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만 아니라 참척의 슬픔조차 나눌 가치가 있다
상태바
사랑만 아니라 참척의 슬픔조차 나눌 가치가 있다
  • 이정화
  • 승인 2019.07.09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정화 칼럼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만일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 미친년 같은 생각을 열정적으로 해본다.”

88년 여름, 갑작스런 사고로 아들을 잃은 작가 박완서의 책 <한 말씀만 하소서>(세계사, 2004)에 나오는 내용이다. 작가는 이 책을 소설도 수필도 아닌 일기라고 한다. 훗날 활자가 될 것을 염두에 두거나 누가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같은 것을 할 만한 처지가 아닌 극한 상황에서 "통곡 대신 쓴 글"이라고 한다.

작가는 아들을 잃은 후 납득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고통을 안고 세상을 피해 큰딸 집으로, 수도원으로 숨어든다. 생떼 같은 아들이 사라졌는데 여전히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잘 돌아가고 있고, 하늘은 여전히 푸른 것에 대해 분노한다. 자신과 세상, 신에 대한 부정과 분노의 끝에서 어이없게도 ‘밥‘을 매개로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오기까지 과정을 날것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무거운 마음에서 놓여나기도 전에 <생일>(이종언 감독, 2019) 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으나, 내용이 세월호 유가족이야기라 눈물을 삼킬 자신이 없어 보기를 미루어 온 영화였다. 영화는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으로 아들 ‘수호’를 잃은 남겨진 가족 ‘정일’과 ‘순남’ 부부, 그리고 딸 ‘예솔’이의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세월호 사건 당시 아빠 ‘정일’은 외국에 있었고 사정상 그 후에도 한참이 지나서야 귀국을 한다. 딸 예솔이는 얼굴이 기억도 나지 않는 아빠에게 금새 마음을 열지만, 순남은 아들이 죽는 순간에 함께 있어주지 않은 남편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흘렀지만 순남은 아들이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아들 방의 물건들을 치우지도 않고, 계절이 바뀔 때 마다 아들의 새 옷을 사서 걸어둔다.

순남은 매일 밤 주체할 수 없는 불안감과 더 이상 아들을 볼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오열한다. 하지만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다른 유가족들의 진심어린 관심과 가족들의 사랑이 순남의 마음을 열게 하고, 1년에 단 하루, 수호의 생일 날, 가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서로가 간직했던 수호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선물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도 먼저 읽은 <한 말씀만 하소서> 라는 책의 내용이 오버랩 되면서, 작가 박완서의 고통과 영화의 주인공 수호엄마의 고통이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작가는 사고로 아들을 잃은 것이고, 순남은 자기 아들 수호와 똑같은 죽음을 304명의 부모들과 한 날 한 시에 겪은 사실이다.

 

영화 "생일" 스틸사진
영화 "생일" 스틸사진

 

참혹하고 슬픈 죽음

내게 책 <한 말씀만 하소서>와 영화 <생일>이 오버랩 된 이유는 둘 다 참척의 고통을 다룬 작품이기 때문이다. 참척(慘慽)! 참척이라는 단어는 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다는 뜻으로, 한자의 뜻만큼 참혹하고 슬프다. 어떤 죽음도 슬프지 않거나 가벼운 죽음은 없다. 하지만 참척은 생명력이 펄떡거리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자식의 죽음이기에 더 무겁고 고통스럽고 잔인하다. 그래서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어줍잖은 위로는 더 큰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나는 이 책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작가와 순남의 마음길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두 작품은 아들 잃은 어미로서의 비통함, 절망과 분노의 고백이지만 슬픔 자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간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인정하고, 절망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살고자하는 생명의 꿈틀거림이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희망의 실마리는 내가 아닌 다른 이들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고 얼싸안는 사랑에서 발견된다.

분노: 차라리 없는 게 나은 하느님

우리 앞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 오면 슬픔 다음에 오는 감정이 분노인 것 같다. 작가는신앙인이면서도 신을 저주한다. “하느님이란 그럴 수도 있는 분인가. 사랑 그 자체란 하느님이 그것밖에 안 되는 분이라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아니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온종일 신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이고 일백 번 고쳐 죽여도 죽일 여지가 남아 있는 신, 증오의 마지막 극치인 살의(殺意), 내 살의를 위해서도 당신은 있어야 돼.” 라고 포악을 떤다.

분노의 대상은 신만이 아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상대방을 볼 때는 그 자리에서 당장 꺼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 생각해낸 말이 잊으라는 소리다.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잊으라는지, 세월이 약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처럼 격렬한 반감이 솟구칠 때도 없다”고 쓰고 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난 후 얼마동안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렬이 쏟아지고 유가족들을 위로하며 연대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데 진상규명이 더디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 그만하라고, 잊으라고, 심지어 지겹다는 식의 막말까지 한다. 유가족들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무엇을 그만하고 무엇을 잊으라는 것인지. 자식을 앞세운 그들에게 잊으라는 말만큼 잔인하고 서러운 말이 또 있을까.

순남의 분노는 아들이 죽는 순간 함께 있어 주지 않은 남편에게 “수호가 죽는 순간 당신은 뭐했냐”며 다그친다. 또 다른 유가족들이 희생된 아이들의 생일을 기억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음식을 나누고 웃고 떠드는 것을 참지 못해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심지어 딸 예솔이가 반찬 투정을 하자 "오빠가 죽었는데 너는 반찬 투정이나 하냐"며 딸을 야단치며 현관 밖으로 내쫓는다. 작가와 순남은 내가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고, 내 아들이 없는 이 세상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너무도 잘 돌아가고 있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죄책감: 자식을 앞세운 에미가 멀쩡하게 살아있다

 

분노의 감정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건 아마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아들을 지켜 내지 못하고 죽게 했다는 죄책감. 자식을 앞세운 에미가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죄책감이, 무엇엔가 누구에겐가 핑계를 대고 분노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생기는 감정일 것이다. 아들이 죽은 후 처음으로 자신의 생일을 맞은 작가는 “내 생애에서 가장 욕된 생일날이다. <내가 태어난 날이여, 차라리 사라져 버려라>라고 자기 생일을 저주한 욥 생각이 났다.”고 쓰고 있다.

작가의 죄책감은 ‘음식의 거부’로 나타난다. 딸이 차려주는 죽도, 생일날 외식으로 먹은 우동도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자신이 역겨워 다 토해내고 오히려 안심한다. 순남의 죄책감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수호가 죽을 때 함께 있어 주지 않은 남편에 대한 미움, 잔혹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좋은 추억만을 떠올리며 애써 웃으려 노력하는 유가족들을 볼 때의 거부감과 불편함, 혹시 자기와 남편이 보상금을 노리는 부모가 아닐까라는 죄책감으로 시달린다. 작가와 순남은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욕된 죄’라고 생각하므로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다시는 눈을 뜨지 않기를 꿈꾸며 잠이 든다.

기억: 행복했던 기억 때문에 방을 치울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렵고 힘든 일을 당했을 때, 그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행복하고 좋았던 순간을 떠올리는 일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행복했던 기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고통의 수렁 속으로 더 깊이 빠지게 되어, 사람을 더 처참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죽하면 작가는 “내 수만 수억의 기억의 가닥 중 아들을 기억하는 가닥을 찾아내어 끊어버리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이 고통에서 벗어나련만.”이라고 했을까. 그래서 아들이 속을 썩이거나 실망시킨 일을 생각하려고 애쓴다고 했을까.

하지만 작가는 비가 오면 체온이 뜨거운 생명의 냄새를 풍겼던 아들이 기억나고, 베란다에서 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남색 프레스토에서 아들이 막 내릴 것 같은 망상에 시달린다. 순남 역시 수호가 공부하고 밤늦게 돌아올 때 마중을 나가서 아들과 웃고 떠들며 돌아오던 일이 떠오르고, 현관의 점멸등이 고장 나서 깜빡 거리면 수호가 왔다고 착각을 한다. 순남은 아들과의 행복했던 기억 때문에 수호의 방을 치울 수가 없다. 작가와 순남은 잃은 아들과의 기억을 지우려고 한다지만, 사실은 아들의 작은 것 하나라도 기억에서 지워질까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이다.

화해: 내 고통을 넘어 세상의 고통으로

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남을 용서하라고 하셨지만, 용서는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더구나 내 자식의 죽음 앞에서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작가와 순남은 슬픔으로 시작해 분노와 죄책감의 강을 넘어 화해의 바다로 나아간다. 화해는 용서와 다르다, 용서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화해는 서로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화해한다는 것은 이미 서로를 용서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실컷 울고 싶었고, 이해할 수 없는 아들의 죽음을 두고 하느님의 응답을 듣고 싶은 마음에 세상을 피해 수도원으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작가는“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용노동자처럼 한시 반시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지만, 이상하리만치 꾸밈없는 수녀님들의 명랑함을 보면서, 여태껏 생각해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사랑의 방법을 보았다”고 한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남을 위해서 기쁘게 사는 수녀님들과, 서로 다른 근심걱정을 안고 그곳을 찾은 사람들을 통해, 자기의 고통에만 고정되었던 시선이 서서히 세상을 향하게 된다.

분노로 음식을 거부했던 작가는, ‘짐승 같은 식욕’을 느끼며 음식을 받아들임으로써 세상과 화해를 시작한다. 작가는 이 식욕을 ‘육신의 뜻하지 않은 반란’이라고 표현하며 한없이 창피해한다. 하지만 작가가 수녀원을 떠나던 날, 사제관에서 우연히 <밥이 되어라> 라는 글귀를 보고, ‘혹시 내가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주님께서 밥이 되어 내게 오신 것은 아닐까’ 라며 밥을 통해서 자신을 살리시는 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순남은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아직 인정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어김없이 돌아오는 수호의 생일이 무섭기만 하다. 수호의 생일을 기억해 주자고 하는 다른 유가족들의 권유도 마다한다. 아들이 없는 아들의 생일을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그리움과 슬픔만 더 커질 것이라는 두려움만 가득하다. 순남은 수호의 생일을 앞두고 남편에게 “당신은 그게(수호의 생일) 왜 하고 싶은데?”하고 묻는다. “그 날 수호도 오지 않을까?”라는 남편의 말에 순남은 마음이 흔들리고 이제는 아들을 떠나보내야만 한다는 마음에 오열한다.

수호의 생일날,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모여 서로가 간직하고 있는 수호와의 특별한 기억들을 선물한다. 순남은 그동안 수호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자신의 고통만 보였다. 수호가 죽는 순간 함께 있어 주지 못한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아파하는 남편도, 오빠의 죽음 앞에서 괴로워하는 엄마를 매일 숨죽이며 지켜봐야했던 어린 딸 예솔이도 안중에 없었다. 가족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이 나만 살았다는 죄책감에 얼마나 시달리고 있었는지, 수호를 얼마나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 수호가 얼마나 멋진 아들인지 깨닫게 된다. 순남 역시 자신의 고통 안에만 머물렀던 시선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 세상으로 향하게 되고 세상과 화해하게 된다.

 

영화 "생일" 스틸사진
영화 "생일" 스틸사진

 

이름 모를 사람들의 위로와 연대로 세상을 마주할 힘을 얻었다

작가와 순남은 슬픔, 분노, 죄책감과 기억이라는 긴 여정을 통해 세상과 화해한다. 내가 ‘마음길’이라고 완곡히 표현한 이 길은 고통스럽고 험난한 길이지만, 자식을 잃은 어미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일어나는 솔직한 감정길이다. 자식의 죽음 앞에서 고상한 부모는 없다. 슬플 때는 충분히 슬퍼해야 하고, 눈물을 억지로 참아서도 안 된다. 참척의 고통을 겪은 그들이 세상 밖으로 건강하게 나오려면 그렇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작가와 순남이 세상과 화해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같은 슬픔을 겪고 있는 부모들과 살아남은 친구들, 아들과의 좋은 추억들이 그들을 홀로설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름 모를 사람들의 위로와 연대로 세상을 마주할 힘을 얻었다. 그들에게 보내는 우리의 따스한 시선과 사랑이 그들을 살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세월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생일>이라는 영화가 더 의미가 있다. 일 년에 단 하루, 아들의 특별한 ,생일을 기억하기 위해, 먼저 간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지금도 묵묵히 일상을 살아가는 304명의 순남들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참척의 고통을 당한 수많은 순남들에게 그만하라고, 그만 잊으라고 하지 말자.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기억하도록 기다려주자. 그들이 세상과 화해하고 아이들을 기쁘게 떠나보낼 때까지.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 나와 환한 빛 속으로 나올 때까지.

어쩌면 박완서의 책 <한 말씀만 하소서> 는 세월호 사건으로 참척의 고통을 당한 부모들과, 자식을 앞세운 이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참척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더 이상 안전하지 않고, 수많은 사건 사고로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작가의 말대로 ‘내 아들 딸이라고 그런 일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나’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도 작가와 순남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더 많이 나누고 더 깊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들이 ‘또 다른 나’ 이므로.

 

글을 마치면서 박완서가 끈질기게 자신에게 질문하고 성찰하고 반성함으로써 얻게 된 처절한 깨달음을 들어보자.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물질도, 사랑도. 내가 아낌없이 물질과 사랑을 나눈 범위는 가족과 친척 중의 극히 일부와 소수의 친구에 국한돼 있었다. 그 밖에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타인에게 나는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위선으로 사랑한 척한 적조차 없었다. 모르고 잘못한 적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의식하고 남에게 악을 행한 적이 없다는 자신감이 내가 신에게도 겁먹지 않고 당당하게 대들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근거였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하필 변기 앞에 무릎 꿇은 자세로, 나는 그 정답에 머리 숙여 승복했다. 그건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정답이었다. 그리고 구원이었다.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이정화 크리스티나
가톨릭일꾼 애니메이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