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자라는 아이, 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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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자라는 아이, 균도
  • 최충언
  • 승인 2016.06.03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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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홍수시대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낱말을 만난다. 어떤 낱말이 가슴에 들어오면 화두요, 묵상꺼리가 되기도 한다. 사랑, 영원, 평화, 정의, 용서, 자유, 감사, 믿음, 고통, 만남, 거짓, 역사, 침묵, 십자가, 하느님, 진실, 4.3, 5.18, 세월호, 형제복지원, 강정, 밀양, 쌍차, 생탁, 만덕...

어떤 낱말 하나를 몰랐다고 하여 내 삶이 잘못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순간순간 만나는 낱말 하나하나는 알게 모르게 내 삶에 영향을 주며 방향을 잡아주기도 한다.

발달장애인. 이 낱말이 내게로 온 것은 이균도 가브리엘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올해 25살인 균도는 키가 181cm, 몸무게가 120kg이나 나가는 거구다. 난산으로 무호흡증이 와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태어난 아이다. 다섯 살 무렵에 발달장애 진단을 받았다. 덩치는 어른이지만, 영락없는 다섯 살배기다. 지금, 우리 둘은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교감이 생긴 것이다. 우리 집은 균도의 또 다른 집이 되었고, 난 균도를 만나면 언제나 즐겁다.

“균도, 큰아버지한테 노래 하나 불러줄래?”하고 청하면, 눈을 껌벅이며 1초쯤 뜸을 들이다가 바로 노래를 한다.

“모두가 욕심 버리면 그 모든 것이 즐거워
걱정과 근심 떨쳐 버려요. ...
욕심을 모두 버리고 이 세상 바라본다면,
곰처럼 편히 살 수가 있죠.
정말이야! 물론이지!”

균도가 어릴 때 보았던 만화영화 <정글북>에 나오는 곰의 주제가란다. 청년이 된 지금도 즐겨 부르는 노래다. 노랫말이 얼마나 철학적인가? 욕망의 거미줄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촘촘하게 얽혀 있는 우리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노래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에게 ‘이윤보다는 사람이 먼저다.’는 깨우침을 천진난만하게 노래로 가르쳐 주는 균도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생글생글 웃으며, 욕심 많은 우리에게 죽비로 내려치기도 하는 균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상봉

균도와 균도 아빠, 두 천사

‘균도아빠’는 이제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진섭(가브리엘. 부자가 세례명이 같다.)은 세 해에 걸쳐 다섯 차례나 발달장애 1급으로 자폐아인 큰아들 균도와 3,000km 국토 대장정을 했다. 이들 부자는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법 제정,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걸었다. 사회를 향한 도보시위라고 했다.

균도아빠는 ‘느리게 자라는 아이’라는 부제가 딸린 <우리 균도>(후마니타스)라는 책을 지어 발달장애인들의 권리 찾기에 앞장 서는 장애운동가이기도 하다. 2014년 10월에 한국수력원자력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갑상샘암 발병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우리나라 탈핵운동사에 큰일을 해냈다. 균도는 내가 아는 우리나라 최고의 탈핵운동가다.

밀양 송전탑 싸움을 하던 할머니들을 만나러 위양 사랑방에 간 적이 있었다. 처음 만난 균도 아빠는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사람의 인연이 이어지려면 이렇게도 이어지나 보다. 그 뒤, 균도를 데리고 우리 집에 종종 놀러왔고, 균도는 나를 큰아버지로 부르며 따랐다. 기장 해수담수화문제로 균도 아빠가 기장군청에서 천막농성을 할 때도 자주 찾아갔다. 지금은 형, 아우하며 허물없이 지낸다. 서로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 사회에 대한 생각들을 주고받으면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게 휘두르는 가장 아픈 무기가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視線)이다. 장애 가족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는 경멸하는 듯한 시선이라고 균도 아빠는 말한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평등하다. 장애인을 대하는 경멸의 시선은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에 차이가 없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내가 참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다.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시선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동네'라는 아름다운 공화국

작가 송기숙은 산문집 <마을, 그 아름다운 공화국>에서 사람들이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최소단위인 ‘동네’에 대해 썼던 대목이 생각난다. 동네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다섯 부류의 사람이 어느 동네나 있는 사회의 구색이었다. 그 다섯 부류는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동네 어른, 늘 말썽만 부리거나 버릇없는 후레자식, 일삼아서 이 집 저 집으로 말을 물어 나르는 입이 잰 여자, 틈만 있으면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을 웃기는 익살꾼, 좀 모자란 반편(半偏)이나 몸이 부실한 장애인이다.

사회적 약자들과 ‘더불어’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발달장애인들은 자극에 민감하고, 반복적인 행동을 하며 관계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평소에 순하다가도 갑자기 과잉행동이 나타나면 제어하기가 힘들다. 균도 아빠는 말한다.

“균도는 느리게 자라는 아이다. 빠른 것만 추구하는 조급증에 걸린 사회에서는 발달장애인들이 함께 어울려 살 공간이 없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마치 전염병 환자 취급을 당하며 고립되고 왕따가 된다.”

마을은 그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말없이 품어 안았다. 품어 안는 사회가 대동세상이고 해방세상이리라.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들을 차별이나 열등하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기다리고 참으며 다름을 인정해 준다면 장애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으리라.

ⓒ한상봉

나는 균도의 팬이 되었다

균도는 서번트 증후군(사회성이나 의사소통 능력 등에서는 뇌기능장애를 가지고 있으나 특정 부분에서는 매우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증후군으로 자폐증이나 지적장애인 2천 명 중 1명꼴로 드물게 나타난다.) 기질도 보인다. 영화 <레인 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자폐증 환자 레이먼드와 균도는 닮은꼴이다. 균도는 비상한 기억력을 가졌다. 숫자에 집착한다. 육십갑자를 알고 싶다면, 인터넷 검색보다 균도에게 물어보는 것이 훨씬 빠르다.

“1962년 12월 15일은?” 하고 내 생일을 물으면, 균도는 곧바로 “토요일, 호랑이띠, 임인년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번트 증후군도 사회성이 없기에 살아가는 데 소용이 없다. 이런 능력을 교육시키고 활용하는 시스템이 우리사회에는 없다.

나는 균도의 팬이 되었다. 짬만 나면, 균도 부자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같이 밥을 먹고, 공연도 보러가고, 영화를 보러 극장에도 간다. 균도에게 부족한 사회성을 몸으로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도 있어 더 자주 만난다. 균도아빠가 25년을 키우면서 얼마나 속이 까맣게 탔을까? 그 마음을 알기에 쉬는 날이면 두 가브리엘을 집으로 초대한다.

아베 피에르 신부는 “그리스도교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복음이다.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균도와 만남은 삶이 유지되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균도는 존재 자체로도 나에게 살아있는 복음이다. 스승이신 예수의 가르침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은 예수가 우리에게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균도야, 우리 서로 사랑하자!

최충언 플라치도
외과의사.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단팥빵-어느 외과의사의 하루>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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