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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복된 넘어짐이여!

[신배경 칼럼]

20대에는 그랬다. 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모든 것을 내가 이루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쿵. 넘어졌다. 아니, 고꾸라졌다. 아니, 곤두박질 쳤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 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열린 문 틈으로 새어 들어온 빛. 그 빛을 보려 넘어졌던가. 성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에 “오, 나의 복된 죄여.”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표현을 빌어 “오, 나의 복된 넘어짐이여.”라는 문장을 떠올려 본다.

몸을 일으켜 세우며 이루고 싶었던 꿈을 내려놓았다. 그 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나라는 사람은 꿈을 꾸는 것 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 내려놓는 것에 드는 에너지가 크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레 일어난 지각변동. 날 바라보며 대면하기 시작한 첫 걸음. 오랜시간 소중하다고 믿은 것을 내려놓으면서 나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자신을 직면한다는 것이 그렇게 아픈 과정인줄 미처 몰랐다. 나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껍질을 벗겨내며 아프고 아픈 시간을 견디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설명할 수 없는 내면의 이끌림을 따라 이탈리아를 거쳐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나라를 찾았다.

 

Community of Cenacolo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Herzegovina).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타국의 시골 마을. 태어나서 처음 방문한 낯선 땅에 도착하자마자 난 울고 있는 나를 만나야 했다. 눈물을 쉼 없이 흘리는 내가 낯설었지만 분명 나는 울고 있었고, 그 눈물은 내 육의 눈물이라고 보기엔 낯선 뜨거움이었다.

눈물이 그렇게나 뜨거운 것이었던가. 눈물은 그 곳에 머무는 동안 시도 때도 없이 내 얼굴을 적셨다. 내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듯, 통제 불가능한 흘러내림 내지는 쏟아짐이었다. 마치 영혼의 눈물처럼 느껴진 그 것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아직까지는) 없었다.

손수건과 휴지를 달고 다니던 중에 그나마 멀쩡했던 시간은 길에서 마을의 소녀와 소년들이 팔던 아이스크림을 사먹던 시간. 당시 1유로하던 거리의 아이스크림이 어찌나 맛있던지,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아이스크림 생각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싶을 정도였다. 아이스크림을 먹던 시간을 제외하고는 툭하면 눈물샘이 터졌던 그 시간을 나의 깜냥으로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나는 왜 그 마을에서 눈물을 흘렸던가? 모른다. 알 수 없다. 눈물을 닦아내는 틈틈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의 뒷 동산에도 오르고, 마을 사람들이 다니는 성당에도 가고, 식당과 카페에도 드나들며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구경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머무는 시간이 쌓여가자 내가 태어나 자란 곳과는 다른 문화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인지 알고는 있으나 내 고향의 문화는 아닌 그 무엇.

그 마을의 사람들에게서 "기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묵주를 들고 중얼거리며 걷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는데, 마을 뒷 산에 오르면 약속이나 한 듯 침묵 속에서 기도하는 모습 뿐이었다. 평범한 주민들이 마을 뒷 동산에 올라 기도하는 모습. 숨소리와 발자국소리, 산새소리가 전부였다. 수도원이 아닌 곳에서 침묵과 기도라는 단어를 만난 놀라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국민의 절반이 이슬람교도라서 종교가 이슬람교와 세르비아정교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가톨릭은 소수에 불과한데, 내가 찾았던 곳은 가톨릭신자들이 비교적 많은 곳이라고 들었다. 마을에 가톨릭 청년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있다고 했다. 이슬람교도가 대부분인 나라에 가톨릭 공동체라니. 그 것도 청년 공동체라니.

체나콜로(Community of Cenacolo)라는 공동체를 찾았던 날. 그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 당시 체나콜로에서 여러 해 머물고 있다는 미국인 남성을 만났다. 난 교과서로만 영어를 배운 탓에 통역 해주시는 분을 통해서 그 미국 국적의 청년이 체나콜로에 머물게 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관계로 A로 표기) 

기억을 더듬어 본 A의 이야기.
A는 미국의 부유한 집 안의 귀한 아들로 자랐다.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었고, 부족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삶을 당연하게 여겼다. 원하면 무엇이든 취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맘껏 누리며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으나 늘 마음 한 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꼈다고 한다.

좋은 집, 좋은 차, 수 많은 여성들과의 만남, 매일같이 이어지는 파티에서도 만족을 느낄 수 없었던 A는 결국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마약은 원할 때면 언제든 구하기 쉬웠다고 한다. 마약은 마약 없이는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터라 결국 A는 마약중독자가 되었고, 죽어야 끝날 것 같은 암흑같은 날들이 이어졌다고 했다. 심신이 망가질대로 망가진 A는 누군가의 소개로 체나콜로를 방문하게 되었고, 잠깐 머물다 가리라는 계획과는 달리 (그 당시) 몇 년 째 머물고 있다고 했다. 체나콜로에 머물며 마약을 끊게 되었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고, 무엇보다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얼굴에는 그가 고백한 과거를 짐작할 수 없는 환하고 아름다운 미소만이 있었다.

체나콜로 공동체는 이탈리아의 엘비라 수녀님이 설립하신, 수도원이 아닌 단순한 공동체로, 길 잃은 청년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수녀님이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청년 15명을 데려다가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시작된 공동체로 지금은 전 세계에서 몸과 마음이 병든 청년들, 특히 마약 중독으로 가족마저 포기한 청년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사진출처=pixabay.com

체나콜로에 처음 살기 시작한 새내기에게는 “수호천사”라는 친구가 따라다니는데, 24시간을 함께 한다. 마약 금단 현상에서 오는 발작, 포악함, 습관에서 나오는 거침을 “수호천사”가 온종일 따라다니면서 온전히 받아주고, 돌봐준다. 대부분 혈연도 포기한 중독자를 아무런 의학지식이 없는 평범한 청년들이 돌봐주는 것이다. 그 “수호천사”도 한 때 중독자였지만, 공동체의 응원으로 중독을 이겨내고 새로 났기에 새내기의 울부짖음을 온 몸으로 받아주고, 온 몸으로 이해하고 감싸주는 것이다. 

그렇게 새내기는 “수호천사”와 길다면 긴 전쟁의 시간을 지나 중독 이전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자신의 모습을 회복한 새내기는 또 다른 아픈 이의 “수호천사”가 되는 것이다. 

헨리나웬의 “상처입은 치유자”가 떠올랐다. 한 때는 병들었던 마음이 아픔을 감싸 안는 손길이 되어 보듬고 다독이는 사랑이 되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중독이라는 아픔의 시간을 뛰어 넘어 다른 이의 아픔을 감싸 안는 사랑으로의 변모.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받아들여지는 경험이 치유를 낳고, 치유는 또 다른 사랑의 길을 열게 된다. 

그 마을에 머무는 동안 기도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체나콜로 공동체 또한 기도하고 일하는 시간이 전부라고 했다. 기도란 무엇일까? 난 기도 안에 무엇을 담아 왔는가? 그들의 기도 안에는 누군가를 위한 마음이 담기어 그 마음이 사랑의 꽃을 피워냈기에 마을 곳곳에 사랑의 향이 가득하지 않았나 싶다. 그 곳의 공기에 스며있는 사랑을 들이마신 내 영혼이 눈물로 반응했던 것은 아닐런지. 오래전 보았던 그들의 기도가 그들의 삶이 유독 떠오르는 시간이다. 

난 행복한 사람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사랑을 이루어나갈 꿈을 꾼다. 지금, 여기에서.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 이대로 괜찮다고. 그대로 괜찮다고. 당신, 있는 그대로 괜찮다고.

신배경 클라우디아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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