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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일꾼 비타민, 하상희 제르투르다 님에게 드렸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한 새로움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늘 새롭게 출발하여 익숙한 것을 뛰어넘어 변방으로 그리고 더 멀리 나아가라고 촉구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상처가 가장 큰 곳, 얄팍한 순응의 표면 아래 숨겨진 삶의 의미에 대하여 끊임없이 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십니다. ... 그분께서는 변방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몸소 변방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용기를 내어 변방으로 간다면, 우리는 그곳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는 거기에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거기에, 곧 우리 형제들의 마음 안에, 그들의 상처받은 육신에, 그들의 역경과 그들의 황폐한 마음속 깊이 계십니다.”(교종 프란치스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135항)

우리로 하여금 변방으로 가라고 다그치는 교종이 계시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던지고, 부서진 이들과 함께 할 마음을 내게 하고, 그곳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닐 수 있게 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믿음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로시데이영성센터와 <가톨릭일꾼>은 이 믿음으로 2018년 한 해를 잘 건너 올 수 있었습니다. 설을 앞두고, 다시 인사를 드립니다. 그동안 반갑고 든든한 동행들이 있어서 지치지 않고 살아왔으니,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지난 해부터 새해가 시작되는 정월에 지지와 응원이 필요한 분을 선정해서 ‘가톨릭일꾼 비타민’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이 비타민은 가톨릭신자로서, 공동선을 위해 기도하고 공부하고 일하는 일꾼 가운데 지금 당장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신 분에게 드립니다.

저희는 선정된 분에게 아무런 요구도 하지 않습니다. 그 돈으로 동남아 여행을 가시든 가족들과 맛난 것을 사서 드시든 평소 읽고 싶던 책을 사시든 상관없습니다. 다만 공적인 일과 관련해서 쓰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말 그대로 ‘비타민’이니, 본인의 영적 정신적 신체적 원기회복을 위해, 정말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쓰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설이 오기 전에 가톨릭일꾼비타민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지난 1월 29일 열린 일꾼 글쓰기 강의 시간 말미에 소박하게 비타민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이날 강의가 끝나고 한밤중인데도 하상희 자매와 안미순, 신배경 자매는 고 김복동 님의 빈소를 향해 길을 나서더군요. 참 보기 좋았습니다. (사진=신배경)

"하상희 제르투르다 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2018년에는 가난한 지역의 아이들을 위해 공부방을 하시는 이덕숙 포티나 자매와 동두천 지역에서 난민 지원활동을 하시는 유시환 요한 형제에게 각각 100만원씩 드렸습니다.

2019년에는 저희 재정상태가 여유가 없어서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지난 1월 19~20일 열린 ‘가톨릭일꾼세미나’ 기간 중에 참가자들이 가져온 물품을 경매에 붙여서 모은 기금으로 100만원을 마련하여 사정상 한 분에게만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몇몇 일꾼들과 의논하여, 이번에는 하상희 제르투르다 자매에게 ‘제2회 가톨릭일꾼비타민’을 전달하였습니다. 하상희 자매는 웹디자이너로서, 가톨릭일꾼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에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정말 성심으로 기도하고, 찬찬히 공부하며, 부지런히 현장미사에 참여해 왔습니다. 정말 고마운 일이고, 응원해야 마땅합니다.

2020년 벽두에는 또 어떤 분을 ‘가톨릭일꾼비타민’을 통해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합니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이참에 덧붙여 나누고 싶은 따뜻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소운이 지은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김소운은 “가난은 결코 환영할 것이 못 되니, 빨리 잊을수록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가난하고 어려웠던 생활에도 아침 이슬같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회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어느 부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들은 가난한 신혼 부부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남편이 직장으로 나가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을 하겠지만, 그들은 반대였다. 남편은 실직으로 집 안에 있고, 아내는 집에서 가까운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아침, 쌀이 떨어져서 아내는 아침을 굶고 출근을 했다.

“어떻게든지 변통을 해서 점심을 지어 놓을테니, 그 때까지만 참으오.”
출근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어서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남편은 보이지 않고, 방안에는 신문지로 덮인 밥상이 놓여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신문지를 걷었다.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 한 종지. 쌀은 어떻게 구했지만, 찬까지는 마련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아내는 수저를 들려고 하다가 문득 상 위에 놓인 쪽지를 보았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 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 두오.”
낯익은 남편의 글씨였다. 순간, 아내는 눈물이 핑 돌았다. 왕후가 된 것보다도 행복했다. 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행복감에 가슴이 부풀었다.]

변방으로 나아가는 삶은 좀 고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은총 안에 머물 수 있다는 기쁨이 우리의 시름을 걷어갈 것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전하신 ‘참행복’은 해피(Happiness, 열락)가 아니라 블래싱(Blessing, 축복)임을 우리는 잊지 않습니다. 그 축복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행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합니다. 그래서 늘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께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2019년 1월 31일 한상봉 드림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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