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월커 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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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월커 퍼시
  • 김신윤주
  • 승인 2016.05.30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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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1916-1990)

“그런 탐구는 삶의 일상성에 빠져있지 않다면 누구라도 시작할 만한 것이다 ...  그 탐구의 가능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무언가를 향한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망에 빠져있다는 뜻이다."

월커 퍼시(Walker Percy)의 삶에서 두 가지의 위대한 성소적 결정은 가톨릭 신자가 된 것과 글을 쓰는 작가가 된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결정이 얼핏 보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그의 종교적 전환은 훗날 그가 쓰게 될 작품들과 깊게 연관된다. 그는 일반적인 의미의 ‘종교적’ 소설을 쓰지 않았다. 대신에  현실과 인간 존재의 의미, 인간의 운명에 대한 지극히도 가톨릭적인 성찰을 소설로 썼다.   

퍼시는 1916년 5월 28일, 미국 남부 알라바마 버밍햄의 부유하고 성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12살 되던 해에 아버지가 자살을 했다. 이어 그의 어머니도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뜨자, 그는 법조인이자 시인인 삼촌에게 입양되어 길러진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1942년, 병리학실에서 생활하던 퍼시는 결핵에 걸려 이후 5년 동안 요양원을 옮겨다니며 침대에 붙박혀서 살았다. 전세계가 전쟁의 화마에 빠져있는 동안, 그는 누워서 현대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집중적으로 읽고 고찰하는 시간을 보낸다. 도스토예프스키나 톨스토이, 카프카 같은 소설가만이 아니라 키르케고르 같은 철학자까지, 그는 손이 닿는 곳에 있는 모든 책을 읽는다.  이 독서의 시간이 그를 죄, 은총, 그리고 구속이라는 인간 존재에 대해서 최선의 답을 제시한 가톨릭 신앙으로 이끌었다. 1946년 요양원에서 나온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는다.  

긴 독서와 세례는 앞으로 그가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을 남겼다. 한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이 의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당장에 먹고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도의 유산이 있었다. 퍼시는 직업을 갖는 대신에 결혼을 하고 뉴올리언즈의 시애틀에 정착을 하고서는 진지하게 다시 독서에 몰두한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학교에 다니게 되자 아이들은 아버지가 무엇을 하는 지 이야기하기를 부끄러워했다. 그는 읽었다. 그리고 그의 독서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가 나중에 그의 특징 중의 하나로 묘사했듯이 그는 ‘무언가로 향하는 중’ (onto something) 이었던 것이다.
퍼시는 그의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파스칼’ 을 통해서 현대인의 생래적인 권태, 불안, 그리고 공포같은 특성을 표현했다. 

왜 사람들은 이런 20세기에  깊은 슬픔을 느낄까?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고 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세상을 뜯어고칠 수 있는 바로 이 시대에 , 왜 사람들은  이토록이나 괴로워할까? 왜 1941년 12월 7일 오후, 바로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을 때에 삼촌은 평생에서 유일하게 행복한 모습이었을까? 

1954년, 퍼시는 난해한 철학 에세이를 잘 알려지지 않은 전문지에 게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곧 좀 더 대중적인 형태로 생각을 표현할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 결실이 1961년, 그의 나이 44세에 세상에 내놓은 첫소설 <Moviegoer> (영화 구경꾼)이다. 그 책은 내셔널 북 어워드를 수상한다. 청년 ‘빈즈 볼링’이 "대체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문제를 놓고서 고민하는, 엄청나게 규모가 크며 재미있는 소설 <Moviegoer> 는 이후의 모든 소설들에서도 다루는 주제를 던진다.  일상성이라는 함정과 틀에 박힌 일과들, 절망을 피하면서 온전히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 존재를 알아듣기 위해 도전했다.   

이후의 소설들은 점점 더 코믹해졌고 때로는 냉소적이다. 퍼시는 노련한 사회비평가였다. 인류 존재의 신비를 "환경적 유기체"로 깎아내리려는 사회과학자들, 그 스스로를 우상화 하면서 어떤 의미로는 자신을 비우게하는 궁극의 능력을 가진 소비문화와, 아직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우주의 논리를 헤아렸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의 자만심, 그리고 ‘ 삶의 질’ 이라는 명목아래 안락사와 낙태를 지지하는 감상적 연민에 찬 진보주의자들 또한 그의 잘 연마된 피스톨의 과녁이 되었다.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괴팍한 노인네가 성을 내는 것처럼 보이곤 했으나, 추종자들에게는 여러 면에서 사회와 문화의 바깥에 있는 덕분에 도리어 눈이 밝은 현대의 예언자였다. 

“소설가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과장이 아닐까?... 낙원 몰락의 임박과 원죄 교리를 위해 몇 남지 않은 증인들 중의 한 명 정도이지 않을까?”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글을 쓰지만, 퍼시는 더 이상은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진리만을 단순히 반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문제 중의 하나가 그리스도교 언어의 “가치 하락”였다. “은총의 고유한 세 단어들은 포커 칩 같이 아무 곳에서나 자연스럽게 쓰여진다.” 
또 다른 문제는 그리스도교의 도덕적 실패였다. 그는 주변에서, 특히 교회가 인종 억압 스캔들에 정의롭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생각하는 그리스도교 작가의 도전은 첫째로, 소외되고 절망에 빠진 상태인 현대인을 돕는 것이고, 두번째는 ‘우리는 모두 진정한 우리의 집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다. 

“ 모든 절망 중에서도 가장 최악의 것은 어떤 사람이 진짜 노숙자인데도, 집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퍼시는 우리 시대에서 가장 큰 위험은 ‘인간 삶의 가치 절하’라고 보았다.  그가 작품으로 보여주려한  인간이란 존재는 천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영혼의 순례자이며 인생이란 여행의 나그네’ 라는 성스러운 정체성과 운명을 부여받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도전은 진정한 인간성을 되찾고 관념, 이데올로기, 자만이 만든 영적 둔화라는 함정에서 탈출하여  다시 ‘사랑스러운 보통의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퍼시는 1990년 5월 10일, 암으로 죽었다. 


Shine Shin-Kim, 김신윤주 수산나.
아티스트, 작가. 2013 년 뉴욕에서 대중참여예술인 원하트 프로젝트 시작,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한반도의 평화, 물신주의와 신자유주의, 인권, 사회 정의 차원에서의 위안부 문제 등을 다루며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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