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 공유경제 또는 사회적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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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 공유경제 또는 사회적 경제
  • 조세종
  • 승인 2016.06.0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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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종 칼럼] 

지난 5월 21일에 이탈리아에서 오신 루이지오 브루니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세계적인 명성에 걸맞게 많은 신자들이 자리를 꽉 채웠고 나도 일찍 앞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강연내용을 열심히 들었다. 강의 주제는 ‘Economy of Communion, EoC’였는데, 안내책자에는 ‘모든 이를 위한 새로운 경제모델’로 번역 소개되었고, 어떤 이는 간단히 ‘공유경제’라고도 한다. 이 개념은 포클라레의 창시자 끼아라 루빅 여사가 창안하여 포클라레 영성을 따르는 이들의 경제윤리라는 것이 강의 전 기초지식이었다.

‘커뮤니언(communion)’이란 단어는 ‘영성체’라는 뜻으로 ‘공유경제(EoC)’는 영성적인 경제활동이다. 브루니 교수는 이를 나눔과 친교의 경제활동, 곧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두 성인의 경제관을 바탕으로 형성된 뜻임을 강조했다. 베네딕토 성인은 일이 곧 기도이기에 노동의 중요함을 일깨운 것이고 프란치스코 성인은 한센병 환자와의 입맞춤이 보여주듯 가난한 이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갖도록 한 것이다. 브루니 교수는 이러한 활동을 기업가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작년에 내가 번역한 <피터모린, 20세기의 예언자>(마크 H. 엘리스, 하양인, 2015년)에서 프랑스의 한 방적공장을 운영한 ‘레옹 아멜’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멜은 산업혁명 이후 극심했던 노동자의 가난과 비인간적인 처우를 자신의 공장에서라도 막기 위한 일들을 해 나간다. 그 결과 아멜의 공장에서는 노동자와 경영자가 모두 성 프란치스코 제3회에 가입하여 프란치스코 성인의 섬김과 봉사의 정신을 실천한다. 경영자와 노동자가 함께 공장을 운영하고 지역 공동체에 봉사하는 등 돈독한 유대를 통한 협력적이면서 영성적인 산업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피터 모린은 이를 직접 목격하고 자신의 이상적인 경제모델로 삼게 된다.

이렇게 피터모린이 간직했던 이상을, 다시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 두 성인을 강조한 브루니 교수의 강연에서 다시 한 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렇지만 대중 강연이라는 특성과 시간의 제약 때문에 공유 경제와 사회적 경제에 대한 개념과 원칙 등을 비교해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한 점은 아쉬움과 숙제로 남았다.

성공적인 공유경제의 한 예로 대전에서 유명한 빵집인 ‘성심당’이 소개되었다. 그렇지만 마치 성심당이 사회적 경제 기업으로 소개되는 것은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성심당은 기업인이 진심을 다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다하는 보기 드물게 훌륭한 기업이지만 ‘사회적 경제’에 속한 기업으로 분류할 수는 없다. 성심당을 사회적 경제 기업이라고 하면 너무 그 범위를 넓게 잡은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 경영인들은 정말 아름다운 선의를 가진 대전의 자랑스런 분들임이 틀림없다.

사회적 경제 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목적으로 존재하는 기업이다. 흔히 빵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소개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빵을 만들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만드는 것이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이 정부에서 인증을 받으려면 사회적 목적 실현 외에 노동자, 서비스 수혜자 등 관련된 이해관계자들과 의사결정을 함께 하는 구조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이윤의 사용도 사회적 목적을 위한 것으로 제한된다. 조직의 구조가 협동조합일 경우 1인 1표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으로 운영을 하며 공동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열망을 채우기 위해 조직된 사람들(결사체)이 만든 사업체의 모습으로 바깥으로 드러난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모두 사회적 또는 공동의 목적과 의사결정구조를 요구하고 있다.

레옹 아멜의 요지도 노동자와 경영자가 함께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으로 우리가 한 형제임을 산업현장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이렇다. 사기업에서도 성심당 같은 영성과 양심에 기반한 기업가들이 운영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 줄줄이 관료들이 낙하산 타고 내려와 부실을 키워가고 있는 농협은행도 있다. 시중은행들이 조선업체의 부실채권들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농협은행은 추가대출을 늘려 그 규모가 5조 7천억 원에 이른다(인터넷 내일신문 5월 31일자). 낙하산 타고 내려온 정부 관료들이 장악한 무늬만 협동조합인 곳에서 자율과 독립성, 민주적인 운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과연 무엇이 사회적 경제인가? 오늘은 성심당 튀김 소보르 빵을 사먹어 봐야겠다.
 

조세종 디오니시오
소셜경영연구소 소장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대전교구 카리타스 한끼백원나눔운동본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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