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이름으로, 노예들을 구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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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노예들을 구출하라
  • 한상봉
  • 승인 2019.06.0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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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탄식으로 기진하고
밤마다 울음으로 잠자리를 적시며
눈물로 제 침상을 물들입니다.
저의 눈은 시름으로 멀어지고
저의 모든 적들 때문에 어두워집니다.“(시편 6,7-8)

미사 때마다 화답송으로 읽는 시편에선 하느님 백성들의 ‘탄식’과 ‘호소’가 자주 나온다. 내 힘만으로 어쩌지 못하는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예수님처럼 ‘압바, 아버지’를 부르며, 이들은 하느님 면전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도와달라고.

세월호의 사월과 광주의 오월을 지나치면 ‘억울한 이들의 죽음’이 묻어난다. 부활절을 넘어섰지만 하느님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분이 그토록 사랑했다고 고백한 사람들은 여전히 아프고, 생존이 버겁다. 그래서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제가 외치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서.”(시편 5,3)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다.

이 기도가 얼마나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때로 의심하고, 때로 신뢰하는 신앙이다. 예수님은 모월 모일 모시에 승천하셨다는데, 우리도 그만 이승을 떠나고 싶다. 삶이 그만큼 힘겹기 때문이다.

성경에선 하느님께서 그런 이들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셨다고 전한다. 삶에서 절망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시려고 당신 ‘이름’을 가르쳐 주셨다고 말한다. 그들은 ‘히브리 노예’였다. 이들을 해방시키라고 모세를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보내며 하느님은 당신 이름을 알려주셨다. 야훼(Yahweh)다.

 

야훼를 <공동번역 성경>에선 “나는 곧 나”라 하고, <성경>에선 “있는 나”(탈출 3,14)라 번역한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그래서 최근에 독일 성서학자들은 야훼 하느님의 이름을 앞 구절에서 찾아낸다. 노예해방을 명령받은 모세가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묻자, 하느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3,12)

그러니, 야훼는 “(너희와 함께) 있는 나”라는 뜻이다. 노예들과 함께 있는 하느님, 노예들과 함께 걷고 동반하시는 분이다. 노예들의 삶을 살피시고, 그들을 옹호하시는 분이다. 이 때문일까? 예수님은 공생활 벽두에 회당에서 굳이 이 구절을 찾아 읽는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그러니, 예수님 별칭이 임마누엘인 것은 당연하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태 1,23) 하느님께서 슬픔과 고통과 절망의 강을 건너는 이들 곁에 머무신다고 알려주신 예수님 때문에 오늘, 다시 살아보자고 용기를 낸다. 

*이 글은 천주교 수원교구 주보 6월 2일자 주님승천대축일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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