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삶의 신조: 불꽃처럼 일하고 사랑하고"
상태바
빈센트 반 고흐 "삶의 신조: 불꽃처럼 일하고 사랑하고"
  • 방진선
  • 승인 2019.07.29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월 29일: 빈센트 빌럼 반 고흐 선종 129주기

경애하는 빈센트 빌럼 반 고흐 선생님 (Vincent Willem van Gogh, 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 선종 129주기 !

간직하는 네권의 전기와 편지를 꺼내 펼쳐봅니다. 평생의 후원자 동생 테오가 저고리 주머니에서 찾아낸 자살 직전에 쓴 유서, 선생의 일편단심!

“그래, 나의 그림, 그것을 위해 나는 나의 목숨을 걸었고 이성까지도 반쯤 파묻었다”

27세에서 37세까지 불과 10년간 치열한 화가의 길을 추동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언젠가 동료작가가 삶의 신조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고흐는 이렇게 답변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산다는것. 곧 생명을 주고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보존하는 것. 불꽃처럼 일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하게,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것. 예컨대 불을 피우거나, 아이에게 빵 한 조각과 버터를 주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을 건네주는 것이라네.' ”
(한상봉 "가난한 하느님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 의정부교구 주보, 2016.4.20)

이승을 떠난 후에야 찬란하게 빛나며 수집가들의 돈주머니를 불린 수많은 그림들!

생애 마지막 달인 1890년 6월에 완성한 <가셰 박사의 초상>이 100년 후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8,250만 달러에 팔리는 아이러니! 그 가셰 박사가 남긴 고흐 선생의 데드 마스크 !

그토록 친애하던 동생 테오와 나눈 심금의 편지들을 남기고 <별이 빛나는 밤>(1889년)로 하늘의 별이 되어 만인의 가슴 속에 빛나는 고흐 선생!

Three Pairs of Shoes. Picture. Vincent Willem van Gogh
Three Pairs of Shoes. Picture. Vincent Willem van Gogh

가난한 이들의 엄혹한 삶의 그림들!

〈감자먹는 사람들>(1885년) 
〈여자 광부들>(1882년)

“그림을 통해서 나는 음악처럼 위안이 되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 나는 후광으로 상징되던 것, 우리가 우리 자신의 빛깔에서 뿜어져 나오는 참된 광채와 떨림으로 전하고자 하는 그런 영원의 흔적을 간직한 사람들을 그리고 싶구나.”(1888년)

“이 감옥을 없애는 게 뭔지 아니? 깊고 참된 사랑이다. 친구가 되고 형제가 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최상의 가치이며, 그 마술적 힘이 감옥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는 죽은 것과 같다. 사랑이 다시 살아나는 곳에서 인생도 다시 태어난다. 이 감옥이란 편견, 오해, 치명적인 무지. 의심, 거짓 겸손 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1879년 11월)

“나는 언제나 생각한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 너는 숭고하고 굳건한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고, 의지와 지성으로 사랑해야 한다."(1880년7월)

 

그리기를 통해 하느님을 찾으며 죽음을 통해 밤하늘의 별이 된 구도자!

"빈센트 반 고흐의 인생과 작품을 이야기 할 때 ‘하느님‘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빼 놓을 수 없다. 
- - - - -
빈센트는 개인적인 신앙심에 머물지 않고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 옆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편에 서기도 했다. 
- - - -
빈센트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며 몸부림 쳤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이별과 상처뿐이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그림이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정해준 길이라 그 길을 가야만 하느님과 만날 것이라고 믿었다.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알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라면 미래가 불확실하더라도 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 -
자연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몸부림치던 반 고흐는 생 레미에서 밤하늘의 해와 달과 별과 구름, 땅 위의 마을과 교회를 그렸다. 바로 <별이 빛나는 밤>이다. 어둡고 고요한 마을과 달리 밤하늘은 온통 노랑 빛으로 휘황찬란하게 진동하고 있다. 고흐는 별이 떠 있는 밤하늘은 ‘죽음의 세계‘라 여기며 자신도 세속의 고통에서 벗어나 그 별들 중의 한 별이 되고 싶어 했었던 것이었을까.
- - - -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에 가기 위해서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에는 별에 갈 수 없다. 증기선이나 합승마차, 철도 등이 지상의 운송 수단이라면 콜레라, 결석, 결핵, 암 등은 천상의 운송 수단이다.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것은 별까지 걸어가는 게 되겠지.”(1888년 6월 아를, 테오에게)
- - - -
반 고흐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 오히려 죽음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난하지만 열심히 그렸고,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주님이 인도해주는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하지만, 육체의 고통과 울부짖음에 신음하는 불쌍한 영혼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었다. 하느님의 진리를 알고 하느님의 사랑을 절절하게 살아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는 밤하늘의 별을 보고 꿈을 꾸게 되었다. 그는 후회 없이 그 별에 가고 싶었다. 결국, 1890년 7월 29일 새벽 1시 30분 경, 자신의 손으로 종말을 맞았던 것이다."

(박지후, "죽어서 별이 된 화가, 반 고흐" <가톨릭일꾼> 2019.5.27)

박홍규 선생의 <내 친구 빈센트>(1999년, 소나무)에서 고흐 선생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이 책을 쓰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빈센트의 작품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가? 글의 창을 닫으려고 하는 지금 나는 이렇게 답한다. 그는 처음부터 보통사람들을 주제로 보통사람들을 위하여, 보통사람의 그림을 그리겠다고 결심했고 평생 그 서약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보통 인간이면서도 온갖 불행에 굴하지 않고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라고..“ (231~235쪽)

가난과 소외라는 고난을 통해 별(ad astra per aspera)이 되어 빛나는 고흐 선생님!

저희에게 제 나름의 어려운 처지에서도 꿋꿋이 살며 불꽃처럼 일할 수 있는 의지와 더 못한 처지의 이웃과 손길을 나눌 수 있는 사랑의 자비심을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