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순 "천당이고 지옥이고 다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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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 "천당이고 지옥이고 다 여기 있다"
  • 방진선
  • 승인 2019.05.2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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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 장일순 요한 선종 25주년

경애하는 참스승 무위당 장일순 요한 선생님 (1928.9.3.-1994.5.22.) 선종 25주년!

선종 25주년을 맞이하여 무위당 선생님의 첫 평전이 나왔습니다. <장일순 평전>(김삼웅, 두레. 무위당사람들 감수, 2019.5.22)

"우리나라 생태·생명운동과 협동운동의 선구자, 늘 소외되고 핍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현실에 참여했던 장일순, 사람들은 장일순의 어떤 모습에 그를 따랐고, 왜 지금도 여전히 그리워하는가?

무위당(无爲堂) 장일순은 시대를 내다보는 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민중(민족)의 앞길을 제시하고, 시대마다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찾았고, 소임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늘 소외되고 핍박받는 민초들과 함께했다.

그는 ‘시대와 불화(不和)’하는 이들이 기대고 싶은 스승이자 머무르고 싶은 안식처였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폭압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피폐해진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

장일순은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는 물질문명 대신 생태문명론을 줄기차게 제시한 생명·생태운동과 협동운동의 선구자였다.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사유하는, 20세기 후반 시대정신의 표상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는 나서기를 꺼리고, 지도자인 체하지 않았고, 관직을 맡지도 않았다. 수많은 연설과 인터뷰를 했지만, 글 한 편도 책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는 가는 곳마다 존경을 받고,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워하고 따르는 사람이 줄을 설까?"(출판사 책소개글)

 

'한살림운동' 등으로 늘 앞장서서 믿음과 사상을 실천한 사회혁명가. 시대를 고뇌한 '살아 있는 해월', '걸어다니는 노자'의 사색인!

저자는 "실천하는 행동인이자 고뇌하는 사색인이었던 장일순은 20세기 한국에서 대단히 보기 드문 '21세기형 인물'이었다"며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더욱 심화된 빈부격차 등 한국 사회의 중층적 모순 구조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한살림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해월의 사상과 함께 노자의 사유를 마음의 안식처로 삼아 '살아 있는 해월', '걸어다니는 노자'로 불렸던 무위당은 평소 온화한 성품대로 일상적인 생활을 즐기는 무욕과 겸손, 정감과 풍류의 범부였다. 튀거나 나서기보다 사색하고 책을 읽고, 틈나면 시서화에도 열중했다. 대나무와 솔도 그렸지만 조선 선비들이 개결함의 상징으로 본 난초를 특히 많이 쳤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장일순은 난초를 닮은 구석이 많다. 뛰어나지 않으면서도 빼어난 기품이 있고,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눈길을 머물게 한다"고 찬탄한다.('민주화운동, 생태·생명운동의 선구자 무위당 장일순' <매일경제신문>, 2019.05.16)

<무위당 장일순>(무위당좁살만인계 엮음)을 넘겨 표지 뒷면에 실려 있는 어른의 말씀을 육성처럼 들어봅니다.

이 풍진 세상 속 크고 작은 걱정거리에 먹고 살기도 힘겨운 시대를 견뎌내야 하는 서민들도, 정치판에서 호가호위하고, 경제판에서 호의호식하는 볼꼴 볼썽사나운 높은자리 군상들도, 모두 함께 귀를 기울여 어른의 말씀을 곰곰이 새겨 들었으면 합니다.

<和光同塵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다>
<일체 중생이 내 한 줄기 꽃 속에 깃들음을 알아야 하거늘>
<자신의 날카로운 빛을 감추고 온화한 분위기로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자세를 낮추라>
<如愚如魯 어리석은 듯, 둔한 듯>
<以不計而通 잔꾀 부리지 않아야 통한다>

문재인 정부의 높은자리 공직자들에게, 그이들의 정책 추진에도 선생님의 다정한 말씀을 건냅니다.

“노자 말씀에 그런 게 있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다스리는 일을 생선지지듯이 하라' 이 말이야. 생선을 자꾸 뒤적거리면 먹을 게 없잖아요. '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 작은 고기를 다루듯이 요렇게 살살 해라 이 말이에요. 이 얘기는 뭐를 얘기하느냐. 우리가 모두 해나가는 일을 제 모습대로 있게끔 해라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은 이 모임 속에서도, 여기 우리 대신 역할을 해주는 회장의 이름이 뭐더라, 김여사던가 박여사던가 그 정도면 좋다 이말이에요. 아, 이름은 뭐고 어느 대학 나오고 학벌은 어떻고 그이 남편은 뭐고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라의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국민이 대통령 이름이 뭔지도 몰라야 돼. 대통령 이름 알면 어쩔 거야. 저도 밥 세끼 먹고 나도 밥 세끼 먹는데. 그리고 또 하나는 대통령이 부리는 권한이 세상에 불쌍하고 딱한 사람들 해결해주고 세상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일만 하면 된다 이 말이야.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밥 한 사발 먹는 것도 우주가 함께 하시니까, 그 수많은 농부의 피땀과, 땅과 하늘이 함께 해주시니까, 식사한다 이렇게 생각할 적에 말이지 더 바랄 게 뭐가 있어. 빽이 뭐냐하면 천상천하가 다 자기 빽인데."<무위당 장일순의 이야기 모음 나락 한알 속의 우주>45쪽, 녹색평론1997년)

우주의 모든 생명을 하느님으로 여기는 큰 스승!

“해월 선생 말씀에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씀이 있어요.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말이에요. 동학에서 일컫되 인내천(人乃天)이라, 그리고 사람만이 하늘이 아니라 곡식 하나도 한울님이다, 돌 하나도, 벌레 하나도 한울님이다, 이 말이에요.”(이용포, “무위당 장일순-생명사상의 큰 스승”)

"치악산의 상원사에 들렀을 때 지학순 주교와 장일순 선생이 대웅전의 불상을 향해 합장을 하고 절을 하는 것을 보고 일행이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천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째서 불상을 보고 절을 해요?' 장일순이 껄껄 웃었다. 이 사람아, 성인이 저기 앉아 계시는데 어찌 우리 같은 소인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성현, <좁쌀 한알>)

"이 일화를 통해 장일순의 종교사상이 조금도 꾸밈이 있다거나 과장되지 않은 것임이 보인다. 정호경은 장일순에게 ‘불취외상 자심반조’(不取外相 自心返照)란 글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받았던 적이 있다. 여기서도 장일순의 종교 간 융섭과 일치 사상이 정호경(신부)의 종교사상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가톨릭 신부가 불교 경전의 알맹이를 화두로 삼는다! 거 참 좋구나! 그래, 종교의 벽을 넘나들며 산다는 것, 그게 하느님의 뜻일 테고, 예수 석가의 길이니까, 마땅하고 옳은 일이야! 하지만 거기서 그냥 머물러서야 쓰겠는가! 끝도 없이 나아가야지! 애당초 한 몸이었으니까 ! 이념의 벽도 종교의 벽도 허물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벽도 허물고 하나로 통일될 때, 그 때 거기서 참 생명이신 하느님도, 너도, 나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정 신부, 아우님(생전의 선생은 술자리에서 저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렇지 않소이까? 하하하.”
(월간 <갈라진시대의 기쁜소식>2014년 11월호)

스콧 니어링 선생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마무리!

"1992년 6월 12일 방영된 MBC TV <현장인터뷰ㅡ이 사람> 프로는 전 동국대 철학과 교수 황필호를 대담자로 내세워 1시간 동안 방영하였다. 이 TV 방송은 전국적으로 장일순의 생애와 사상, 실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장일순은 1991년 6월 위암진단을 받고 치료중이었다. 원주 봉산동 토담집에서 MBC와 TV 대담이 진행되고 농부들과 들녘에서 직접 대화하는 모습도 담겼다. 몇 대목을 골랐다.

황필호 : 그런데 선생님, 요즈음 병환중이라고 그렇게 들었는데요.
장일순 : 작년 6월에 위암으로 수술을 했었습니다.

황필호 : 수술을 받으셨습니까?
장일순 : 네, 네. 그래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 통원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황필호 : 그런데 환자 같지 않으세요!
장일순 : 아유 저, 글쎄올시다. 우리말에 앓으면 벼슬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병을 앓으면, 이 암이 시대의 병 아닙니까?

황필호 : 하하하, 그래서요.
장일순 : 그러니까 자연도, 지구도 암을 앓고 있고, 자연 전체가 암을 앓고 있는데 사람도 자연의 하나인데 사람이라고 왜 암에 안 걸리겠어요. 그러니까 큰 것을 나한테 가르쳐주느라고, 결국은 지금 뭐냐하면 너 좀 앓아봐라 하고 그러시는 것 같아요.

황필호 : 그래서 앓는 것을 벼슬한다 그렇게 이야길 합니까?
장일순 :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모시고 가지요.

황필호 : 특별히 선생님, 옛날에, 정치운동이라고 하면 선생님이 싫어하십니다만, 그래도 사회운동을 하셨는데 그런 일을 하시다가 풀 한포기를 가꾸는, 이렇게 변하셨다고 할까, 그렇게 되신 동기는 어디 있습니까?
장일순 : 기본적으로 운동을 하다 보니까, 이 산업문명 자체가 계속 자연을 파괴해가고, 우리가 살아가는 땅마저도 망가뜨려가고 또 그 속에서 생산되는 우리들의 농산물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질병을 가져오고 이렇게 되니까, 이래 가지고는 아무 의미가 없지 않느냐. 땅이 죽고 사람이 병들고 그러면 끝나는 게 아닙니까? 자연이, 생태계가 전부 파괴되고, 그것은 정치 이전의 문제요 근원적인 사람의 문제다. 이 말씀이야. 그러니까 오늘날의 정치라든가 경제라든가 이런 것은 경륜이 없는 거라, 살아가는 길이 없는 거예요. 막힌 짓들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살아가는 길을 틔워주는 방향에서 우리가 서로 이야기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저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겁니다.

황필호 : 이거 실례되는 질문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 연세도 많으시니까, 선생님의 생사관을 듣고 싶습니다.
장일순 : 글쎄요, 단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겠네요. 그러나 사는 동안에는 건강하게 살아야 되겠구나. 또 최소한도 자기를 속이지 않는 삶을 살다 가면 지극히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맨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속이는 생활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매일 넘어지지요. 넘어지고 난 다음에는 "아이구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고, 그런 꼬라지예요.

황필호 : 죽은 다음에 천당가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까?
장일순 : 그런 거 생각 안 해요. 천당이고 지옥이고가 다 여기 있으니까, 잘못하면 잘못한 만큼 또 보상을 하고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세상이 불공평해서 재미가 없지요. 예수님께서는 나는 죄진 자를 위해서 세상에 왔다고 하니까 지옥을 자청했고, 또 부처님께서도 다 극락에 가지 못한다면 나는 지옥에 남겠다고 말씀을 했는데.

황필호 : 선생님,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을 위해서, 우리나라 국민을 위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한마디 해주시면 좋겠네요.
장일순 : 어차피 어떤 한 시대가 가고 변화하는 시대가 아니라, 문명 자체가 지금 종말을 고하는 세상이고, 지구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그런 시대니까, 삶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 되는가에 대해서 결정적으로, 결단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하는 위기에 왔다고 하는 것을 한마디 드리고 싶어요. 이것은 기복신앙이라든가 미신신앙에 있어서 어떤 극락에 가야 하겠다든가, 언제 지구가 망한다든가 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인간이 저지른 과오 때문에 자연이 파괴되고 인간과 인간끼리의 영성이 다 파괴됐는데 이것을 회복해야 하는 중요한 국면에 놓여있다고 하는 것만은 명심해야 되겠다 하는 얘깁니다." (김삼웅,[무위당 장일순평전 63회] '전국적으로 장일순의 생애와 사상, 실상을 알리는 계기가 돼다'오마이뉴스2019.01.26)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는 무위당 장일순 요한 선생님!

우리 민족이 이념과 종교와 격차의 벽도 허물고 하나로 통일되어 모두가 서로의 모습에서 참 생명이신 하느님을 뵐 수 있게 빌어 주소서!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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