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니에서 루이빌로, 머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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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니에서 루이빌로, 머튼과 함께
  • 정경일
  • 승인 2019.06.24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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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은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한 이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공동체다.

시편은 수도자들에게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해주는

연대의 종소리다.

겟세마니 가는 길

지난 늦겨울, 미국에서 열린 학회에 참가한 후 수도자이며 작가인 토머스 머튼이 살았던 켄터키 겟세마니 수도원을 찾아갔다. 몇 년 동안 너무 바삐 사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고요한 수도원에서 평화로이 쉬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겟세마니로 가는 길의 내 마음은 그리 평화롭지 않았다.

학회가 있었던 오하이오에서 켄터키 루이빌로 가기 위해 이른 아침 콜럼버스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런데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과 터미널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흑인이거나 남미계 사람들이었다. 다들 사는 형편이 넉넉해 보이지 않았다. 간간이 보이는 백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중간에 데이튼에 잠시 들렀을 때 진눈깨비 섞인 찬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앉아 패스트푸드를 먹고 있는 한 백인 남자를 보았다. 추위에 붉어진 얼굴의 그는 하얀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그 옆에 검은 후드티를 입은 흑인이 잔뜩 몸을 웅크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서로 눈이 마주친 그들은 습관적인 턱인사를 교환했다. 그 순간 내게 두 사람은 같은 인종처럼 보였다. 우리 시대의 최대 인종인 ‘가난한 자’였다.

신시내티에서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꽤 긴 시간 대기했는데, 대합실 티브이에서 한국전쟁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때 시간으로 곧 있을 2차 북미 정상회담 때문인 것 같았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 흑백영상이 내 몸과 마음에 유전된 전쟁의 트라우마를 아프게 불러 일으켰다.

 

사진=정경일
사진=정경일

루이빌에서 다시 우버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려 겟세마니 수도원에 도착했는데, 일요일이어서인지 안내하는 이가 없었다. 넓은 수도원을 이리저리 헤매다 도서관 소파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던 노 수도자 한 명을 만나 길을 물었다. 친절하게도 그는 자기를 따라 오라며 앞장섰다. 거의 90도로 굽은 허리에 크게 절뚝거리며 걷는 그는 무척 연로해 보였다. 피정 센터 로비에서 담당 수사를 기다리며 그 노 수도자와 대화를 나눴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눈을 크게 뜨며 자기도 한국에 있었다고 말했다. 반가움에 언제였냐고 물으니 한국전쟁 때였다고 한다. 그 순간 내 눈빛이 살짝 흔들리는 것을 알아차렸을까? 그는 곧 자기는 ‘포병’이어서 적군과 얼굴을 직접 보며 가까이서 싸운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죽음은 ‘거리’와 상관없다는 걸 그도 나도 알고 있었고 우리는 복잡한 감정을 교환한 채 헤어졌다.

수도원 독방에 짐을 푼 후 바로 오후 기도와 저녁 기도에 참여한 후 일찍 잠에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자다 일어나 새벽 세 시 십오 분 기도에 참석했다. 깊고 고요했다. 그런데 고요함 속에서 낮에 보고 느꼈던 가난과 전쟁의 상처가 내 곁에 말없이 앉아 있음을 느꼈다. 수도원은 평화로웠지만 내 마음은 평화롭지 않았다. 세상은 가난과 전쟁으로 아파하는데 고요한 수도원에서 나만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걸까, 하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겟세마니 수도자들과 함께 읽은 성서 이야기에 마음이 깨어져 열렸다. 쫓겨난 여성 노예 하갈 이야기였다. 깊은 묵상 후 수도자들은 우리 시대의 하갈인 홈리스, 난민, 전쟁 피해자들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기도했다. 그랬다. 겟세마니 수도자들은 고통의 세상을 피해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세상을 위해 그곳에 있었다. 예수에게도 겟세마니는 홀로 침묵과 고독을 즐기는 평화로운 장소가 아니라,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던, 십자가의 번민과 결단의 장소였다. 그래서 겟세마니의 다른 이름은 ‘괴로움의 정원(Garden of Agony)’이다.

 

사진=정경일
사진=정경일

기도와 노동

겟세마니에 갈 때는, 기도를 또 하나의 ‘일’로 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도에는 적당히 참여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자유롭게 쉬며 지내려고 했다. 그러나 겟세마니에서의 첫날, 기도의 충격을 경험하면서 수도원 영성을 더 깊이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그래서 수도원에 마무는 9일 동안 매일 일곱 번 씩의 성무일도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겟세마니의 성무일도(Divine Office)는 새벽 3시 15분에 비질스(Vigils)로 시작한다. 어둠이 가장 깊은 시간에 깨어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아침 5시 45분에 라우드스(Lauds)와 함께 영성체를 한다. 아침식사 후 7시 30분에 짧은 기도 테르체(Terce)를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에 각자 맡은 일을 하다가 오후 12시 15분에 모여 짧은 기도인 섹스트(Sext)를 한다. 점심 후 또 각자 자기 일을 하다 2시 15분에 잠시 모여 간단한 오후기도 논즈(Nones)를 한다. 그리고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고 오후 5시 30분에 베스퍼스(Vespers)를 하고, 저녁식사 후 7시 30분에 콤플린(Compline)으로 하루를 마친다.

그런 기도생활을 해본 적이 없던 내가 수도원의 시간전례를 지키며 지내다보니 처음 이틀 동안은 세수할 때마다 코피가 터졌다. 6세기에 수도규칙을 만든 베네딕트는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기도”라고 했는데, 그 말이 ‘문자적으로’ 이해되었다. 내게 기도는 그냥 노동이 아니라 ‘중노동’이었다. 하지만 곧 수도원의 기도와 생활 리듬이 몸에 익으면서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해졌다. 아마도 기도의 간절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수도원의 성무일도를 지키면서, 머튼을 연구할 때 가졌던 의문 하나가 풀렸다. 그것은 수도자 머튼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글을 남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었다. 수도자에게든 작가에게든 중요한 건 양적 시간이 아니라 질적 시간이다. 성무일도는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게 한다. 기도와 기도 사이 시간의 밀도를 높여준다. 어쩌다 마음이 분산될 때도 있지만 어김없이 다가오는 기도 시간이 마음을 다시 모아준다. 일하다 기도하니 기도에 더 집중하게 되고 기도하다 일하니 일에 더 집중하게 된다. 기도든 노동이든 마음 챙겨 하게 되는 것이다. 머튼은 기도와 기도 사이에 맑고 깊은 정신으로 읽고 생각하고 썼다. 그는 좋은 수도자가 됨으로써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겟세마니에 있는 동안 폴 퀴넌 수사와 가까이 지냈다. 그는 열일곱 살에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와 머튼에게 수련지도를 받았고, 이후에도 머튼을 스승 삼아 지낸 이다. 수도원 새내기 시절, 당시 유행하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구레나룻을 따라 기르다 머튼에게 농담 섞인 싫은 소리도 듣던 자유로운 영혼의 수도자다. 또한 머튼처럼 시인이면서 사진작가다.

겟세마니에서의 마지막 날, 수도원에서 좀 떨어진 머튼의 은수처에서 폴 수사가 이끄는 ‘머튼 서클’에 참여했다. 머튼의 글을 읽고 대화하는 모임이었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다 시계를 보니 오후기도인 베스퍼스 5분전이다. 나는 겟세마니에서 성무일도 ‘개근’을 못해 아쉽지만, 기도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배우는구나 생각하며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기도시간이 다 된 걸 그제야 알아차린 폴 수사는 어서 가자며 뛰어나갔고 나도 급히 따라 나섰다.

아마 여기서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마리아 수녀가 언덕에서 “The hills are alive with the sound of music~” 노래를 부르다가, 기도 시간을 알리는 수도원 종소리에 뛰어 내려가는 목가적 장면을 상상할 지도 모르겠다. 상황은 비슷한데 우리가 만든 장면은 ‘락 뮤지컬’ 버전의 “Rush to Pray(기도를 향한 질주)”였다고 하는 게 맞겠다. 폴 수사가 운전하는 4륜구동 오프로드 지프로 질주하여 ‘2분’ 만에 수도원에 도착한 우리는 “We made it!(해냈어!)” 환호하며 성당으로 뛰어 들어갔고, 곧 고요한 침묵과 찬양 속으로 잠겼다.

이 즐거운 경험은 성무일도가 수도자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게 해주었다.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의무라면 그런 즐거움은 없었을 거다. 폴 수사는 어쩌다 여행 중에 성무일도를 못 지키게 되면, 기도 시간이 될 때마다 상실감을 느낀다고 한다. 수도자들에게 성무일도는 지겨운 의무가 아니라, 폴 수사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즐거운 ‘놀이’다. 무엇을 깨닫고 경험할지 몰라 더 기대되고, 그래서 지겨울 틈이 없는 ‘거룩한 놀이(divine play)’라는 것이다.

 

사진=정경일
사진=정경일

시편, 탄식과 탄원의 노래

겟세마니에 있으면서 내가 얻은 또 하나의 선물 중 하나는 시편의 재발견이다. 수도자들은 고대 유대인들이 시편을 노래로 불렀던 것처럼, 시편에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정과 선율을 붙여 노래한다. 그것을 시편찬송(Psalmody)이라고 한다. 노래로 부르기 좋게 편집한 시편은 우리가 사용하는 시편과는 장과 절이 조금 다르다. 시편찬송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었는데, 계속 반복해서 듣고 따라 부르면서 선율에 실린 내용에 더 집중하게 되니, 시편은 고통 받는 이들의 노래라는 것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비질스 중에 시편찬송을 하다, 한 소절에서 가슴이 울컥 했다. “Give us joy to balance our affliction for the years when we knew misfortune(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 수만큼, 우리가 재난을 당한 햇수만큼,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십시오).”(시편 90:15) 여러 해 동안 불행만을 알아온, 불행만을 겪어온 사람이, 고통을 없애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고통에 균형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기쁨을 달라고 하느님께 애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시편이 시편인 까닭은 고통을 가장 가까이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시와 노래이기 때문이다. 시편의 시인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악인을 저주하고 하느님께 항의하면서도, 끝내는 하느님을 신뢰하고 구원을 희망한다. 수도자들은 그런 시편을 매 기도 시간마다 서너 편 노래한다. 그렇게 매일 이삼십 편의 시편을 노래하면서 고통 받는 이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시편은 수도원 안의 수도자들과 세상 속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연결해준다. 시편의 고통 받는 이들의 탄식과 탄원은 오늘 억울하게 고통 받는 이들을 알아차리게 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한다. 수도원은 세상의 고통에 무관심한 이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들의 공동체다. 시편은 수도자들에게 세상의 고통 받는 이들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해주는 연대의 종소리다.

 

사진=정경일
사진=정경일

세상을 향해 열린 고독

겟세마니에 있는 동안 수도자들의 배려로 머튼의 마지막 은수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머튼이 살았던 시대의 트라피스트회는 수도자들이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와 수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깊고 철저한 침묵과 고독을 열망했던 머튼이 수도회를 옮기려는 시도까지 하게 되자, 머튼의 생애 말년에 수도원 땅에 작은 벽돌집을 짓고 거기 머물며 수행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폴 수사를 따라 머튼의 은수처를 처음 갔을 때 뜻밖의 사실에 놀랐다. 은수처의 위치 때문이었다. 수도원에서 멀리 떨어져 외진 곳에 있을 줄 알고 한참 하이킹할 각오를 하며 나섰는데 머튼의 은수처는 수도원에서 무척 가까운 곳에 있었다. 겟세마니 수도자들이 ‘머튼의 길(Merton’s Path)’이라고 부르는 지름길로 가면 십 분 좀 넘게 걸리는 곳이었다. 게다가 은수처 앞은 숨을 은(隱) 닦을 수(修)라는 단어 뜻이 무색하게 활짝 열린 너른 들판이었다.

머튼이 살고 있을 때도 그의 은수처는 홀로 숨어 수행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는 수도원과 늘 연결되어 있었고, 또 그의 은수처로 수도원 밖의 사람들, 특히 사회변화를 위해 일하는 종교인, 운동가, 예술가들을 초대해 사회적 영성을 함께 모색했다. 머튼의 은수처에서 고독에 대한 열망과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 같이 느껴져 조금 혼란스러웠다. 폴 수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한마디로 정리해주었다. “그는 모순의 존재(man of contradiction)니까요.” 바로 이해가 되었다. 사실 누구나 고독의 열망과 공동체의 열망을 동시에 갖고 있지 않은가.

머튼의 은수처 앞 들판에서 폴 수사는 그곳이 은수처로서 ‘완벽한 장소’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머튼의 모순은 단순히 ‘반대의 공존’이 아니라 ‘반대의 일치’였다. 머튼이 그곳을 은수처로 선택한 이유는 그의 고독이 공동체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그의 고독은 공동체로부터 등을 돌린 고독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해 팔을 벌린 고독이었다. 그러하기에 머튼의 은수처는 완벽한 장소에 있었다.

머튼과 함께 루이빌로

겟세마니를 떠나는 날 아침, 테르체가 끝났을 때 부원장 마이클 신부가 다가와 나를 안고 축복해주었다. 환대의 고마움과 이별의 서운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짧은 기간에도 정이 많이 든 겟세마니를 떠나려니 마음이 허전했다. 나는 겟세마니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겟세마니를 가지고 돌아가는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고요하고 평화로운 수도원을 떠나 소란하고 복잡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조금은 두렵고 불안했다.

1941년 이른 봄, 수도자의 삶을 열망하던 청년 머튼도 겟세마니를 방문해 8일 동안 지낸 후 루이빌로 나왔을 때 엄청난 불안을 느꼈다. 그래서 “낯설고 얼빠진 거리에서 도망쳐” 근처의 대성당으로 뛰어 들어가 기도하며 불안을 가라앉혔다. 그때 머튼은 겟세마니를 ‘낙원’이라고 불렀으니 루이빌은 ‘실낙원’의 세상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해 겨울 수도원에 들어간 후 수도자로 이십여 년 가까이 살다가, 1958년 3월 18일, 일이 있어 루이빌에 나왔을 때, 시내 한복판에서 머튼은 갑자기 세상 사람들과 자신이 하나임을 깨닫는다. 그때의 경험을 그는 이렇게 적었다.

“루이빌 4번가와 월넛가가 만나는 모퉁이, 쇼핑 구역 한가운데서 내가 저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을 별안간 깨달았다. 그들은 나의 것이며 나는 그들의 것이다.”

이를 머튼의 ‘두 번째 회심’이라고 부른다. 뉴욕에서의 ‘첫 번째 회심’이 ‘세상으로부터의(from)’ 돌아섬이라면 두 번째 회심은 ‘세상으로의(into)’ 돌아섬이다. 첫 번째 회심이 미성숙한 구도자의 세상과의 분리라면 두 번째 회심은 성숙한 구도자의 세상과의 통합이다. 이 두 번째 회심 경험 후 머튼은 인종차별, 전쟁, 핵무기, 가난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나도 겟세마니를 떠나 귀국 길에 하루 루이빌에 머물렀다. 머튼의 두 번째 회심 장소인 〈토머스 머튼 스퀘어〉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젊은 머튼만큼 불안하지는 않았다. 대신, 생뚱맞게도, 루이빌 시내를 걸으며 내가 느낀 것은 ‘따분함’이었다. 시골 겟세마니보다 도시 루이빌이 더 따분하게 느껴진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곳은 두 군데, 1961년 2월, 인종차별에 항의하며 흑인들이 연좌농성을 벌였던 4번가와 그곳에서 이어진 머튼의 회심 장소였다.

 

사진=정경일
사진=정경일

〈토머스 머튼 스퀘어〉에는 머튼의 생애와 회심 사건을 앞뒤로 기록해 놓은 청동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돌조각 작품이 하나 있는데, 빙그레 웃고 있는 사람의 얼굴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런데, 머튼의 깨달음을 기념하는 장소치고는 그리 거룩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안내판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붙어 있었고, 그 사이에 ‘공사중’ 안내판을 비치해 두었다. 또 돌조각상은 자전거 거치대 고정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내게는 그 모두가 산만하기보다는 잘 조화된 느낌이었다. 그날 오후 내내 머튼의 회심 사건 장소가 바로 내다보이는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생각하고 글을 쓰며 보냈다. 생각을 멈추고 잠시 창밖을 볼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 구름 사이로 들락날락하는 태양으로 달라지는 풍경,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완벽한 사진

날이 어두워질 즈음 카페에서 나와 사진을 몇 장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흑인 할머니 한 분이 그곳을 계속 맴도는 것이었다. 무척 고단해 보이는 그분에게 사진 찍게 비켜 달라고 하는 게 미안해 한참을 기다렸지만, 할머니는 그곳을 떠날 줄 몰랐다. 결국 좋은 사진 건지기는 글렀다 생각하며 포기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길을 건너 그곳을 돌아보았는데, 그 순간 나는 ‘완벽한 사진’을 얻었다.

 

사진=정경일
사진=정경일

할머니는 그 미소 띤 얼굴 돌조각상 위에 편안히 앉아 있었다. 길 건너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 가난하고 고단한 흑인 여성의 아픈 다리를 쉬게 할 수 있어 조각상의 미소가 더 밝게 빛나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았다. 그것은 시편의 시인이 그토록 간절하게 바랐던, 고통에 균형을 이루게 해주는 기쁨에서 나온 한줄기 미소였다.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순간, 가장 거룩한 풍경이었다. 머튼을 찾아 겟세마니로 떠난 나의 순례는 머튼과 함께 루이빌로 돌아나오면서 완성되었다. 그리고 세상 속 내 일상으로 돌아가는 순례가 새로이 시작되었다. Ω

* 이 글은 새길교회가 발간하는 <새길엽서>에도 함께 싣습니다.
* <가톨릭일꾼> 2019년 6-7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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