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호이나키, 거룩한 바보의 길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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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호이나키, 거룩한 바보의 길을 가다
  • 방진선
  • 승인 2019.02.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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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호이나키 선종 5주년

경애하는 리 호이나키 선생님 (Lee Hoinacki 1928.4.3 - 2014.2.27) 선종 5주년!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칠층산>에 끌려 들어선 성직(도미니코 수도회 사제) 그리고 성직을 떠난 이후에도 한치의 변함도 없이 이어진 구도의 길. 그 거룩한 바보의 길을 자발적으로 걸어가신 참스승.

산티아고 순례를 제안하고 등산화를 빌려주며 "이걸 신으면 콤포스텔라까지 잘 갈 수 있을거야!"라고 격려한 이반 일리치 선생님의 평생 지기, 구도의 도반!

선생님의 인생 역정을 보여주는 세 권의 책을 펼쳐봅니다.

<산티아고 거룩한 바보들의 길 El Camino: Walking to santiago de Compostela>(1996년)
65세의 선생이 진자의 흔들림을 깨달은 ‘카미노’ 길 !

​“카스트로는 ‘산티아고[데 콤포스텔라]에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나 신의 은총에 대한 찬양에서 혼돈 또는 심지어 최악의 반역에 이르기까지 진자가 크게 흔들렸다’고 썼다. ... 나는 콤포스텔라에 도착할 때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달았다”(서문)

"이러한 고통과 기도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은 카미노가 내게 주는 가장 큰 은총이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깨달을 때마다 하루 하루가 전날 보다 더 축복됨을 가슴 깊이 느낀다. 이 여정의 끝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이제 이런 식의 깨달음이 계속되고 있다.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하루, 아마도 카미노를 걸으며 '가장 힘들었을' 오늘도 예외는 없다. 나는 옛 순례자들의 세계 속으로 또 한 걸음 멀리 내딛었다" (520쪽)

“... 지난 4주동안 겪었던 '내면의 모든 경험'은 오직 그 동안 나와 동행했던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옛 순례자들의 경험과 진정한 교감을 이룰 수 있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나는 진실로 '우리'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은 우리가 자주 말하는 그럴싸하고 과장된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이다. 내가 지금 만지는 성물은 바로 그들이다. ... 오늘도 콤포스텔라를 향해 걷고 있을 슨례자를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다시 저 밖으로 되돌아거 걸으며 그들과 함께 순례의 길에 동참하고 싶은 열망이 내 머리와 가슴을 온통 뒤흔든다”(마지막 문장, 543쪽)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Stumbling Toward Justice>(1999년)

69세의 선생께서 비틀거리면서 걸어가며 엮어내신 치열한 성찰의 기록. 서문만 다시 읽어도 심금을 울리는 스승의 말씀을 새겨봅니다.

서문 첫머리에 인용한 조셉 콘라드의 말이 글 전체에 흐르는듯 합니다.

"... 때때로 우리는 석공이 되고 싶은 때가 있다. 돌을 깨는 데는 의심이 깃들 여지가 없다. 그러나 글을 쓸 때는 페이지마다 의심과 두려움 - 깜깜한 공포가 있다"

"내가 이 책에 관해 생각하고, 쓰는 동안, 콘라드의 말은 내 책상 위에 붙어 있었다. 나는 돌을 깨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해온 셈이다. 나 역시 콘라드가 느꼈던 것을 늘 느끼고 있었다"

"나는 기묘한 시대를 사는 특권을 누려왔다. 나는 초월의 경험과 말할 수 없이 끔찍한 경험이 둘 다 가능한 현실을 목격해 왔다. 아름다움과 혐오스러움의 뒤섞임 밑에서 나는 현대적 생존 속에 숨겨져 있는 희망을 발견하였다. - 우리는 전체적인 것의 진실을 탐구하고 좋은 삶을 모색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혼란 속에서 비틀거리고, 실수를 하고, 도덕적 일탈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의 목적을 향해서 가는 오디세우적인 여행만이 뜻이 있으며.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의 갈증을 식혀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적지는 여행의 의미를 밝혀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실패의 부끄러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그러한 언어는 도덕적 사유와 선(善)에 대한 명시적 개념, 그리고 아마도 지각(知覺)과 행도에 대한 나날의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멈추어 서서, 이야기의 진행, 즉 사건과 상황의 연결 관계들에 대한 연대기적 기록이 그 여행에 적합한지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은 아닌가?
내가 막다른 곳에 들어온 것은 아닌가?
진전이 있는지 내가 알아볼 수 있는가?

나의 주된 관심사는 하나의 근원적 통찰을 예시하려는 것이다. 즉 ‘진보’에 대한 약속은 거짓이며, 끔찍하고 잔인한 덫이라는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오직 한 가지 점-의문이라는 씨앗을 뿌리고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1997년 11월 오리건주 코발리스에서 리 호이나키, 서문)

“거룩한 바보들이 아직도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들의 연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기쁨을 줄수 있다.”(마지막 문장, 336쪽)

책 뒷면의 이반 일리치 신부님 말씀

“옛 동방교회에서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무조건 실행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에게는 두 가지 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게 가능하였다. 즉, 수도사가 됨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든가, 아니면 눈에 띄지 않게 ‘자발적인 바보’로 살아가는 길이었다. 호이나키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충격을 준다. 왜냐하면 그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에도 그러한 바보의 지혜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이 시대에 던지는 듯한 공선옥 선생의 경고!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난 뒤에도 나는 다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감도는 이 탐욕과 적의의 기운 때문에 도대체 어디다 몸과 마음을 둬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와중에 나는 호이나키 선생을 만난 것이다. 그것도 바보같이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그러나 누구보다 밑바닥으로, 어쩌면 기어가고 있는 한 영혼의 편린을."

<죽는 것은 죽음이 아니다 Dying is not death>(2006년, '아미쿠스 모르티스' 2016년)

78세 인생의 말년기에 겪은 동생의 죽음으로 펴낸 선종(善終)의 성찰!
현대적 의료시스템이 주는 고통, 그 악의 얼굴!
자본주의 체제의 무정한 현대 의료 산업에서 돈벌기의 상품으로 바뀌는 죽음에 대한 고발!

"죽음에 다가갈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버나드의 몸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먹고 싶은 욕구조차 사라졌다. 그는 효과적으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의 엉덩이 뼈 사이에 움푹 팬 거대한 빈자리는 살아있는 비유이자 그의 죽음에 대한 지배적인 은유이고, 적합한 상징이기도 했다. 마지막 여행을 위한 준비로 자신의 몸 대부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처분하는 것이다."(91쪽)

"정말 많은 사람들이 친족들을 살균되고 인간미 없는 의료 시스템의 첨단 기술세계로 보낸다. ... 그러한 절차들은 실제로 비용이 더 비싼 기관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오히려 잘 관리되는 환자들이 갇혀 있는 병동과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축소의 현실을 더 많이 목격했다."(97쪽)

우리는 인생을 나그네길, 순례길이라고 쉽고도 낭만적으로 말하고 합니다. 그 길목에서 나날이 수많은 질곡의 비틀거림이 있음도 목격하고 체험합니다. 정글 자본주의가 포장한 신작로를 활개치며 달려가는 한줌의 무리들! 억지로 떠밀려나와 자갈밭의 비탈 길에서 비틀거리는 변방의 사람들! 그리고 갈림길에서 헤매이며 비틀거리는 사람들! 어떤 길로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가야할 것인가? 정의의 길 ? 불의의 길 ? 타협의 길 ?

"날이 갈수록 무지와 야만주의가 활개를 치고, 인간적인 가치들이 패퇴를 강요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자문할 때마다 늘 이 책은 큰 위안과 용기와 지혜를 주는 원천의 하나였다. 나는 빈번히 답변하기 어려운 난문(難問)에 부닥칠 때마다, 이런 경우 호이나키라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자문해 보기도 했다.“(<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역자 김종철)

일리치 선생님과 천국에서 안식과 우정을 누리시는 리 호이나키 선생님 !

비틀거려도 가야만 하는 정의의 길이 있음을 깨달으며 걸어가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와 격려의 손길이 늘 함께 하시도록 주님께 빌어주십시오.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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