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교회, 슬픔으로 자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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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교회, 슬픔으로 자비로
  • 한상봉
  • 승인 2016.05.2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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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한상봉 칼럼]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라고 고백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비의 특별희년 선포 칙서’를 발표하면서, ‘자비의 문’을 12월 8일에 열게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 날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날이라고 합니다. 공의회를 통해 “오랫동안 교회를 안온한 도성처럼 감싸 주던 성벽은 무너져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게 교종의 생각입니다. 이 새로운 방식은 한마디로 교리의 선포를 넘어서 ‘자비의 구체적 실천’으로 복음을 선포하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흔히 ‘자모이신 교회’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만, 정작 교회를 어머니처럼 느끼기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교황과 주교와 사제들은 모두 남자이고, ‘아버지’라고 불리기를 좋아합니다. 복음서에서 누구에게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고, ‘스승’이라는 소리를 듣지 말라고 예수님은 가르치셨지만, 교회현실은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믿지 않는 하느님>이라는 책을 쓴 후안 아리아스는 “그리스도는 ‘스승, 아버지, 지도자, 장상, 각하, 전하’라는 칭호를 들으면서 성직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봉사하는 사람이 되기란 쉽지 않음을 잘 아셨던 모양”이라고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늘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저는 섬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느끼기는 참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초기교회에서는 이 말의 뜻을 잘 알아듣고 있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백인대장 고르넬리오가 자기 발 앞에 무릎을 꿇었을 때 황급히 그를 일으켜 세우며 “일어나십시오. 저도 역시 사람입니다.”(사도 10,26)라고 말했습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이 방한했을 때 꽃동네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교종을 기다리던 수도자들이 모인 강당의 단상에는 꽃동네 측의 요구로 커다란 교황의자가 주문 제작되어 놓여 있었는데, 사전에 도작한 교황의 의전관들이 성급히 이 교황의자를 치우고 주변에 있던 평범한 의자를 갖다 놓았지요. 프란치스코 교종은 용상 같은 격식 있는 높은 의자보다 낮고 평범한 의자에 앉아 수도자들을 만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종중의 종’다운 모습입니다. 꽃동네 수도자들이 무릎을 꿇자 당황해서 그들을 일으켜 세운 분도 교종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황’을 ‘교종’이라 부르자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제는 종이 아니라 너희를 벗이라 부르겠다”고 하신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회의 황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친구’로 있기를 갈망합니다. 참 다행한 일입니다.

이런 프란치스코 교종이 <자비의 얼굴>에서 특별히 요한 23세 교종을 되새기며 다시 살려낸 이름이 ‘어머니이신 교회’와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연설 제목 자체가 ‘어머니이신 교회가 기뻐합니다’(Gaudet Mater Ecclesia)입니다. 요한 23세 교종은 이날 이렇게 선언합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신부는 엄격함이 아닌 자비의 영약을 사용하고자 합니다. ... 가톨릭교회는 공의회를 통하여 신앙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들고, 사랑이 넘치는 모든 이의 어머니, 인자하고 인내하는 어머니, 갈라져 사는 자녀들에게 다정하고 자비로운 어머니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한상봉

프란치스코 교종은 “자비를 베푸는 것이 하느님의 본질”이라면서, 하느님의 “애끊는 사랑”을 강조합니다. 시편을 인용하며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주시는 분”이 그분이시고,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을 일으키시고 악인들을 땅바닥까지 낮추신다”고 말합니다. 덧붙여 “억눌린 이들에게 올바른 일을 하시며,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주시는 분”이고, “붙잡힌 이들을 풀어주시고 눈먼 이들의 눈을 열어 주시며 꺾인 이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라 합니다. “의인을 사랑하시고 이방인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시는 분”이며 “악인들의 길은 꺾어 버리시는 분”이라 합니다.

이처럼 교종은 하느님의 자비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야 ‘사랑’이라고 설득합니다. 결국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게 겸손하게 다가가는 사랑, 어머니다운 품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가련한 이들에게 대한 ‘연민’이 있습니다. 고린토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가 전한 그 사랑은 바로 ‘연민’이지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없으셨다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의 연민이 그분께서 하느님이심을 비우시고 사람이 되도록 하신 것이지요. 그 사랑의 깊이와 넓이는 바오로의 편지를 통해 너무도 아름다운 언어로 발설됩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1-3)

시인 황지우는 다른 길을 걸어 이 진실을 접한 사람입니다. 1980년 광주의 아픈 오월 하늘을 건너온 시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박쥐>라는 시에서 “태어난 후, 아무 것도 믿지 않았으며,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시인은 이윽고 “현실에도 열린 나의 시적 통로는 연민”이라고 합니다. 상처 입은 자들에 대한 “연민은 도덕적 임포야, 혁명의 설사제”라고 노래합니다.

‘아무도 돌보지 마라’는 말이 신념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새삼 프란치스코 교종이 ‘자비와 연민’을 강조하는 것은 ‘영적 혁명’입니다. 무딘 나의 이웃에 대한 감수성을 다시 회복하라는 도덕적 요청입니다. 교종은 이웃의 삶에서 ‘슬픔’을 발견하라는 어려운 주문을 하십니다. 슬퍼할 줄 아는 능력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슬픔 가운데 연민이 솟고, 이 사랑만이 우리를 정말 변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윤동주 시인은 슬픔이야말로 참된 복이라고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윤동주, 팔복(八福)

복음서에서는 슬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과 온유한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 모두가 “행복하다”(마태 5,3-10)고 말합니다. 그러나 윤동주는 오직 ‘슬퍼하는 자는 복되다’고 거듭거듭 읊조립니다. 이 슬픔에는 끝이 없습니다.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라 합니다.

극단의 상황에서 일제식민지를 살았던 윤동주에게 슬픈 겨레의 운명은 계속될 것이고, 겨레의 슬픔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에게도 슬픔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엄숙한 고백입니다. 윤동주는 영원한 슬픔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사랑의 사람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은 <복음의 기쁨>에서 “우리의 끝없는 슬픔은 끝없는 사랑으로만 치유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영원한 사랑으로 슬픔의 끝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신앙인이라는 생각, 오늘 저녁 다시 새겨 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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