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승구 신부 "2009년 용산으로부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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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승구 신부 "2009년 용산으로부터 10년"
  • 나승구 신부
  • 승인 2019.01.2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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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10주기 추모미사, 나승구 신부 강론(2019.1.10)
사진출처=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강산이 변했습니다. 얼마 전 가본 용산은 앞으로 보나, 옆으로 보나, 뒤로 보나 10년 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용산참사역’이라고 불렀던 4호선 지하철 신용산역 주변은 그야말로 개벽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가 만나던 장소도, 만났던 사람들도 이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명절이면 한 번씩 눈이 가서 설빔 추석빔을 하던 양품점도, 동네 사람들 적적함을 달래주고 아이들 성장도 도와주던 대여책방도, 저녁나절 후루룩 맑은 탕 한 그릇에 소주 한잔 곁들이던 복집도, 하루를 정리하며 이웃과 동료들이 정담을 나누던 호프집도...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이웃을 사귀며 일상을 꾸렸던 2009년 1월 20일 이전의 용산은 이제는 없습니다. 잃어버린 것일까? 그냥 사라진 것일까? 

그렇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오늘 구약 독서에서 언급되던 시온 예루살렘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던 곳, 터전을 잃었습니다.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작물을 심고 가꾸고 식량을 장만하고, 양과 염소를 키워 털과 고기를 얻으며 이웃과 더불어 살았던 시온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침략에 철저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진출처=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침략자들의 모습은 처음부터 흉측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며 공동체를 이루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은근하게 다가오는 이방인들의 풍요는 참으로 달콤했습니다. 우리도 더 잘 누리며 살 수 있을 텐데...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편하고, 더 많은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이방인들처럼 누군가를 정복하고, 더 많은 노예를 두고, 자신의 성공을 방해하는 이라면 이웃과 형제도 짓밟아야 했습니다. 그런 풍요가 이스라엘에 밀려들면서 그들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그렇게 이방인들의 풍요를 따라 살다보니 하느님도, 이웃도 다 잃었습니다. 시온 산 예루살렘에는 하느님께 대한 제사가 멈추었고, 조금이라도 힘을 가진 이들은 그렇지 못한 자들, 돌보아야 할 과부와 고아를 저버리는 일들로 어지럽혀졌습니다. 당연히 수없이 주인이 바뀌는 이웃 강대국들 같이 이스라엘 역시 나라를 잃게 됩니다. 그리고 70여년에 걸친 유배 생활을 하는 처지가 되고 맙니다.

그런 이스라엘 민족에게 오늘 주어지는 이사야서의 말씀은 한 마디로 “이제 고생 끝이다!”라는 선언입니다. 압제의 설움에 흐느끼며 마지막까지 하느님과 이웃을 간직하고 살아오던 이스라엘의 남은 이들, 아나윔들에게 들려오는 기쁜 소식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정녕 기뻐하시는 것은 사람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었음을 확인시켜주는 결정적인 판결이었습니다. 지금껏 간직해온 소중한 것, 이웃과 하느님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꿈이, 그 의로움이 이제는 온 세상에 드러날 것이라는 고마운 예언입니다.

 

사진출처=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소박맞은 여인’, ‘버림받은 여인’이 오히려 ‘내 마음에 드는 여인’으로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하루아침에 도심의 테러리스트가 되었다가 가족과 이웃을 잃은 용산 4구역의 식구들이, 같은 철거의 위기 속에서 함께 연대했던 연대 단위의 철거민들이, 그리고 참사가 일어나자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와 슬프고 괴로움에 싸인 이들의 곁을 지켜낸 수많은 연대자들이 10년이 다 되어서야 조금씩이나마 명예를 회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이성수, 윤용헌 다섯 분의 열사와 공권력의 집행이라는 이름으로 본인의 의사와는 다르게 국가폭력의 도구가 되었던 고 김남훈, 그리고 그 유가족들, 아직도 10년 전 육체적 상처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들, 그리고 집터와 일터를 빼앗긴 철거민들이 잃어버린 것들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국민을 지켜야 할 공권력을 함부로 사용하여 국가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렸던 사람이 요직을 거쳐 지금은 법을 세우는 국회에서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오늘, 아직도 아픔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는, 아니 오히려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든 무정한 세월과 세상은 오늘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밝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이제 세월이 지났으니 상처와 아픔은 봉인한 채 살아가라고 말하는 세상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오랜 유배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온 백성들이 마주친 폐허의 성전처럼 말입니다. 

용산 참사 10년을 맞이하는 동안 모두들 참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355일의 남일당 시절을 거쳐 풀리지 않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시간들이었습니다. 용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는 내일의 숙제까지 끌어안으며 세상의 아픈 사람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쌍용에도 용산이 있었고, 강정에도 용산이 있었습니다. 밀양에 용산이 있었고, 세월호에 용산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충실하게 보낸 10년은 아무 의미 없는 속절없는 세월만은 아니었습니다. 끊임없이 빈 독에 물을 채우는 10년이었습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구호가 눈앞의 숙제만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국가폭력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었으니 말입니다. 

이제 또 다시 물독에 물을 채워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후손들에게 물려줄 세상이 더 이상 돈 때문에 사람이 살고 있는 터전을 망가트리지 않도록, 돈 때문에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도록, 돈 때문에 가족과 이웃을 저버리지 않도록 선하고 맑은 물을 빈 독에 채워야 하겠습니다.

내가 살던 용산처럼 아름답고 착한 사람들이 가족과 이웃을 돌보며,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며, 끌어안고 따뜻한 기운을 펼치며 살아갈 복원의 그날을 위해 물독에 헌신과 연대와 사랑의 물을 채운다면 하느님께서 기꺼이 잔치에 마땅한 포도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오늘은 그렇게 함께 꿈을 꾸는 날이며, 그 꿈을 위하여 내딛는 한 걸음의 날입니다. 용산이 용산이게 한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이 미사를 봉헌하겠습니다.

[출처] 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나승구 신부
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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