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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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해
  • 박지훈
  • 승인 2016.05.3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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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광화문 월요시국기도회 : 박지훈 신부 강론

저는 안동교구 남성동 성당에 보좌로 있는 박지훈 디모테오 신부라고 합니다. 먼저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 항상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실 이렇게 인사말을 적어놓고 참 많이 고민했습니다.물론 여기계신 여러분들을 만나는 것이 반갑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꼭 이런 자리에서 이 사람들을 만나야 했는가?’, ‘이보다 더 편한 자리에서 서로 얼굴에는 웃음과 행복만 가득한 곳에서 만났으면 더 좋지 않을까?’, ‘조금 더 희망찬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이 사람들과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 앞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고민은 고민일 뿐 이런 세상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도래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라고 저를 이 자리에 보내셨음을 기억하며 지금 여기에 서게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수석사제와 율법학자를 앞에 두시고 주인의 몫을 탐하는 파렴치한 소작인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이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주인의 땅을 부쳐 먹는 소작인들이 주인의 몫을 받으러 온 주인의 종들을 때리고 죽이며, 마지막에는 주인이 그토록 사랑했던 외아들마저도 죽여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파렴치한 소작인들의 탐욕과 그 반대편에 존재하는 주인의 자비를 바라보게 됩니다. 자신에게 돌아올 몫을 넘어 주인의 몫까지 탐하는 소작인들의 탐욕, 그 탐욕은 자신들에게 일을 맡김으로써 자신들을 살 수 있게 만들어준 주인에 대한 감사함을 잊게 만들었고 결국은 주인을 배신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주인은 그런 소작인들에게 기회를 줍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소작인들이 자신의 종들을 매질해 돌려보내는 순간 그들을 징벌해 버렸을 것이지만 주인은 그런 소작인들의 배신을 참아줍니다.

그렇다면 주인은 왜 이들의 배신을 참아주었을까요? 탐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종들을 모두 죽여 버리는 그들을 왜 기다려주었을까요? 여러분들은 단순히 주인에게 종들이 많았기 때문에, 주인이 자신의 종들을 하찮게 여겨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은 그 파렴치한 소작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물론 오늘 복음에서 주인은 그 파렴치한 소작인들이 자신의 종들을 알아보지 못해서, 그 종들을 존중하지 않아서 죽였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그 내면에 깔려있는 생각은 바로 ‘내가 다시 기회를 줄테니 제발 너희의 잘못을 뉘우치고 나에게 돌아오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의 모습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배신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고자 하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그분의 자비는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인간의 회개가 없다면 우리는 결코 그런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회개 없이는 하느님의 용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한 그 파렴치한 소작인들이 결국은 주인에 의해 처벌받게 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결코 하느님께 용서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회개와 용서는 단순히 우리들의 신앙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 이들에게 있어서도 통용되는 것입니다.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지극히 상식적이고 인간적인 행동 앞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국가적인 재난이라 불렸던 세월호 참사... 그 앞에서 우리의 공직자들은 얼마나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어린 사과를 유가족들과 국민들에게 전했던 것일까요? 정말로 그들은 유가족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으로 고개를 숙였던 것일까요?

만약 그들이 유가족들과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우리 사회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진정 자신들의 불성실함과 부조리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유가족들과 국민 앞에서 고개 숙여 사죄했다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합당한 보속을 행했다면, 우리사회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들의 사과와 그 사과에 뒷받침 되는 행동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아픔과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과와 그에 합당한 행동들은 이 사회를 조금 더 정직한 사회로, 진실이 승리하는 사회로 바꾸어 나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던 이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무능함 앞에 분노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는 척 했지만 그 이후 그들의 행동들은 너무나도 몰상식했고 비인간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월호 사건으로 아파하는 유가족들과 국민 앞에서 보상금이야기를 꺼내며 국민을 분열시켰습니다.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유가족들을 죽은 가족의 몸값을 요구하는 사람들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끊임없이 진실을 왜곡하고 감추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실을 밝힘으로써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제공하고자 했던 세월호 청문회를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청문회에서 끊임없이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일들은 나의 소관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관이다.’ ‘나는 내가 해야 할일을 모두 했을 뿐이다.’ 라고 응답했을 뿐 진정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앞에서 너무나도 당당하게 응답했고, 때로는 그들의 잘못을 추궁하는 위원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악의 고리는 단순히 세월호 참사라는 하나의 사건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계속된 국가적 재난들... 메르스 사태,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이 모든 사건에 있어서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은 모두 안하무인격으로 ‘그것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저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다.’ ‘나는 잘못이 없다.’ 라고 이야기하거나 침묵했고 사과를 하더라도 관련 피해자들과 국민을 기만하는 사과만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정부는 개혁이라는 거짓된 이름으로 노동자의 살을 어렵게 만들고, 많은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규제완화를 부르짖고 있으며,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산업들의 민영화를 통해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지도층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힘없고 가난한 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들을 빼앗고,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온갖 부도덕한 일들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현실 앞에서 우리의 가슴은 너무나 답답해집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의 순환 고리 앞에서 절망하게 됩니다. 진실보다는 거짓이, 원인 규명보다는 현실도피와 순간을 모면하고자하는 행동들이 일상화된 사회는 우리의 미래를 너무나도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절망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절망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쳐야만 합니다. “얘야 죄를 지었느냐? 그러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지난날의 죄악에 대하여 용서를 빌어라.”라고 전하는 집회서의 말씀처럼 이 세상을 점점 더 어둡게 만드는 이들, 세상의 권력자들에게 끊임없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들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그들이 진심으로 국민들 앞에서 사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 신앙인들이라면 그들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로 그들이 앞으로는 진실과 정의만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들이 이 땅에 참 평화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해 주십시오. 이 시대의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끊임없이 외쳐 주십시오. 진정 이 시대에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진정 이 사회가 상식적인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외쳐 주십시오.

박지훈 신부
안동교구 남성동성당  

<출처/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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