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렘브란트는 영적 투쟁 앞에 선 큰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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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탕자] 렘브란트는 영적 투쟁 앞에 선 큰아들이었다
  • 헨리 나웬
  • 승인 2019.02.17 2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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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웬의 <돌아온 탕자>-13] 큰 아들의 귀환-1

그때에 큰 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 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찐 송아지를 잡아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루카 15,25-32)

 

렘브란트(1606-1670)의 <탕자의 귀환(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부분.

그림과 성경 비유의 차이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내며 조용하게 <돌아온 아들>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나는 잠시라도 아버지가 그의 돌아온 아들을 포옹하고 있었던 단상 오른쪽에 서 있던 남자가 큰 아들이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적이 없었다. 그곳에서 그 남자가 환영의 위대한 몸짓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자세는 렘브란트가 누구를 그리고 싶어 했는지 아무런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나는 이 단호한 바라봄, 떨어진 채 있는 관찰자를 묘사하는 많은 글들을 썼고 예수님이 큰 아들에 관하여 말하는 모든 것을 그곳에서 보았다.

그렇지만, 성경의 비유는 아버지가 잃어버린 아들을 포옹하고 자비를 보여주었을 때에 큰 아들이 아직 집에 오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오히려 반대로, 비유 이야기는 마침내 큰 아들이 일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동생을 환영하는 잔치가 이미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렘브란트의 그림과 비유 사이의 이 불일치를 너무나 쉽게 간과하고, 렘브란트가 잃어버린 아들을 그릴 때에 두 형제를 그리고 싶어 했을 것이라고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인 나 자신에 놀란다.

집에 돌아와 그림에 관한 모든 역사적 연구들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많은 비평가들이 그림의 오른쪽에 서 있는 사람의 신원에 대하여 나보다 훨씬 확신이 없었다는 사실을 즉시 깨달았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를 노인으로 묘사했는가하면, 또 다른 사람들은 렘브란트가 이 사람을 실제로 그렸는지조차 의심하기도 했다.

영적 투쟁 앞에 선 큰 아들

그러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갔다 온지 1년이 지난 어느 날, 친구인 아이반 다이어는 바바라 조안 헤거가 쓴 <렘브란트의 돌아온 아들 그림이 지니고 있는 종교적 의미>라는 책을 보내왔다. 다이어와 나는 이 그림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자주 토론하곤 했다. 헤거의 이 탁월한 책은 렘브란트 시대의 시각적이고 초상화적인 전통을 배경으로 하여 그림을 보고 있는데, 큰 아들을 다시 그림 안으로 돌아오게 하고 있다.

헤거는 렘브란트 시대의 성서 해설과 그림들의 맥락에서 볼 때, ‘바리사이와 세리들의 비유’와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렘브란트는 바로 이런 전통을 따른 것이다. 앉아서 그의 가슴을 치며 돌아온 아들을 바라보는 사람은 죄인과 세리들을 대변하는 청지기이다. 한편 서서 아버지를 꽤 알 수 없는 방식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큰 아들로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나타낸다. 그렇지만, 그림에서 큰 아들을 가장 두드러진 증인으로 만듦으로써, 렘브란트는 비유의 교과서적 맥락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당대의 그림 전통도 넘어서고 있다. 이렇게 하여 렘브란트는 헤거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처럼, “성서의 문자가 아니라 그 정신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바바로 헤거의 발견은 나의 가장 초기 직관을 행복하게 확인해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주고 있다. 즉 헤거의 설명은 내가 <돌아온 아들>을 위대한 영적 전투이며 그 전투가 요청하는 위대한 선택들을 요약해 주는 작업으로 보도록 도와주었다.

아버지의 품 안에 안긴 작은 아들뿐만 아니라, 그에게 제공된 사랑을 받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큰 아들도 그림으로써, 렘브란트는 그 자신과 나의 “영혼의 내적 드라마”를 보여주고 있다. 돌아온 아들의 성경의 비유가 복음의 핵심 메시지를 포괄하고 청중들에게 그 메시지 앞에서 선택을 하도록 초대하는 것처럼, 렘브란트의 그림은 자신의 영적 투쟁을 요약하고,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삶에 관하여 개인적 결단을 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이처럼 렘브란트의 이 그림에 나오는 관찰자들은 관중으로 하여금 그림을 바라볼 때에 매우 개인적으로 느끼도록 만들고 있다. 1983년 가을, 그림의 중심부를 보여주는 포스터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즉각 내가 무엇인가에 초대되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느꼈다. 이제 그림 전체와 더 익숙해진 지금 그리고 특히 그림의 오른쪽에 눈에 띄는 사람의 의미를 더 이해하게 된 지금에 와서는 이 그림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영적 도전을 주고 있는지 훨씬 더 확신하게 되었다.

큰 아들처럼 렘브란트 역시...

<돌아온 아들>을 그렸을 때, 렘브란트는 큰 자기신뢰, 성공, 그리고 명성의 삶을 살았지만 이어서 많은 고통스러운 상실, 실망, 그리고 실패의 삶도 살았다. 이 모든 여정을 통하여 그는 외적인 빛으로부터 내적인 빛으로, 외적인 사건들의 초상으로부터 내적인 의미의 초상으로, 많은 소유와 사람들로 가득 찬 삶으로부터 고독과 침묵에 더 점철된 삶으로 옮겨갔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는 더 내향적이고 평온해져 갔다. 그것은 영적인 고향으로의 귀환이었다.

그러나 큰 아들은 렘브란트의 삶에서 또한 발견되는 모습이고, 현대의 많은 전기 작가들은 실상 그의 삶을 낭만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비판의 입장을 취한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 렘브란트가 훨씬 더 후견인들과 돈의 필요에 얽매여 있었고, 그의 작품 주제들은 자주 어떤 영적인 비전보다 당대의 유행을 따른 결과물이며, 그의 실패는 주위 사람들의 몰이해보다 그 자신의 독선적이고 밉살스러운 성격 때문에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러 명의 새로운 전기 작가들은 렘브란트에게서 영적인 진실을 추구 하는 탐색자보다 더 이기적이고 타산적으로 농간을 부렸던 사람을 발견한다. 이 전기 작가들은 많은 렘브란트의 작품들이 탁월하긴 하지만, 보이는 것처럼 그다지 영적이지는 못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렘브란트 연구의 비(非)신화화에 대한 나의 처음 반응은 충격이었다. 특히 게리 슈발츠에 의한 렘브란트 전기는 그를 낭만화 할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는데, 나로 하여금 “회심”이라는 것이 정말 렘브란트의 생애에서 일어났던 것인지 의심할 정도까지 몰고 갔다.

최근의 많은 연구들을 보면, 렘브란트가 그에게 명령하고 작품을 사들였던 후견인들, 가족과 친구들과 맺었던 관계를 보면, 어울리기에 매우 힘들었던 인간유형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슈발츠는 렘브란트를 “원한과 복수심에 가득 차 그의 길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하여 모든 허용될 수 있고 허용될 수 없는 무기들을 다 사용했던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참으로 렘브란트는 자주 이기적이고 공격적이며 복수를 감행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모습은 6년 동안 함께 살았던 여인에 대한 처우에서 가장 생생하게 보여 진다. 그는 이 여인을 정신병자 수용소에 넣기 위하여 이웃들로부터 증언을 수집하였다. 결국 그 여인은 수용소로 보내졌다. 후에 그 여인이 석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었을 때에도 렘브란트는 그 여인에게 불리한 증거를 수집하고 계속 수용소에 가둘 수 있도록 비밀요원을 고용하였다고 한다.

1649년 내내, 이런 비극적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을 때, 렘브란트는 너무나 소진되어 아무런 작품도 만들 수 없었다. 이 시점에서 또 다른 렘브란트가 떠오른다. 즉 원한과 복수의 욕망에 매몰된 인간, 배반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서.

치유가 필요한 큰 아들 

이런 모습의 렘브란트는 대면하기가 매우 힘들다. 호색한으로 세상의 쾌락에 빠지고, 이어 참회하고 집에 돌아가며 매우 영적인 사람이 되는 모습에 공감을 느끼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깊은 원한을 갖고 소중한 시간을 사소한 법정 싸움에나 소비하며, 끊임없이 공격적인 태도로 사람들과 격리되는 사람을 인정하기는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는 바로는, 그것 역시 그의 삶의 일부이고, 내가 결코 무시해 버릴 수 없는 부분이라는 사실이다.

렘브란트는 비유에서 볼 때 작은 아들이기보다 큰 아들에 훨씬 가깝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돌아온 아들>에서 두 아들을 그렸을 때, 렘브란트는 작은 아들의 상실이나 큰 아들의 상실 모두가 그의 삶에 결코 예외가 아닌 삶을 살고 있었다. 두 아들의 상실 모두가 치유와 용서를 필요로 했다. 두 아들 모두가 집에 돌아와야 했다. 두 아들 모두 용서하는 아버지의 포옹이 필요했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유이야기에서도, 가장 감당하기 힘든 회심은 집에 남아있던 사람의 회심이다.

[출처] <돌아온 작은 아들>, 헨리 나웬, 참사람되어 201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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