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표류기: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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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표류기: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
  • 이현아
  • 승인 2019.05.21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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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아/‘세상을 향해 열린 고독, 겟세마니 수도원’ 수강 소감-1]

2019년 5월 20일, 카톨릭일꾼에서 진행하는 강습회에 다녀왔습니다. 오늘 주제는 "세상을 향해 열린 고독, 겟세마니 수도원." 지난 가톨릭일꾼 피정에서 토머스 머튼에 강의를 해 주셨던 정경일 선생님(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께서 2월17일부터 9일동안 토머스 머튼이 수행했던 겟세마니 수도원에 머물면서 성찰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토머스 머튼의 <칠층산>을 꾸역 꾸역 읽었던 저로서는 정경일 선생님의 토머스 머튼 이야기에 퍼즐조각이 맞춰지듯 흥분이 되었답니다.

 

토머스 머튼의 은수처. 사진=정경일

 

토머스 머튼의 은수처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사진=정경일

철저하게 고독하고자 했던 머튼의 은수처는 아이러니 하게도 겟세마니 수도원에서 불과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 속 토머스 머튼의 은수처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나무나 암벽에 둘러 쌓인 폐쇄공간이 아닌 탁 트인 벌판이었습니다. 고독한 은수자가 문을 열고 나오면 언제라도 받아줄 수 있다는 듯이 벌판은 양팔 벌려 그 자리에 있었답니다.

정경일 선생님은 겟세마니 수도원에 있는 9일 동안 매일 7번의 기도시간(시간경)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며 뿌듯하게 웃으셨습니다. 이틀째 되는 날 세수할 때 코피가 나기도 했다며 쑥스러워 하셨지만 새벽 3시에 수도자들이 이 땅의 가난한 자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기도가 주는 아름다움과 기쁨에 푹 빠졌다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하루에 일곱 번은 커녕 아침과 잠자기 전, 이 땅의 가난한 자들에게 용기와 힘을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며 겨우겨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일에 지쳐 잠이 쏟아지면 자면서 기도를 하기도 하는 날라리 신자이기도 하고요. 겟세마니 수도원에서 수도자들과 똑같이 하루 7번의 기도를 바친 정경일 선생님의 의지와 믿음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의무적으로 기도를 하던 저에게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놀이"라는 메시지도 잊혀지지 않을 듯 합니다.

 

사진=한상봉

토마스 머튼은 기도와 기도 사이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묵상과 성찰을 하며 많은 글을 썼다고 합니다. 자유시간이 많아 이 일을 할까 저 일을 할까 고민만 하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저에게 큰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규칙이 까다롭고 7번의 기도 시간을 갖는 수도원에 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지만 게으르고 잠이 많아 쫓겨날게 분명하니 빨리 생각을 접었습니다.

정경일 선생님은 토마스 머튼의 무덤 옆에 나란히 자리잡은 스테픈 수사의 묘비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수도원의 정원사였던 스테픈 수사는 기도보다 정원의 꽃과 나무를 가꾸는 일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걸 오직 ‘하느님만’ 바라봐야 할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집착으로 여긴 수도원장이 스테픈에게 정원 가꾸는 일을 금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 새로 원장이 된 분은 스테픈 수사가 꽃과 나무를 가꾸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에, 그를 수도원 정원사로 임명했습니다.

스태픈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원에서 지냈고 수도자가 준수해야 할 매일의 기도에는 전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수도자의 가족이 겟세마니를 방문하면 스테픈은 그들에게 예쁜 꽃다발을 만들어 선사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자신의 정원에 누워 있던 스테픈은 지나가는 수도자에게 인사하듯 가볍게 손을 흔들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강의에서 스테픈의 삶과 죽음을 ‘최종적 통합’이라고 했으며 스테픈은 다른 누군가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서, 즉, ‘정원사’로서 신과 인간과 자연을 온전히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인이 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이라는 머튼의 믿음과 일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진=한상봉

저는 감히 ‘성인’은 될 수 없지만 진정한 ‘ 나 자신’이 되어 살고 싶습니다. 진정한 ‘나’를 찾게 될 때 불안의 표류를 멈추고 정착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때까지 가톨릭일꾼 선박에 몸을 싣고 떠나보겠습니다. 그 분이 계신 곳으로 출발!

이현아 안젤라
가톨릭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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