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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바보가 묵묵히 제 길을 가기를<묵묵-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 고병권, 돌베개, 1018

동네서점에서 어슬렁거리다 <묵자가 필요한 시간>이란 책이 눈에 들어 왔다. 그런데 정작 집어 든 책은 고병권이 쓴 <묵묵>(돌베개, 1018)이다. 이 책에선 ‘인문학자’라는 표현이 나오지만, 결국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묻는 것이고, 이 지점에서 늘 절망하는 사람이 그 절망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살피는 이야기다.

<묵묵-침묵과 빈자리에서 만난 배움의 기록>, 고병권, 돌베개, 1018

고병권은 연구공동체 ‘수유너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사람이고, <언더그라운드 니체>(천년의상상, 2014),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그린비, 2003) 등 니체 전문가로 여겼던 인문학자다.

<희망의 인문학>에서 쇼리스는, “가난한 사람들은 포위되어 막다른 곳에 이르는 순간, 사냥꾼에 쫓기는 동물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종종 그러하듯이 자학적인 행동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가난을 개인이 아닌 사회의 문제로 던질 수 있어야 하며, 그러려면 그들에게 로고스, 즉 언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언어를 얻으려는 노력이 ‘인문학’이다.

지금은 ‘노들장애인야학’ 철학교사로 일하는 고병권은 “현장인문학은 인문학자가 쌓아둔 지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그런 지식복지 서비스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지적한다. 지식의 축적이 곧바로 좋은 삶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말은 그럴듯해도, 가방끈이 길어도 형편없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정치권에서 개판치는 인사들이 대부분 서울대 출신 아닌가?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라 관계이다. 관계가 낳는 절실함이다. 그래서 멕시코 치아파스의 원주민 여성이 들려주었다는 이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만약 당신이 우리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묵묵>, 31-32쪽)

그들의 삶이 내게로 왔다

어쩌면 고병권이 연구공동체에 머물지 않고 장애인야학에서 일하게 된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식과 삶이 어떻게 통합되어야 하는지 절절하게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학은 가난 때문에 학교에 다닐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학교 밖 학교’였다. 이들은 배움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야학에 오지만, 그들을 가난으로 내몬 현실까지 배우면서 장애인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배움은 각성이 되고, 각성은 그의 삶을 뒤바꾼다.

교사들도 장애인들과 접하면서 깊은 각성의 시간을 갖고, 그중엔 장애인 활동가로 나서는 이들도 많다. 이들이 나눈 것은 지식을 매개로 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한 번 깊이 눈빛을 맞추고선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타인을 바라볼 수 없다. 그 사람이 이미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그러하듯이.

나는 대학에 입학한 첫해에 인천의 ‘미추홀청소년학교’에서 야학교사로 일한 적이 있었다. 국어선생. 검정야학이었지만, 여기서 공부만 한 것이 아니다. 학생 중엔 인쇄소 식자공도 있었고, 전자회사에 다니는 여성노동자, 편물가게에서 일하는 여성도 있었다. 대부분 외지에 취직하러 온 친구들이었는데, 갓 대학에 입학한 내가 담임을 맡았던 고등부는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없었다. 몇몇은 수업시간에 열중했지만 몇몇은 늘 졸았다. “피곤한데, 영 졸리면 집에 가도 좋다. 굳이 학교 나올 이유가 있냐?”고 물으면, 그들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도 학교가 천국 같아요.”

교복은 없었지만,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그들이었다. 일부 학생들은 근무도 수업도 없는 주일에도 학교에 나와서 빈둥거렸다. 주일 날 만난 그네들에게 짜장면을 사준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지금도 만나면 내내 그 이야길 한다. 정말 맛있었다고. 지금은 미용사가 되어 있고, 여전히 편물가게에서 일하는 이도 있었고, 학교에서 서무 일을 보는 친구도 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차려 주신 아침상을 받아들고 울컥한 적이 있었다. 밥상에 오른 조기를 먹을 수 없었다. 친척집에 살며 눈치가 보여 휴일에도 무조건 집을 나선다는 친구 생각이 나서다. 그 후로 노동야학에도 잠깐 있었지만, 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살림살이면서도 더 헐한 음식에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오히려 가난해서 다행이다, 싶었던 젊은 날이다. 당시 한완상 교수가 쓴 ‘서민 예수’라는 글을 읽고서, 그 가난이 예수의 삶이기도 했다는 소식에 반가웠던 시절이다. 예수도 나처럼 목수인 아버지를 두었다는 일체감이 나를 견디게 했던 다복한 세월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지식인의 ‘옳은 말’ 잔치

지식과 언어에 대한 이야기 한 자락 더 한다.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무리 아름다고 옳은 소리라 해도 진정성이 없는 말은 헛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고병권은 <철학자와 하녀>(메디치미디어, 2014)에서 이렇게 썼다.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내가 내 식으로 체험하지 않는 말이란 한낱 떠다니는 정보에 불과하다. 세상에는 여전히 옳은 말들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세상에 옳은 말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이 정처 없이 여기저기 흘러다니고 있을 뿐이다.”

‘앎이 삶을 구원할 수 있을지’ 묻는 거다. 옳은 말을 찾자면, 러셀과 톨스토이의 어록만 뒤져봐도 수두룩하다. 농부의 삶에서 ‘진정한 신앙’을 발견했던 톨스토이가 농부가 되지 못한 절망감 때문에 괴로워했다면, 그래도 톨스토이는 앎이 그의 삶을 구원으로 이끌어가도록 허락했던 몇 안 되는 작가이며 사상가이다. 그러나 고병권의 고백처럼, 대부분 “옳은 말들은 기어가 빠져 공회전하는 엔진처럼 헛돌았다.”

가톨릭교회는 교황과 주교, 사제와 평신도로 이루어진 거룩함의 위계질서를 자랑한다. 교황은 하느님께 거의 손이 닿아있고, 하느님과 평신도 사이는 하늘과 땅 사이처럼 아득한 거리를 유지한다. 그러나 실상은 거꾸로 된 진실을 담고 있다. 교황과 주교와 사제들은 밥 먹듯이 ‘옳은 말/복음’을 쏟아내지만, 말한 대로 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인에게 존경과 감사를 받고, 기름진 밥상을 떠나지 않는 성직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뱉어낸 ‘옳은 말’이 그들의 삶을 단죄한다. 그래서 토마스 아 켐피스는 <준주성범>에서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는 자”라고 말한 모양이다.

고병권은 말의 덧없음을 노들야학에서 거듭 경험한다. 고병권은 2008년 겨울, 교사들을 대상으로 ‘현장과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을 마치고 질의응답마저 마무리되던 시간에 한 사람이 머뭇거리더니 손을 들었다. 말을 얼른 꺼내지 못했다. 입에 고인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자 그의 눈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겨우 감정을 가라앉힌 후 그가 물었다. “오빠가 지적장애인이에요. 선생님, 오빠에게도 앎이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고병권은 그때 그 질문에 대한 기억은 또렷한데 뭐라 답변했는지 기억이 없다고 했다. 이유는 뻔하다. 제대로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읽는데, 갑자기 복음서에서 “랍비여!” 하고 예수를 부르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지식인들은 이따금 선생님, 랍비의 자리에 서게 된다. 숱한 강의와 강연을 다니면서도, 청중들이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내게 ‘랍비의 지혜’를 구하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 순간 부담 백배다. 말문이 막힐 때, 고병권이 그때 그랬을 것이다.

지식이 아니라 ‘사랑뿐’

플라톤은 결함 있는 아이들은 내다 버리라 했고, 칸트는 이성이 없는 존재들에게는 인격을 부여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들에게 지적 장애인들은 철학 바깥의 유령이었던 셈이다. 철학이 답을 하지 못할 때, 고병권은 <어른이 되면>(우드스톡, 2018)에서 18년 동안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살아야 했던 동생 혜정 씨와 살았던 장혜영 씨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그는 동생과 함께 살면서 자연스레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생각 많은 둘째 언니’ 혜영 씨는 “앎을 통해 삶을 얻지 않았고, 함께하는 삶을 통해 앎을 얻었다.” 고병권은 여기서 “삶의 선생 노릇을 했던 앎의 대가들은 지적장애인들 앞에서 얼마나 무능했고 무례했던가” 물으며 혜정 씨에게 손을 들고 이렇게 묻고 싶어한다. “철학자에게도 삶이 앎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가톨릭 영성작가로 유명한 헨리 나웬은 예일 대학과 하바드 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지적장애인들의 공동체인 라르슈(방주)에 와서야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비로소 아버지의 집에 와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지적장애인들은 헨리 나웬의 탁월한 저작에 관심이 없고, 읽지도 못하고, 들어도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만나는 상대가 누구든 웃으며 환대할 줄 알았다.

헨리 나웬은 자신의 지적 능력이 전혀 의미가 없는 공동체에서, 자신이 정작 삶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세상에서 부숴진 사람에게 밥을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옷을 입히고, 함께 머물러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사랑을 발견했다. 그래서 뇌병변을 앓고 있는 아담에게서 자신이 오히려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지적장애인들은 앎으로 무장된 이들을 삶으로 초대한다. 끝내 남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뿐’이기 때문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겸손한 희망, 동쪽하늘을 보다

그래서 고병권은 ‘묵묵’(默默)이라는 말에 매료된 것일까? 그는 한때 인문학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보았다. 우리의 해방은 빵만이 아니라 장미를 필요로 하며, 인문학이 가난한 이들에게 최소한 장미 한 다발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지금도 그 비전이 환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가 경험한 것은 이런 희망마저 거슬러 희망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타자에게 무엇을 줄 수 있다는 생각마저 그쳐버린 뒤에 깨달음은 나중에 온다.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또는 그들 ‘때문에’ 무엇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버려야 한다. 현실은 녹록치 않고, 그런 희망은 절망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Petőfi Sándor portréja, Barabás Miklós litográfiája (1848)

대의명분을 내려놓고, 그냥, 또는 어쩔 수 없이 사는 법도 배워야 한다. 그냥 그저 우리는 제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길의 끝에서 나부끼는 깃발조차 바라지 않고. 여기서 고병권은 “급작스레 찾아온 노안처럼 먼 데를 보다가 정작 가까운 곳이 보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먼 데 소문에 귀를 기울이느라 옆에서 소매를 붙들고 말 건네는 존재가 있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뒤늦게 고백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마주 보고 있는 그 사람이다. 사랑도 혁명도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따금 루쉰이 헝가리 혁명시인 페퇴피 산도르(Petőfi Sándor, 1823-1849)의 시에 달아놓은 글처럼, 해 뜨는 쪽을 바라보아야 한다. “참혹한 인생이여! 페퇴피처럼 용감한 사람도 어둔 밤을 마주하여 걸음을 멈추고 아득한 동쪽을 돌아보았다.” 그럴 때 희망은 구체적인 몸을 얻고, 캄캄한 현실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다시 평생 원했던 그 길을 가게 된다.

“세상에 진정 캄캄한 길이 없다는 것은 알 것 같다. 길은 절망한 사람들에게만 캄캄하다. 숨을 깊이 마시고 정면을 주시하면 어둠은 옅어진다. 천천히 걷다보면 길이 조금 보이고, 보이는 만큼 걸어가 보면 또 그만큼 열린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게다가 그리 어둡지도 않은 길을 걸으면서도 내 가벼운 고개는 지금도 동쪽으로 돌아간다. 부디, 내 안의 영리함이 헛된 희망을 꾸며내지 않기를. 부디, 내 안의 바보가 묵묵히 제 길을 가기를!”(<묵묵>, 8쪽)

* 이글은 종이신문 <공동선> 2019년 03+04월호(통권 144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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