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가난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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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가난 속에서
  • 마크 H. 엘리스
  • 승인 2019.03.0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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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공동체에서 보낸 1년-2

1978년 9월 5일, 마크 H. 엘리스

지금은 아침이고 나는 창문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길 건너편 일꾼공동체 집 바깥에 사람들이 길게 장사진을 치고 있다. 사람들 위로 자줏빛, 오렌지빛의 색종이들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그리고 간판이 보인다. “가톨릭 일꾼, 동(東) 1번가 36번지”

진의 아파트: 아주 낡아빠진 두개의 의자, 페인트 칠은 벽에서 다 떨어지고 있다. 바닥은 여기저기 갈라졌고 낡은 스테레오도 있다(고장난 것 같다). 갓이 없는 램프 그리고 벽을 장식하는 몇 장의 그림엽서가 붙어있다. 아주 냉냉하다.

길건너에는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은 술이 취했고 다른 사람들은 줄을 잘 맞추고 있다. 몇마디의 말 그리고 두사람이 서로 싸운다.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 말싸움은 끝난다. 그러자 한 사람이 길거리를 왔다갔다 하며 큰소리로 욕을 한다. 머리가 흥분해서 경련을 일으킨다. 그는 무언가에 사로잡혀 있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욕지거리 그리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육중한 건물들. 한 경찰관이 그를 보고 옆을 지나간다. 다른 사람들은 조용히 줄을 맞추어 서 있다. 우리 모두는 이 사람이 미쳐가는 것을 보고 있다. 머리가 약간 아프다.

하룻밤 나를 재워준 좋은 사람은 진 벨로우즈였다. 그는 아침을 먹자고 했고 그후 난 싱크대에서 양치질을 했다. 낡은 아파트의 다른 구석들처럼 부엌은 새고 있었고, 목욕대는 한쪽 구석에 거의 다 망가져 팽개쳐진 채 있었다. 목욕실은 작은 칸막이 방일 뿐이다.

진은 <가톨릭일꾼> 신문의 편집자이다. 매달 발행되는 8페이지짜리 신문이다. 아침 식사 후 진은 나를 건너편 공동체 집으로 데리고 갔다. 사람들의 줄은 아직도 더 길어지고 있고 그대로 서 있는다. 문을 열고 왼쪽으로 가니까 50피트 길이에 20피트 넓이 가량의 방이 있다. 입구에 서니까 보이는 것이 있다: 열개가량의 의자가 벽에 기대어 있다. 책상 위에는 한 남자가 슬리핑 백 안에서 자고 있다.

 

두개의 식탁위에 각각 12사람씩 식사준비가 되어 있다. 6자 길이 가량의 세번째 식탁위에 한 여자가 채소를 썰어 놓고 있다. 그 뒤에는 오래된 철난로와 화덕이 있고 큰 솥에서 스프가 끓고 있다. 조리대 옆에는 아주 깊은 싱크대가 달려 있다. 벽에서 나는 “자유인 마틴 쏘스터” 라는 제목의 한 흑인남자 그림이 있는 엽서를 보았다. 그는 가시관이 살을 찌르고 있는 그리스도였다. 나중에 발견한 사실이지만, 벽의 네 군데에 뚤린 구멍을 막기 위해 엽서가 이용되고 있었다. 간디 그림도 있었다. 또 평화에 관한 시와 함께 있는 아메리카 인디안의 초상화 포스터도 있었다.

길을 향해 나 있는 창이 세 군데 있었다. 그밑 문지방에 요셉상이 있었다. 그리고 뒷문밖에는 벽돌로 둘러친 뜰이 있었다. 거기에 네 사람이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한사람은 긴 나무판으로 스프를 젓고 있고 나머지 세 사람 중에 두명은 우유병이 담겼던 철제 상자위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뒷뜰의 빨간 벽돌담 위에 매달린 십자가를 보았다. 그 십자가 밑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꽂혀 있었다.

5분후 사람들은 바쁘게 일하기 시작했고, 뜰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식탁이 치워졌다. 스프가 가득찬 큰 솥을 마가렛이라는 여인이 들어올렸고 잭이라는 한 흑인남자가 그것을 부엌식탁으로 가져가 나무받침대 위에 올려놨다. 접시가 씻어지고 식탁을 다시 차리고 마침내 -마지막 점검이 끝난 후- 앞문이 열리고 바깥에 줄섰던 사람들이 쏜살같이 달려들어와 식탁에 앉았다. 때는 아침 9시 30분이었다.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오자, 자원봉사자인 스티브가 나를 이층으로 안내하고 테이블가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나서 그 집의 책임자인 마이클과 보조인 죤도 만난다. 모두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했고, 그중에 덩치가 현저하게 큰 사람이 아주 섬세하게 하느님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점심과 저녁식사 대접도 끝났다. 그리고 내 방으로 안내되었다. 하루가 회오리바람처럼 지났다, 새로운 얼굴들과 내가 지금까지 생전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가난 속에서.
 

[출처] <가톨릭일꾼공동체에서 보낸 1년>, 마크 엘리스, <참사람되어> 1996년 9월호

마크 H. 엘리스 
<피터 모린; 20세기에 살다 간 예언자>의 저자. 엘리스는 미국 텍사스 베일러 대학에서 유다학연구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유다학을 가르치다 은퇴하였다. 그는 스무 권 이상의 책을 쓰고 편집했다. 그의 대표작은 <해방의 유다신학>, <거룩하지 않은 동맹>, <우리시대의 종교와 포악성>, <예언의 미래: 고대 이스라엘 지혜의 재현> 등이 있다. 그는 유대인이면서도 유대극우주의의 강력한 비판자로 알려져 있으며, 이스라엘의 미래를 팔레스티나와의 평화로운 연대에서 찾고 있다. 최근에는 <불타는 아이들: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유대적 관점>(2014), <추방과 예언: 새로운 디아스포라의 이미지>(2015)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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