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칼럼
세월호 5주기, 슬픔을 빼앗긴 슬픔에 대하여

[신배경 칼럼]

벌써 5년 전 일이다. 세월호 참사, 아득하고 생생하다. 당시 진도 앞바다에 배가 침몰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며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밀물과 썰물에 멀미가 났다. 한 명이라도 살아있기를 바라다가, 이내 한 명도 빠짐없이 장례를 치룰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 마음도 침몰하는 배와 같았다.

세월호, 남의 일이 아니다

일상을 추스르고 못하고, 웃음마저 사라진 어느 날 전남 고흥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죽은 친구를 만나러 찾아갔던 고흥에서 잠시 만났던 할머니는 “이게 뭔 일이다요, 이게 대체 뭔 일이다요.”를 반복했다. 할머니는 당신 지인이 안산으로 이사 갔는데, 그 집 딸이 미수습자 명단에 올라와 있다는 거였다. 젊은 부부가 느지막이 얻은 외동딸이라 한다. 속이 타들어간다는 할머니는 그 아이를 위해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분은 팽목항으로 가는 밥차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린 것이다. 2014년 희생자 수색 마지막 날,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이름이 들려왔다. 이 아이는 수색을 접기 하루 전 날 부모님에게 돌아왔고, 그 날은 아이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만난 일이 없지만, 남의 일처럼 느끼지 않는다.

 

사진출처=위키백과

왜 추모를 가로 막는가?

그 이듬해 세월호 1주기를 치르면서,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추모제에는 세월호 참사로 숨진 304명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모였다. 눈빛 한 번 스친 적 없는 희생자들이지만, 가슴으로 만난 인연들이다. 타인이 내가 되는 공감의 순간이었다.

추모제 마지막 순서는 광화문 광장에 있는 영정 앞에 헌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것은 정체가 아닌 ‘정지’였다. 길이 막혀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고, 옆길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경찰은 꽃을 든 사람들을 사방에서 가로 막았다. 이 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난 단지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한 사람으로서, 허망하게 꺼져간 생명들이 안타까워서, 차디찬 바닷물 속에 수장된 삶들이 아파서, 국화꽃 한 송이 들고 갔다. 대한민국 경찰은 영정 앞에 헌화하러 가는 길을 가로막고, 손에 꽃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로를 불법으로 점거했다고 했다. 우린 추모하러 간 것이다. 영정 앞에 국화꽃을 놓으러 간 것이다.

꽃을 든 시민들에게 경찰은 무엇인가를 뿌렸는데, 그 유명한 캡사이신이었다. 시민들은 손에 꽃을 들고 있었다. 왜 영정 앞에 꽃을 놓으면 안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꽃을 들고 있던 누군가는 끌려갔고, 누군가는 캡사이신 범벅이 됐다. 꽃을 들고 있던 그들은 교복 입은 고등학생, 엄마 아빠와 함께 나온 아이들, 친구들과 손잡고 나온 대학생, 퇴근길에 합류한 직장인, 머리 희끗한 어르신들,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경찰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결국 영정 앞에 놓지 못한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묻고 또 묻는다. 꽃을 왜 막는 것인가? 단지 꽃 한 송이를.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말하지 않았는가. 인권 문제를 정치로 보지 마라고.”

그 날 나는 영정 앞에 꽃을 가져다 놓을 수 없었다. 밤을 새는 한이 있어도, 서울 시내를 돌고 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영정 앞에 가려했지만, 모든 길이 막혀 있었다. 떨리는 손에 꽃을 쥔 채로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던 시각이 새벽 3시. 다음 날 유가족들이 광화문 앞에서 밤새 경찰들의 방패에 둘러싸여 계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자식 잃은 어버이의 애도를 막는 것인가? 누가, 무슨 권리로, 무엇 때문에.

 

사진=한상봉

떠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난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친구의 죽음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50일의 애도기간을 지낸 후에도 친구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디에선가 살아있을 것 같고, 잘 지내고 있을 것 같고, 각자 사느라고 바빠서 소식이 뜸해진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50일간의 연미사가, 납골당에서 보았던 친구의 이름과 사진이 꿈결인 듯 느껴지곤 한다.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 1809-1892)은 3년간 우정을 나눴던 할렘이 사망하자, 17년 동안 3000행에 달하는 시를 썼다. 그 시가 유명한 비가(elegy: 죽음의 이별에 부치는 시)로 꼽히는 ‘사우보’(思友譜, In Memoriam, 1850)이다. 그는 17년 동안 친구의 죽음을 애도한 셈이다. 혈육이 아닌 친구를 잃고 써 내려간 이 시들의 행간에 스며있는 아픔은 얼마이며, 또 미처 쓰지 못한 시가 얼마나 될지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고흥 도화에서 만났던 할머니는 내가 도화를 떠나기 전 날 밤 찾아오셔서 여섯 해를 살고 세상을 떠난 딸아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딸아이가 생전에 불렀던 노래를 아흔을 바라보는 할머니는 또렷이 기억하고 계셨다. 할머니는 내게 노래를 들려주셨던 그 목소리로 딸아이를 잃은 안산의 부부 소식을 전해주셨다. 흐느끼고, 또 흐느끼시며.

리본만 보아도 목울대가 아리다

세월호 5주기가 다가온다. 얼마 전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느냐고, 지나치다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엇을 그만하라는 것인가? 대체 무엇을? 공감할 수 없다면 침묵하기를. 비록 비겁한 침묵이라 할지라도. 노란 리본만 보아도 목울대가 아리다. 304명과 아무런 인연이 없던 내가 감히 아프다. 자식을 잃고도 슬퍼할 수 없는 세상을 목도했던 비애를 표현할 길이 없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분향소가 있던 자리에 추모 공간인 “기억, 안전 전시공간”이 새로이 조성된다고 한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무엇을 기억하려 하는가.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막고, 애도의 기간을 빼앗았던 잔인한 4월을 나는 보았고, 아직도 그 슬픔 가운데 머물러 있다, 그 슬픔에도 인간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돋을 때까지.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신배경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