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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보기] 역사의 예수라는 ‘모던 예수’의 탄생,예수 해석학 II: ‘저자 중심’에서 ‘독자 중심’ 해석학으로-1

아도르노(Theodor L. W. Adorno)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는 서양 근대에 대한 기념비적인 비평서인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ärung, 1947)을 함께 저술했다. 여기서 그들은 서양의 근대가 전근대를 ‘신화’로 낙인찍으면서 그것의 극복으로서의 ‘계몽’(Aufklärung / enlightenment)으로 자신을 이해했다고 한다. 즉 신화와 계몽은 담론적으로 대립물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신화 대 계몽의 이분법’은 ‘자연 대 역사의 이분법’과 등가적임을 주장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인간 역사(저자들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특히 서구 백인 남성의 역사)가 자연을 남용, 지배, 착취하는 과정에 대한 은폐의 기재가 계몽이요 역사였음을 분석해낸다. 그러므로 ‘과거에 관한 근대의 학’이었던 역사는 바로 근대주의 담론의 산물이 된다. 물론 이것은 요세푸스(Josephus)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의 저작들 같은 고대의 역사서들 속의 ‘역사’ 개념과는 다르다.

근대의 ‘역사’는 이런 고대의 역사서들을 사료로 삼고 근대적 지식의 도구들을 활용하여 수행한 역사적 작업들 또는 그것을 둘러싼 담론 제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역사적인 저술의 생산, 유통 메커니즘을 포함하며, 생산자와 소비자 각자의 욕망체계와 관련한 상호연계 양식 등이 얽혀있다. 또한 그러한 학문 제도의 매트릭스인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언어적 구조의 산물이다.

이러한 근대주의로서의 역사는 ‘과거를 사실 그대로 재현해낸다는 믿음’ 위에서 성립했다. 그 믿음 속에는 근대인의 당대적 자기 확신을 ‘시간적인 장벽을 초월한 보편적인 진리’라는 확신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대학이라는 근대적 학문제도와 떼어 낼 수 없다. 이렇게 대학을 매개로 발견된 역사적 사실들은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즉 진보하고 있는) 진리의 부단한 역사의 일부다. 여기서 진보에 대한 이상과 시간의 학으로서의 역사는 하나로 만난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를 향한 진보의 역사를 가로막는 것은 청산되어야 하며, 역사학은 바로 이런 지향과 청산의 담론인 셈이다.

 

오른쪽 : 역사학자 라이하르트 코젤렉

한편 역사학자 라이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은 《지나간 미래》(Vergangene Zukunft, 1985)에서 진보주의와 역사학의 대두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16세기 이후 본격화된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과 그 직접적인 효과인 식민지 확장은 근대적 유럽인의 ‘공간적 인식’의 질서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18세기 말 즈음, 이러한 공간적 확장이 거의 정체된다. 공간 확장에 대한 인식의 관성은 지속되는데, 공간의 확장은 더 이상 경험되지 않는 현실이라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코젤렉에 의하면, 이러한 기대지평과 경험공간의 괴리를 유럽인들은 ‘시간의 확장’을 통해서 돌파하였다고 본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유토피아적 시간’에 대한 열망으로 드러난다. 진보에 대한 믿음이다. 곧 진보된 미래 지평인 ‘상상의 공간’ 유토피아는 현실의 규범이자 실천 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계몽’으로서의 시간 인식은 바로 이렇게 유럽인에게 다가온 것이다.

 

슈트라우쓰의 《예수의 생애》(1835)르낭의 《예수의 생애》(1863)

바로 이 시기에 예수에 관한 역사적 연구도 시작되었다. 연구의 선구자인 슈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나 르낭(Joseph Ernest Renan) 등의 저작은 전근대적 지식의 제도이자 사회・정치적 권력 기구인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구성되었고, 또 같은 맥락에서 사회적으로 유통되었다. 많은 형식의 담론들에 비해 예수 연구가 특히 주목해야할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교회는 예수를 어떤 방식으로든 재현함으로써 존속할 수 있는 종교제도인데, 그러한 교회의 예수 재현이 신화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역사의 예수’보다 통렬하게 드러내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전근대적 제도를 해체하고 근대적 제도를 구축하는 장치로서 다른 무엇보다 효과적인 담론 양식이었다. 이와 같이 역사의 예수 연구는 과거 사실에 대한 이해를 연구자 동시대의 정치적 요구에 연계시키면서 탄생하였다.

독일의 낭만주의 비평가인 프리드리히 슐레겔(Karl Wilhelm Friedrich [von] Schlegel, 1772~1829)은 ‘과거’의 사실을 재현하려는 역사가를 “뒤로 몸을 돌리고 있는 예언자”라고 묘사하였다고 한다. 그가 향하고 있는 ‘뒤’는 ‘과거’이며,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래’다. 즉 과거 사실에 대한 탐구인 역사학조차도 미래의 유토피아를 상상하기 위한 예언자적 시간 순례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는 이러한 과거-미래를 잇는 진보의 시선에서 조율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유럽인의 인식론적 사투의 한 가운데서, ‘역사의 예수’ 담론은 유토피아로서의 상상적 미래를 구성하기 위한 유럽적인 열망을 담고 있었고, 또한 ‘지체된 근대’ 혹은 전근대적 표상으로서 실재하는 교회의 ‘회고주의’(과거 지향성)에 대한 도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예수’ 연구라는 역사학적 운동은 교회 제도와 직간접으로 연루된 신학적 공간 내부에서 벌어진다. 그것은 초기의 ‘예수 역사학’이 슐레겔이 말한바 ‘미래 지향적 역사’이라는 변수 외에, ‘과거 지향적인 신앙’이라는 변수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역사의 예수’ 연구의 궤적은 처음부터 줄곧 역사와 신앙이라는 두 주요 변수에 의해 규정된 이차원 공간상의 좌표점 위에서 움직여 왔다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라는 변수는 ‘유럽적인 근대성의 범주’이고, ‘신앙’은 ‘유럽적인 전통의 범주’다. 전자는 ‘미래 지향적 진보’의 관점과 맞물려 있다면, 후자는 ‘과거 회고적인 전통’의 관점을 반영한다. 그리고 양자는 어떻게 해서든 통합되었다.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감안하면서 초기의 연구사를 양분하면, 두 변수 가운데 ‘역사’를 좀 더 중요하게 보면서 교회 전통과의 차이를 강조하려는 계열(차이의 전략, 슈트라우쓰 등 튀빙엔 학파)과, ‘신앙’에 초점을 두면서 교회 전통과의 화해를 모색하려는 계열(동일성의 전략, 알비레히트 릿츨 등 종교사학파라고도 불리는 괴팅엔 학파)로 양분할 수 있다.

하지만 알버트 슈바이쳐(Albert Schweitzer)가 17~19세기의 예수 연구사를 비평하는 기념비적 저서 《예수의 생애 연구사》(Geschichte der Leben-Jesu-Forschung: Von Reimarus zu Wrede, 1906)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이 시기 예수에 관한 역사적 연구는 전반적으로 근대주의적 이상과 예수를 어떤 형태로든 결합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역사의 예수는 근대 유럽인의 욕망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즉 역사의 예수는 모던 예수였다.

김진호
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
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소 연구실장, 한백교회 담임목사, 계간 《당대비평》 주간.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주간경향》 《한겨레21》 등의 객원컬럼리스트. 《예수역사학》 《예수의 독설》 《리부팅 바울―권리 없는 자들의 신학을 위하여》 《급진적 자유주의자들. 요한복음》 《권력과 교회》 《시민K, 교회를 나가다》 《반신학의 미소》 등 지음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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