 함께 할 때 놀라운 결과가 있으리라 희망합니다.

[출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블로그

하춘수 신부(마산교구 여좌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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