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척의 고통 속에서, 박완서 선생과 김용균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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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척의 고통 속에서, 박완서 선생과 김용균의 어머니
  • 방진선
  • 승인 2019.01.2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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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선생 선종 8주년

존경하는 소설가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선생님(1931년 10월 20일~2011년 1월 22일) 선종 8주년!

지난해 말 "김용균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통과 후 오늘까지 장례를 치르지 않고 아들의 사망사고 진상 규명을 참척(慘慽)의 눈물로 호소하는 어머니의 절규가 광화문 광장에 메아리 칩니다.

“대통령에게 지금이라도 아들 용균이가 일했던 곳을 가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그래야만 왜 정규직 전환만이 용균이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들의 죽음으로 제 정신은 한 번 죽었습니다. 죽지 못해 살고 있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은 용균이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처벌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용균이의 동료를 살려 낼 수 있다면 죽어도 행복할 것 같습니다.” (고 김용균씨의 모친 김미숙, <매일노동뉴스>, 2019.1.21)

 

사진출처=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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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먼저 잃는 참척의 고통은 그 부모만이 견디며 살아가야 합니다. 박완서 선생님의 선(先)체험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수많은 참척의 고통들, 그 중립이 없는 고통을 애써 느끼며 성찰합니다.

"나는 (유족들과) 연대하기 위해 이것(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이것을 달고 반나절쯤 뒤에 어떤 이가 다가와 ‘떼는 게 더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그 비극적 사건에 중립적이어야만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프란치스코 교종, <한겨레신문>, 2014.8.19)

1988년 남편의 선종하지 3개월후 26세 외아들이 선종하는 참척의 비극은 하느님을 향한 분노의 대들기와 따지기로 선생의 신실한 실존을 송두리째 전복시킵니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아이들이 유치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까지는 참아줬지만 88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도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 벌이고 춤들을 추는 걸 어찌 견디랴. 아아, 내가 만일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도 못하게 하련만."(<한 말씀만 하소서> 2002년)

"참척을 겪은 기막힌 애통과 절망은 당연히 에미의 목숨을 단축시킬 줄 알았다. 살고 싶지 않은 게 조금의 거짓이 아닌 이상 육신은 의당 거기 따라주려니 했다. 그러나 내 육신은 내 마음과는 별개의 남처럼 끼니 때마다 먹고 살고 싶어하는 게 아닌가. 나는 내 육신에 대해 하염없는 슬픔과 배신감을 느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한 말씀만 하소서>).

" '하느님이 계시다면 차마 이럴 수는 없지. 하느님이 있긴 뭐가 있냐?'고 하루에도 수없이 하느님을 죽이는게 그 후의 나의 일과이다. 명색이 가톨릭 신자건만 어쩔 수 없다. 그 죄로 영겁의 지옥불이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평생 그 짓에서 헤어날 수 없으리라"(<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1990년)

“당신의 존재의 가장 참을 수 없음은 그 대답 없음이다. 한 번도 목소리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도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있는 것처럼 느끼고, 부르고, 매달리게 하는 그 이상하고 음흉한 힘이다”(<한 말씀만 하소서>).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한 말씀만 하소서>).

영혼의 어둔 밤, 그 실존의 밑바닥까지 내려간 선생은 두손으로 변기 모퉁이를 잡고 무릎 꿇은 자세로 하느님의 계시를 체험하고 일어섭니다.

​“그때 계시처럼 떠오른 나의 죄는 이러했다. 나는 남에게 뭘 준 적이 없었다. ...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타인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야말로 크나큰 죄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 벌로 나누어도 나누어도 다함이 없는 태산 같은 고통을 받았음을, 나는 명료하게 깨달았다. ... 나는 그 정답게 머리 숙여 승복했다. ... 그리고 구원이었다. 고통도 나눌 가치가 있는 거라면 나누리라. ... 주여, 나를 받으소서. 나의 모든 자유와 나의 기억력과 지력과 모든 의지와 내게 있는 것과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받아들이소서. 나의 고통까지도. 당신이 내게 이 모든 것을 주셨나이다. 주여,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도로 드리나이다.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이오니, 온전히 당신 의향대로 그것들을 처리하소서. 내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이 내게 족하나이다.”(<한 말씀만 하소서>).

"저는 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당신께는 어떠한 계획도 불가능하지 않음을!"(욥 42,2)

"마지막으로 어미의 배를 빌어 태어난 이 땅의 딸들아,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 남을 죽일 위험이 있는 짓도 말아 다오. 설령 네 목숨과 지상의 낙원을 바꿀 수 있다 해도 네 어미는 결코 그 낙원에 못들지니"(<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1990년)

“가장 쓰라린 눈물은 인간적 악으로 인한 눈물입니다. 폭력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이들의 눈물, 석양을 바라보지만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이들의 눈빛 ... 우리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주님의 위안을 청합시다.” 
“모든 십자가 발치마다 항상 어머니께서 계십니다. 어머니는 당신 망토 자락으로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십니다. 어머니께서 손을 뻗어 우리를 일으켜 주시고, 희망의 길을 함께 걸어주십니다.” (프란치스코 교종, 눈물을 닦아주는 기도 예식, <가톨릭평화신문>, 2016.5.15)

천국에 계신 박완서 정혜 엘리사벳 선생님 !

이 땅에서 선종한 자녀들의 영원한 안식과 그 참척의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든 부모님들이 선생님처럼 구원을 체험하고 굳세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빌어주십시오 !

방진선 토마스 모어
남양주 수동성당 노(老)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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