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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입은 여인, 도로시 데이<환대하는 삶-도로시 데이, 평화와 애덕의 83년>, 로버트 콜스, 낮은산, 2011
가톨릭일꾼 창립미사. 사진=조성훈

“나는 가난하고 순결하고 순종적이고 싶었습니다. 살기 위해서, 과거의 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몸을 입기 위해서, 나는 죽고 싶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사랑을 했고 사랑에 빠진 모든 여인처럼 내 사랑과 일체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 보다 더한 사랑 고백이 있을지. 살기 위해 죽고 싶었다고 표현한 이 여인은 얼마 전까지 낯선 존재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한 여인 ‘도로시 데이’. 2015년 9월 24일 교종 프란치스코께서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신 내용 중에 언급한 네 명의 인물 중 처음 듣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 마틴 루터 킹, 토머스 머튼과 함께 거론된 인물입니다. ‘도로시 데이’라는 이름을 그렇게 놀라움과 부끄러움 속에서 만났습니다.

몇 해 전 SNS를 통해 ‘가톨릭일꾼’을 알게 되었고, 2016년 5월 15일에 있었던 ‘가톨릭일꾼’ 창립미사에 참례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도로시 데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성령강림대축일이자 도로시 데이의 동반자였던 피터 모린의 기일이었지요. 아는 사람도 없었고, 초대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참석하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어났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그날 이후 ‘가톨릭일꾼’ 사이트를 지속적으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018년 11월 29일은 도로시 데이의 38주기였습니다. 그 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도로시 데이의 추모미사가 봉헌되었고, 그 자리에 함께 했습니다. 몇 해 전까지 존재조차 몰랐던 한 여인의 추모미사에 참례하기까지, 이 여정이 단순한 우연인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어떤 끌림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도로시 데이를 알고 싶었고, 첫 책으로 로버트 콜스가 지은 <환대하는 삶>을 읽었습니다. 로버트 콜스는 콜롬비아 의과대학을 다니던 1952년 ‘환대의 집’ 방문을 통해 도로시 데이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콜스는 도로시 데이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30여 년의 세월을 교류했습니다.

<환대하는 삶-도로시 데이, 평화와 애덕의 83년>, 로버트 콜스, 낮은산, 2011

콜스는 처음 도로시 데이를 만난 날을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자원봉사를 위해 ‘환대의 집’을 찾았을 때, 도로시 데이는 한 여인과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술에 취한 여인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화를(대화라기 보다는 경청을) 이어가던 도로시 데이는 여인에게 잠시 대화를 중단해도 되겠는지 묻고 그에게 다가와 묻습니다. “우리 중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기다리고 있나요?”

그 당시 받았던 느낌에 대해 로버트 콜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우리 중 누구’라는 도로시 데이의 이 세 마디는 내 안에 켜켜이 쌓인 자만심, 평생 누려 온 부르주아 특권 속으로 파고들어와, 오만함이라는 완고한 뼈대를 부러뜨려 버렸다. 너무도 평온하고 정중하게 이야기한 ‘우리 중 누구’라는 세 마디로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일꾼 운동이 어떤 것인지, 그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에둘러 전해 주었다. 다른 교훈들도 많을 테지만, 내 안에 받아들여진 뒤 이렇게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기는 힘들다. 도로시 데이는 가르침을 받고자 찾아온 나 같은 사람들에게 소박함과 겸손함이란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마음가짐임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가장 단호한 스승이었다.”

처음 만날 날 들었던 단 한 마디를 통해 로버트 콜스는 도로시 데이라는 인물을 스승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콜스에게 도로시 데이는 고통 받는 이들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지닌 평화주의자이며, 교회를 사랑한 신앙인이자, 그리스도를 사랑한 여인이었습니다.

 

기도하는 여인

도로시 데이는 기도하는 영혼이었습니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이전부터 늘 성경을 가까이 했고, 주머니에 선물 받은 묵주를 가지고 다녔다는 기록을 보면, 기도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이루어진 도로시 데이의 여정이었던 듯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든 미사참례와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머무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매일 기도시간, 미사시간, 성경읽기 시간을 우선 정해 놓았습니다. 도로시 데이에게 기도는 호흡 같은 일상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으로 다니면서 모두가 ‘부랑자’, ‘노숙자’, ‘술주정뱅이’라 부르는 사람들과 만나고, 가르치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식사를 준비를 하는 일상을 살아가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관상과 활동이 어우러진 ‘활동하는 관상가’였던 셈입니다.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부터 기도를 바치곤 했습니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기도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기도 했습니다.

“내가 날마다 기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무릎을 꿇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걷고 있는 동안에는 기도할 수 있었다.”

도로시 데이가 사실혼 관계를 맺었던 포스터와 사랑에 빠졌을 때, 한동안 자기가 찾던 ‘견고한 사랑’이 이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자신이 찾는 영혼 깊은 곳의 갈망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임신을 했을 때는 그 갈망이 “아이”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이에 대한 사랑도 순간에 지나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앞에서 하느님을 떠올리게 되고, 이는 ‘세속적 삶에서 종교적 삶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포스터 배터햄과 함께 했던 삶은 도로시 데이를 하느님에게로 이끌어 주었고 가톨릭에 들어서게 해 주었지만, 그들의 관계를 끝내게 해 준 것도 바로 그 신앙이었다.”

“출산이란 거의 목숨을 건 전투나 마찬가지여서 안 그래도 육체적으로 힘들었는데, 이제 내 영혼을 건 투쟁까지 닥쳐오고 있었다. 타마는 세례를 받게 될 테고, 그것이 나를 둘러싼 관계를 산산조각 내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인간적인 사랑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도로시 데이는 종교-가톨릭을 선택하기 위해 무엇을 잃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평신도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세례 받고 3년 후 워싱톤에서 드린 기도의 응답은 특별하게 왔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피터 모린과 만나게 된 것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모린과 더불어 ‘가톨릭일꾼’ 운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도로시 데이는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에서 ‘일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워싱턴으로 가는 길에서, 그 도시에서, 유니언 광장에서 먹을거리와 일할 기회와 시민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주장하던 지독하게 힘없고 가난한 작은 무리의 사람들을 보고는 슬프고 화가 났다. 워싱턴에 머무르고 있던 1932년 12월 8일에 그녀는 가톨릭 대학교의 ‘원죄 없이 잉태하신 마리아 대성당’으로 가서 ‘동료 노동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 안에 있는 모든 재능을 사용할 기회를 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를 올렸다. 뉴욕 시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피터 모린을 만났다.”

 

사랑에 빠진 여인

도로시 데이는 가난한 이들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한 여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도로시 데이는 세상이 끔찍하게 일그러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회정의와 공평한 세상을 위해 투쟁했던 때였습니다. 훗날 도로시는 당시 자신이 추구했던 일은 옳은 것이지었지만, 거기에는 사랑이 빠져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을 바꿔내겠다고 투쟁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대면할 줄도 성찰할 줄도 몰랐습니다. 두려움과 졸렬함, 배려할 줄 몰랐던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신과의 험난한 대결’이라 일컬은 성찰의 시기를 지나 도로시 데이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새롭게 만납니다.

“세상을 살면 살수록, 종교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성경을 단 한 번도 읽은 적 없으며 교회에 다니라는 누군가의 권유를 받게 될 때 어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을 더 많이 보게 됩니다.”

도로시 데이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무시당하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팽개쳐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볼 때면, 그 순간 그들이 그리스도처럼 모욕당하고, 사형에 처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 가난하고, 순결하고, 순종적인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이 세 가지는 수도자들의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과 같습니다. 평신도의 자리에서 수도자의 봉헌생활과 다름없는 삶을 택한 그녀는 가톨릭교회에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었고, 자신은 교회와 결혼했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교회,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교회였지만, 그 교회가 아직 그리스도가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교회의 온갖 흠에 슬픔을 느끼고 있기에,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가 예수님의 말씀과 그분이 살았던 모습에 주목하게 되기”를 끊임없이 바랬습니다. 도로시 데이가 교회를 사랑하는 방식은 교회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가톨릭 신자로서 반항적이 될 때가 있음을 인정했지만, 가톨릭 교회의 의식과 의례들, 심지어 규격화된 권위마저 사랑했습니다.” 로마노 과르디니의 말처럼 “교회는 그리스도가 매달린 십자가”라고 생각했지만, 그분이 “수난을 통해 많은 사람, 친구, 적에게도 자신을 내주고자 했던 것은 영적 에너지와 사랑과 관심”이었음을 기억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 편에 서고 약자는 망각하는 교회를 보게 될 때 느끼는 슬픔은 교회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피터 모린이 “선한 가톨릭 신자라면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도로시 데이는 놀랐지만, 피터 모린의 그 말조차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기 그분이 계십니다. 오늘날 과연 어떤 교회가 그분을 안으로 들여 먹이고 입히고 잠자리를 내드릴까요? 나는 내 생의 마지막 날 그 질문을 자신에게 하고 싶습니다. 한때 절대 그 질문을 잊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입은 여인

도로시 데이는 로버트 콜스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기억을 되살려 보려 합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이 삶을 기억해 보려 해요. 언젠가 ‘기억되는 삶’이라는 구절을 썼습니다. 내가 직접 간략하게 요약해 보려고 했지요.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써 보려 했어요. 그런데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거기에 앉아서 우리 주님을 생각했어요. 그 오래전 그분이 우리를 찾아오셨던 걸 말입니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어요. 내 삶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그분을 마음속에 모셔온 것은 내게 온 위대한 행운이었다고 말입니다.”

‘가톨릭일꾼’운동이 시작 된 1933년부터 그녀가 이승을 떠난 1980년 11월 29일까지,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일꾼’운동의 구성원으로 살았습니다. 언제나 열려 있는 ‘환대의 집’에서 살며 신문을 만들고, 가난한 이들을 맞이하고,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을 나르고, 찾아오는 그 누구라도 두 팔 벌려 환대하는 삶이었습니다. 늘 열려있는 곳에서 개인적인 공간 없이 지내는 불편함을 느낄 때면 가끔 혼자 지내는 아파트를 상상했지만, 자신이 머무를 곳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환대하는 삶으로 가는 여정은 순탄치 않았으나 가난한 이들,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도로시 데이는 “하느님의 모범을 따랐던 하느님을 따르는 열렬한 구도자”로 기억되기를 원했습니다. 성경을 늘 가까이 했던 도로시 데이는 바오로 서간을 가장 즐겨 읽었고, 자신이 환대의 집에서 생활하는데 지침으로 삼은 구절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생활’을 가르친 로마서 12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내가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로이 지내십시오.”

도로시 데이가 환대의 삶을 향해 나아간 여정을 들여다보는 동안 갈라티아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도로시 데이와 만난 이후 사랑고백으로 읽혀지는 것을 보니 사랑에 빠진 영혼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주변을 사랑으로 물들이나 봅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 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갈라 2,19-20)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글쓰기 참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가톨릭일꾼 기사는 상업적 용도 아니라면 출처를 밝히고 누구나 퍼갈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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