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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하늘까지, 걷는 하정우입니다

[한상봉 칼럼] 

웬만하면 걸어 다니는 배우 하정우입니다. 아침에 일 나가는 아내가 “꼭 좀 읽어보라”며 탁자에 올려놓은 책의 첫 구절이다. 사무실도 작업실도 없이 집에서 일하는 나는, 요즘 배가 나와서 걱정이다. 아파트에서 걸어봐야 안방과 거실, 싱크대와 화장실이다. 책상머리에서 앉았다 누우면 방바닥이다. 하루 한 번은 ‘무조건’ 바깥으로 산책 나가라는 아내의 요청이다.

하정우는 배우 마동석에게 ‘마동동’이란 별명을 붙여주었지만, 팬들은 하정우를 ‘하대갈’이라 부른다. 머리가 커서다. 하정우는 머리만큼 큰 두 발을 자랑으로 여긴다. “가끔 큰 머리에 어지러운 생각과 고민이 뭉게뭉게 차오르기 시작할 때면, 그 생각이 부풀어 머리가 더 무거워지기 전에 내 왕발이 먼저 세상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머리 큰 내가 발까지 큰 건 분명 축복이다.”

하정우는 “내가 사는 도시를 내 발로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동네에 연결된 작은 골목길들을 알아가는 게 나는 즐겁다”고 했다. 예수님이 그 길목에서 제자들을 만났고, 절름발이와 병자들과 마리아 막달레나와 자캐오도 만났다.

부활절 아침 예수님 무덤에서 여인들이 만난 젊은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면서 그분은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셨다”고 전한다.(마르 16,6-7) 갈릴래아는 예수님이 살고 활동하셨던 장소이다. 예수님은 아마 지금도 호수의 미풍을 느끼고, 나자렛과 가파르나움의 그리운 골목길을 걷고 계실 것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자동차로 지나간 길은 그리움을 남기지 않는다. 창문 밖으로 건너다 본 사람에게 연정을 느낄 수는 없다. 함께 걷고 힘써 일하며 더불어 쉬던 나무그늘에서야 우정이 발생한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생각을 낳는 삶이란 부질없다. 그곳엔 그리움이 없고, 감당해야 할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는 그런 그리움과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였다. 그러니, 거기서만 예수님은 부활한다. 예수님은 관념적 사랑이 아니라 피부로 느끼는 사랑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장현철이 부른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노래에 열광한 적이 있다.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 힘든 지난 추억이
가슴 깊은 곳에 숨겨 둔 너를 생각하게 하는데
어둔 미로 속을 헤매던 과거에는
내가 살아가는 그 이유 몰랐지만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건 네가 있다는 그것
너에게 모두 주고 싶어 너를 위하여
마지막 그 하나까지.”

그분이 마음을 담아 눌러 밟았던 길을 따라가자는 게 우리네 신앙이다. 교황님의 말마따나 가난한 이들이 머무는 변방으로 ‘걸어가야’ 하늘길이 열린다. 복음의 참뜻이 읽힌다. 가자, 걸어서 하늘까지. 

*이 글은 천주교 수원교구 주보 5월 5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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