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종 "사목자는 밖으로 나가라"
상태바
프란치스코 교종 "사목자는 밖으로 나가라"
  • 한상봉
  • 승인 2019.03.12 12: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코-49

“성직자가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유혹은 목자가 아니라 관리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프란치스코 교종은 성직자든 평신도든 누구나 ‘밖으로 나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 왔다. 교종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 시절부터 “교회가 교구의 일을 처리하는 데 급급하면 교회가 곰팡이가 피고 습기로 눅눅해진 밀폐된 방에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해 왔다. 일종의 편집증과 자폐증상을 보이는 교회를 비판한 것이다.

교종은 밖에 나가서 고통 받는 교회가 병든 교회보다 낫다는 입장인데, “다른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는 교회는 우리 안에 있는 양의 털만 매만져주는 미용사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가 최종문서의 책임을 맡았던 <아파레시다 문헌>이 ‘선교하는 교회’를 강조한 것처럼, 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사목자로서 가장 중요한 책무였다.

응달 아래서 민중들과 더불어

프란체스카 암브로게티 등과 나눈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종은 교황청 국무원장을 역임했던 안토니오 카사롤리(Antonio Casaroli) 추기경이 수단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채 버스를 타고 매 주말마다 소년원을 방문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런 행보는 자칫 교황청에 매몰되어 관료화되지 않도록 추기경이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었다.

요한 23세 교종은 당시 카사롤리 추기경에게 소년원에 방문하는 일을 “절대로 그만 두지 말라”고 했다는데, 요한 23세 교종 역시 베네치아의 대주교로 있을 때, 수시로 ‘응달 아래의 의식’을 행하였다. 이것은 나무 그늘이나 식당 처마 아래서 백포도주 한 잔을 마시면서 교구 신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었다.

실제로 요한 23세 교종은 베네치아 교구장 시절에 누구나 사전에 정해진 약속시간이나 의전 절차를 밟지 않고도 주교관에 들어갈 수 있었고,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어울리게 자가용 모터보트가 아니라 곤도라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과 격의 없이 만나는 것을 즐겼다. 특히 성 마르코 광장 근처에 있는 카페에 앉아 비노비앙코 한 잔을 하든지 카날레 그란데 부둣가에 있는 계단에 걸터앉아 곤돌라 사공들과 정담을 나누었다. 마르게라의 공장에 찾아가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였고, 교구장으로 재임한 5년 동안 공단지역에 무려 30개의 본당을 세웠다.

 

넝마주이의 수레를 제단 삼아

프란치스코 교종 역시 거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교회가 부패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 교종은 베르골료 추기경 시절에 우리나라의 대한문 앞이나 서울 시청앞 광장과 마찬가지인 부에노스아이레스 도심에 있는 콘스티투시온 광장에서 넝마주이의 수레를 제단 삼아 거리미사를 봉헌하는 등 ‘바깥으로 나가는 사목’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뿐 아니다. 베르골료 추기경은 2008년부터 이 콘스티투시온 광장에서 ‘인신매매 희생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해 왔다. 이 미사에는 불법 이민자들과 매춘으로 희생된 여성들의 어머니들이 참석했다. 추기경은 이렇게 거리미사만 봉헌한 것이 아니라 노숙인 구호활동을 하는 ‘알라메다 재단’에 ‘개인적으로’ 후원했다. 종교지도자들이 교회나 기관 차원에서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개인 차원에서 후원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알라메디 재단은 노숙인뿐 아니라 강제 노역을 고발하고, 인신매매 퇴치 활동을 벌여 왔기 때문에 늘 범죄조직의 위협 속에 있었다. 그래서 추기경은 미사 강론을 통해 ‘현대판 노예제도의 폐해’에 대해 강력히 고발하곤 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알라메디 재단이 가톨릭단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재단 관계자가 추기경에게 알렸지만, 추기경은 오히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좋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교회 사목자의 사목대상은 신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추기경에게는 세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지역 주민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였기 때문이다. 교회와 사목에 대한 이런 교황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복음의 기쁨>이라는 교황권고다.

그러나 <복음의 기쁨>에 친밀하고도 장엄하게 선포된 내용은 이미 프란치스코 교종이 선출된 2013년 콘클라베 예비모임에서 그가 강연한 내용의 해설판이었다. 교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 그의 강연은 예비모임에 참석한 다른 추기경들에게 커더런 감명을 주었고, 그가 교황으로 선출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시 베르골료 추기경은 “복음화는 교회의 존재하는 이유”라고 밝히면서, “교회는 복음화를 위해 자기 자신 안에서 나와 밖으로 나가려는 열망을 포함한다”고 말했다. 죄와 고통, 불의와 종교적 배제, 온갖 비참한 한 현실 가운데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자기 중심주의에 빠져 있으면 교회는 병들고, “예수님을 자기 안에 가두고, 그분이 밖으로 나가시지 못하게 막는다”고 지적했다.

그런 교회는 “오직 서로 얼굴에 금칠하기 바쁘다”면서, 교회 개혁을 호소했다. 그는 추기경들에게 “새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과 흠승을 통해, 교회가 자기 안에서 나와 소외된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돕고, ‘복음화’라는 감미롭고 위안을 주는 기쁨으로 사는 풍요로운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강연을 마치고 며칠 후 열린 콘클라베 본회의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그 일을 떠맡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