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상은 '밥'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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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세상은 '밥'으로 통한다
  • 손지후
  • 승인 2019.07.0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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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후 칼럼


“함께 밥을 먹는 것은 서로의 몸과 마음을 돌보며 사람의 정성을 잇는 일입니다. 삶의 일부를 나누며 그 안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는 다양한 연대의 힘을 키우는 활동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2013년 겨울, 밥으로 투쟁 현장을 횡단하며 몸과 마음의 힘을 키우는 연대에 동의하는 사회활동가와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 노동자들이 모여 <협동조합 밥통>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봄에 정기총회를 거쳐 ‘다른 세상은 밥으로 통한다’는 믿음으로,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는 길 위에 노란 밥차를 내어 놓고, 그들에게로 한 치의 주저함 없이 달려가 곁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상경투쟁을 벌이다가, 밥 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투쟁을 접어야 했던 때가 있었지요. 밥 값 부담만 덜어도 두 배는 더 버틸 수 있었을 것이라 아쉬운 탄식이 터져나오는 자리였습니다.

상경투쟁에도 열심이었던 양산 분회장이었던 염호석씨가 노동조합 가입 후에 삼성이 일감을 안줘서 생계가 점점 어려워졌지만,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삼성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우다가 아이 기저귀와 분유값을 마련하기조차 막막한 사정이 되자, 이에 비관해 자살을 한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사측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어 '0원'이 적힌 급여명세서에 짓눌린 34살의 가장이 목숨을 끊게 만든 사건입니다.

“저는 지금 정동진에 있습니다. 해가 뜨는 곳이기도 하죠.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지회가 빛을 잃지 않고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리라 생각해서입니다. 지회가 승리하는 그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故염호석 열사 유서)

밥 값이 없어 투쟁을 접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 비통한 심정으로 다시 삼성본관 앞으로 모였고,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은 이들이 자리에서 버틸 밥 값이 없어 투쟁을 접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데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밥연대를 시작했고, 삼시세끼 1,000인분의 밥을 지으면서, 전조합원 농성돌입 상경투쟁을 함께 했어요. 소식을 알리고, 식재료를 보내고, 반찬을 만들어 현장으로 달려오고, 점심값에 보태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고 후원금을 보내고, 배식과 설거지에 품을 보태고자 앞다투어 앞치마를 입고, 저마다 할 수 있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는 자리였답니다.

밥 값이 모자라 20일만에 투쟁을 접었던 과거와 달리, 기적의 밥연대로 40일 넘게 모두의 힘으로 저항의 자리에서 버텼지요. 그리고 41일만인 2014년 6월 28일, 삼성그룹 노동조합 최초로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승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함께 만든 연대의 값진 기억입니다.

 

사진출처=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페이스북
사진출처=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페이스북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이어지는 연대

"맘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 모임(맘상모)"이 국회 앞에서 '임대차 보호법 개정 투쟁'을 할 때 밥통이 점심 연대를 했었는데, 다른 투쟁현장에 밥연대 하는데 써달라고 후원금을 주셨어요. 전하신 소중한 마음을 담아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투쟁'하는 곳으로 달려가서 "맘상모"의 소식과 연대의 뜻을 전했어요. 그렇다면 우리도 다른 현장으로 밥차를 보내고 싶다고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주셨답니다.

세월호 촛불집회를 꾸준하게 진행하는 지역으로 밥차는 보내지게 되었고, '시흥 세월호 촛불'이 의정부로, '의정부 세월호 촛불'이 성남으로, '성남 세월호 촛불'이 또 다른 현장으로 간식릴레이가 이어지게 되었답니다. 다른 세상은 밥으로 통한다는 믿음을 품게 된 시간들이었습니다. 또한 밥통이 만들어졌던 첫 마음 그대로 횡단하는 현장이 밥으로 연결되어, 불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 연대가 연대로 더 커지게 하는 역할로 최선을 다 하자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속을 뜨겁게 채웠던 자리

"일본군위안부 한일협상 체결"에 따라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 소녀상을 철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일협상 무효와 평화비 소녀상을 지키려고 달려 나온 청년들이 천막농성을 시작했어요. 소녀상 곁을 떠날 수 없었던 청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이고 싶은데, 밥차가 대신 가줄 수 있냐는 문의가 왔었지요. 일본대사관 앞에서 토요일마다 집중시위가 열렸는데, 그곳으로 밥차를 보내주셔서 추운 겨울날, 뜨끈한 국밥 200인분을 현장에서 끓여 집회에 오신 분들과 밥심 가득 채우는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밥연대 소식을 듣고 '용인지역 시민'들과 '풀뿌리 시민네트워크'에서도 식비를 지원함과 더불어 반찬과 후식을 직접 만들어서 오시고 직접 배식까지 챙기면서, 청년들의 직접행동을 지지하고 동참한다는 뜻을 밥으로 전하셨어요. 비가 와도 멈추지 않는 집회에서 밥을 나누기 위해서 천막과 테이블을 준비하고, 너나 할 것 없이 나서서 천막에 인간기둥들이 되어주고, 당신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시위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비를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천막 안까지 우산을 씌워주는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열악한 조건이었지만 우산을 나누고 함께 비를 맞으며, 속을 뜨겁게 채웠던 잊을 수 없는 자리입니다.

세월호 유가족 영석이 어머니 권미화님께서도 소식을 듣고 달려와 아들같은 청년들의 손을 잡고 연신 고맙다 말씀하시며, 그릇에 밥을 담아내셨어요. 청년들 역시 영석이 어머니를 위로하고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함께 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손하트를 날리며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토요집중집회 때 격주마다 밥통의 "노란 밥차"를 현장으로 보내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졌고, 추워서 오돌오돌 떨며 길바닥에서 먹는 한 그릇의 밥이지만, 정성과 공감이라는 품위가 가득 담긴 온기로 겨울을 버티며 우리는 거리에서 봄을 맞이했습니다.

난민 어린이들에게 고향의 음식으로 다가간 연대의 힘

2018년, 500명의 예멘난민들이 제주에 도착하게 되었을 때, 난민에 대한 가짜뉴스와 맹목적이고 집단적인 증오와 혐오가 판을 치는 상황이 되었지요. 밥차가 제주로 갈 수 있을 거라 상상도 하지 못했었지만, 열악하고 마음이 고단한 상황에서 때로는 숨어서 지내야 하는 처지의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고, 특히 어린이들에게 예멘 고향의 음식을 만들어서 연대의 힘을 전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겼어요. 그래서 밥통 후원자분들과 SNS에 제주 예멘난민들에게 환대의 밥을 대접하는데 마음을 얹어주십사 요청을 했습니다.

일주일만에 수백만원의 후원금이 모이고, 제주로 밥차를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신 분, 밥연대를 준비하는 장소와 숙소를 제공하겠다는 분, 밥통 자원활동단 <밥알단> 밥알들의 비행기 티켓을 후원하겠다는 분, 제주 현지에서 제주 전역에 있는 예멘 난민들에게 구석구석 음식이 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연결 해 주신 분, 음식을 식기 전에 배달할 수 있도록 동참하겠다 오신 분, 재료손실과 조리를 맡아주신 분 등 수 많은 연대의 손길로 함께 꾸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냈습니다.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사진출처=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페이스북

함께 다른 세상을 꿈꾸시렵니까?

어느 한 곳 뺄 수 없는 밥연대 6년차 현장의 이야기를 모두 전할 수 없는 제한된 지면이 야속합니다. 그래서 <가톨릭일꾼> 지면으로 만나게 되는 반갑고 소중한 인연으로 야속함을 달래고자 초대장을 보냅니다.

다른 세상은 밥으로 통한다는 것을 믿으신다면, 할 수 있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아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어떤 것도 엄두가 나지 않을 때, 밥심으로 내부의 힘을 키워 제 자리에서 버틸 수 있게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길 위에서 싸우는 사람들과 밥으로 연대하고자 하는 뜻에 함께 하고 싶다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의 노란 밥차로 오셔서 <밥알단>의 '빨간 앞치마'를 입으시면 됩니다. 요리를 못하셔도 좋습니다. 칼질이 느려도 좋고 그릇에 수저만 담아주셔도 됩니다. 어울려 밥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자리가 밥연대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밥통은 주인공이 되어 앞서 열광하지 않으며,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든든한 배후가 되어, 언제라도 돌아보면 약속한 그 자리에 겸손하고 반듯한 모습으로 곁을 지키고자 합니다. 밥통과 함께 다른 세상을 꿈꾸시렵니까?

 

손지후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 연대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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