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는 무엇보다도 저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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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는 무엇보다도 저술가였다
  • 로살리 뤼글
  • 승인 2016.06.09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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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살리 뤼글의 <도로시 데이>-5

"그는 사람들을 혁명 속으로 몰아넣어 질리게 만들기 위하여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혁명에 대한 영감을 불어 넣고자 하였다."(짐 훠레스트)

젊은 시절부터 도로시 데이는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부름>지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군중>지에서 편집기술을 연마하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저술가로 소개했으며 여권의 직업란에는 “저널리스트”라고 썼다. 실제로, 도로시와 피터 모린이 가톨릭일꾼을 창립했을 때, 도로시는 사회운동을 시작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다만 철저한 그리스도교적 삶을 살아가는데 대한 토론을 전개하는 신문을 원했다. 그러나 창립이후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에이드 베썬이 말한 것처럼, “피터는 도로시에게 환대에 대해 단지 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신문에서 비롯된 '가톨릭일꾼운동'을 말해주는 것은 바로 신문이다. 신문은 아직도 뉴욕 환대의 집 공동체에서 일 년에 일곱 번 발간되며 아직도 “1부에 1센트”이다. 신문은 더 이상 좌파적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또한 그 방향을 향하여 말하고 있는 유일한 정기 간행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톨릭일꾼운동의 기관지도 아니다.

오히려 신문은 광범위한 정의문제들을 다루고 정의를 옹호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도로시가 활동하고 있었을 때 신문은 그의 인증을 받고 늘 그의 글, “순례에 대하여”를 실었다. 오늘날에도 <가톨릭일꾼> 신문과 전 세계 가톨릭일꾼 환대의 집에서 나오는 잡지, 소식, 신문들에는 도로시의 글이 다시 실리고 있다.

도로시는 젊은 일꾼들 중에 가장 최고의 사람들을 편집자로 지명하였고 그들은 도로시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이 되었다. 그러나 편집일을 원한다고 그 자리를 얻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꾼의 한 친구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편집진에 합류를 요청했을 때 도로시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당신들의 일은 부엌 싱크대에서 시작합니다.”

ⓒ한상봉

팻 죠르단은 1973년, 1974년에 편집장을 맡았는데, 그는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 도로시는 항상 자기 비판적이었고, 신문에 대해 매우 보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단어 하나에도 책임감을 느꼈다. 그것은 특히 뉴욕대교구와의 관계 때문에 오는 태도였다. 그는 신문에 실린 기사 때문에 비난을 받았고, 편집자이기 때문에 책임을 져야 했다.

우리는 먼저 신문이 인쇄되기 전에 쭉 훑어보았다. 그러나 항상 오자가 있었다. 도로시는 매우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보통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먼저 신문을 다 살펴보고 나서 모든 긍정적인 측면들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 가면 항상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하면서, “우리는 충분히 최선을 다하지 못했네요.”라고 했다. 자기비판이 매우 강했다. 후에 가서 그는 편집을 보는 우리들에게 더 편안해졌고, “원하는 대로 삭제할 수 있어요, 내 글도 삭제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그리고 도로시 자신도 자주 강조했는데– 저술이 그에게는 소명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저널리스트였다. 이 사실이 심지어 가톨릭일꾼운동 안에서도 그에게 깊은 자유를 주었다. 일꾼운동 자체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에 집중 포화를 가할 수 있다. 당신은 일꾼운동 때문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도로시는 항상 저술가로서 고유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고, 일꾼으로부터의 독립 심지어 신문 자체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는 진짜 힘이 되 주었다. 이 사실이 그를 재충전시키기도 했다.

인쇄공들은 도로시가 인쇄소에 오는지 항상 물었다. 그들은 도로시를 사랑했다. 인쇄공들은 노동자들이었고 그들의 정치소견은 보수적인 방향에 기울었으나, 도로시는 항상 그들의 입장에 서서 썼다. 그리고 그러니 얼마나 많은 교정공들이 그들의 삶에 대해 꼼꼼히 살펴보겠는가? 그는 탁월한 저술가였다. 그는 피터 모린이 말한 대로 길거리의 사람들을 위하여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쓰는 글은 횡설수설이 많고 이론적이었다.

그는 신문에 항상 새로운 피를 수혈해 주었다. 여행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때문에 훨씬 더 실제적인 글, 실천 중심의 글을 쓸 수 있었다. 우리는 늘 실천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유지하려고 애썼고, 개인들이나 소수 그룹의 사람들이 보다 살기 좋은 장소를 만들기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여 주고자 했다.

도로시는 우리가 “고발자들”보다 “선포하고 환호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우리는 단지 정부를 반대하는 글만 쓰지 말아야 했다. 우리는 무엇이 그리스도의 신비체를 건설하는가에 대하여 말해야 했고, 사람들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각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해야 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야, 이 사람들을 봐! 그들은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집을 열었네, 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는 일해야 하는 엄마들을 위해 작은 학교도 만들었구나.” 도로시는 자주 이런 글로 시작하여 더 이론적인 부분으로 옮겨가는 글을 신문에 썼다. 그는 또한 독자들로부터 오는 편지를 좋아했는데, 인간적인 소리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짐 훠레스트는 1961년 11월부터 1962년 2월까지 편집인으로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 일꾼운동은 저널리스트의 머리에서 형성되었다. 그리고 도로시의 저널리즘에 대한 이론과 실천은 상식적인 내용과 매우 달랐다. <가톨릭일꾼> 신문이 제대로 정립되기 전 초기 글들을 보아도 도로시의 저널리스트로서의 시각이 본래 긍정적인 것임을 알게 된다.

가톨릭일꾼 신문의 가장 좋은 측면들 중의 하나는 절대로 환대의 집 자체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로시는 전혀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다. 내가 신문을 편집하고 있을 때 나는 어떤 의미에서 도로시의 관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마치도 사람들에게 공동체에 관한 지나치게 이상적인 시각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도로시는 저널리즘의 긍정적인 측면을 많이 보아왔다. 저널리스트 집안 출신이었고 그 긍정적인 측면에 대한 교육을 받았으며, 그래서 사회주의 신문인 <부름>에도 관여했다. 아마도 일반 대중언론보다는 사회주의 신문이 가톨릭일꾼 신문과 훨씬 더 가까웠을 것이나, 사회주의 신문들은 공포를 일으키는 글들을 싣기 좋아했다. 그들은 한 주간에 2달러로 살아가는 도로시의 이야기를 쓰곤 했다. 그런 글은 사랑을 통한 혁명보다 두려움과 분노를 통한 혁명에 대해 쓰는 글이다.

그러나 도로시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의 이론과 실천은 꽤 달랐다. 신문의 초기 글들을 보면, 도로시의 성향은 근본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위축시키기 위하여 혁명에 관한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혁명에 대한 영감을 불어넣고 고무시켰다. 그것은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가톨릭일꾼 신문에 관한 책을 쓴 저널리즘 학자인 낸시 로버츠는 토론토 가톨릭일꾼공동체의 짐 로우니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저술가로서 도로시의 독특함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 도로시는 저널리즘을 또 다른 형태의 행동주의로 보았다. 그래서 신문과 다른 발행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넣었다. 표현하는 단어를 끄집어내는 것은 팜플렛을 돌리고, 피켓시위를 하며 시민 불복종운동을 하는 바로 그 자리였다. 그의 신문은 많은 다양한 독자들에게 읽혔고, 발행부수에 비하면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쳤다. 평화와 정의운동의 뿌리를 추적할 때마다, 당신은 항상 <가톨릭일꾼> 신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는 또한 도로시 데이가 문학적 저널리즘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학적 저널리즘은 사실에 충실하고 실제 사람들에 대해, 실화, 실제적인 것들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만, 문학이 그러는 것처럼 인간실존에 관한 더 큰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문학적 저널리즘은 문학과 관련된 모든 문학적 기술들을 사용하는데 –장면 설정과 인물 묘사 등– 도로시도 그렇게 썼다.

도로시가 지닌 강점들 중의 하나는 일상에 대하여 말하는 능력이다. 무료급식, 가톨릭일꾼 집의 정신장애를 지닌 사람들, 성 요셉에게 기금을 위한 기도를 하는 것, 저녁식사로 무엇을 먹었고, 누가 방문했으며, 자기 손자들에 관한 이야기 등, 매우 가정적인 이야기들이다. 일상에 대해 말하고 그것으로부터 궁극적인 질문들 까지 이어지는 글. 같은 글에서 동시에 그렇게 한다. 궁극적인 것에 대해 관상할 수 있지만 실제 생활에 뿌리를 두는 그런 글을 쓰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한상봉

출처: <DOROTHY DAY : Portraits by Those Who Knew Her>, by Rosalie G. Riegle, Orbis, 2003. <참사람되어> 편역,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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