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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조차 남기지 못한 용균이가 어머니에게고 김용균 형제를 위한 추모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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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조차 남기지 못한 용균이가 어머니에게
 

어머니, 생전에 다정했던 어머니,
당신을, 예, 당신을 다시 불러 봅니다.
유서도 없이, 사랑한다, 그 한 마디
미처 하지 못하고
그렇게 서둘러 당신 곁을 떠나서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첫 출근 앞두고 다정하게 웃음 짓던 어머니,
그날 이후 한 번도 신사복 입어본 적 없지만,
빨아도 지지 않는 탄가루 작업복 벗어본 적 없지만,
그래도 부끄럼 없는 어머니의 기특한 아들, 김용균입니다.

누군가는 작업복을 입어야
누군가는 석탄구덩이에 뒹굴어야
세상에 밝은 백열등 하나 켤 수 있었고,
넘어지지 말라고
밤길에 가로등 하나 밝힐 수 있었을 테니,
그렇게 모든 노동은
거룩한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세상은 저를 두고 ‘비정규직’이라 하더군요.
세상은 저희를 두고 ‘하청 노동자’라 하더군요.
저희가 나가사키 앞바다 군함도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닌데
사실상 징용당한 식민지 백성처럼 살았어요.
바닥노동자로, 하수구에 걸린 오물처럼 살았어요.
석탄가루에 눈 멀고
고된 노동에 다리가 풀려도
살아남기 위해 살았어요.
죽지 못해 산 게 아니라
살고 싶은데 죽었어요.

어머니, 하고 발음만 해도
가슴이 이내 따뜻해지는 어머니,
저는 비정규직 어머니의
비정규직 아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

사진출처=한겨레

이게 너무 무리한 요구였나요?
광장을 사랑한다던 그 촛불 대통령은 이제 없는 건가요?
매너 있고 다정하던 눈매는 사라진 것일까요?
형제들의 고통 앞에서 중립은 없다고,
무개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나주었던 교황님처럼
광주에서 오월 희생자 유가족을 안아주었던
그 대통령은 이제 없는 건가요?
아직 우리들은, 우리 동료들은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그분을 만나셨나요?
그분 만나기가 교황님보다 어렵던가요?

정부가 바뀌어도, 대통령이 바뀌어도
저희 같은 바닥 노동자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는 것인가요?
저는 다시 태어나도
다시는 신사복을 입지 않을 생각입니다.
신사복 입은 젠틀맨들은
작업복 입은 저희들을 몰라요.
저희들의 슬픔에 와서 닿지 않는 그들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요.

어머니, 그러니, 그들에게 호소하지 마세요.
불쌍한 얼굴로, 떨리는 음성으로 청하지 마세요.
그건 이제 자존심이 상해요.
이제 그냥 요구하세요.
국민들의 이름으로 명령하세요.
비정규직 없애라고 말입니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잖아요.
국민이 주인이니,
주인처럼 그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하세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다시 신나고 야멸차게 노래하세요.

어머니, 어머니 고마워요.
늘 든든했던 어머니, 이젠 어머니가 더더욱 자랑스럽고
제가 어머니의 아들이란 게 다행이다 싶어요.
저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들들을 품어주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딸들을 안아주기 위하여
“비정규직 이제 그만”
“살인적 작업장 이제 그만”
모든 서러움을 추스르고, 모든 슬픔을 건너서
제 동료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어머니,
정말 어머니가 자랑스러워요.
다행이에요.

49재 지내고, 이제 50일.
먼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50년째 해가 오면 희년을 선포하고
노예들을 해방하고 다들 행복해진다는데,
아직 우리들의 희년은 오지 않았겠지요.
저는 아직 어머니와 동료들 곁을 떠나지 못하고,
이내 교회 다니는 분들은
사순절을 준비하겠지요.
예수님의 억울한 죽음을 묵상하면서
이분들이 제 죽음도 기억해 줄까요?

사순절의 끝자락에서 예수님은 마침내 부활하신다는데,
아무래도 저는 다시 어머니에게 돌아가진 못하겠지요.
그래도 저는 알아요.
이 나라에서 비정규직이 사라지는 날,
지옥 같은 작업장이 아예 사라지는 날,
춤추며 미소 짓는 동료들 얼굴 속에서,
어머니, 제 얼굴도 볼 수 있을 거예요.
어머니, 그때 우리 기쁨으로 인사하기로 해요.
정말 사랑해요, 어머니.
정말 사랑해요, 어머니.
 

*이 추모시는 2019년 1월 28일 저녁7시 30분 광화문 김용균 분향소 앞에서 봉헌된 <청년비정규직노동자 고 김용균 추모미사>에서 낭송되었습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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