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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할 수 있을 때

[신배경 생활 칼럼] 

언제부터인가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지내왔다. 정신없이 살아온 삶의 흔적. 전화가 걸려 와도 “나중에 전화 할게.”를 반복하다보니 지인들은 나로 인해 문자, 카톡으로 연락하는 습관을 들였다. 100분짜리 요금제를 이용 중이지만 매 달 남아도는 현실.

요사이 쉬고 있다는 소문이 나버려 가끔 안부 전화가 걸려온다. 처음에는 전화로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린 듯 1,2분이 힘겹더니 이젠 5분이 우습다.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카톡만 주고 받다가 통화는 거의 일 년만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기로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한 J. 내가 알고 있던 J는 어디로 가셨는지, 활기찬 에너지가 실린 리듬감 있는 목소리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결혼하더니 많이 변했다며 웃음을 건네자 딸아이가 말이 트이면서 대화를 하다 보니 저절로 그리되었다고 한다.

생명이 주는 힘이구나. 새로운 생명이 J안의 밝고 활기찬 에너지를 끌어내었나보다.

 

사진출처=pixabay.com

J는 동양화를 전공한 옻칠 작가로 전주에서 산다. 결혼하고 작품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또 한 번 달라진 듯 하다. 작품을 보는 눈은 내게 없으나 깊어진 느낌이다.
난 친구인 인연으로 대학 때 부터 지금까지의 작품들을 어깨너머로 들여다보는 행운을 누렸다. 지금은 존경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결혼하고 전주로 내려갈 때는 지금처럼 애틋한 친구가 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만남은 자연스레 뜸해졌지만 만남의 횟수와 관계없이 끈끈하게 이어지는 친구. J가 전주로 내려가면서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우정이란 무엇인지 다시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몇 년 전 놀러갔을 때 기어 다니던 딸아이가 이젠 유치원에 다닌다고 하니 얼굴 본지 오래다. J가 전주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신랑과 시댁식구가 전부이기에 집에 놀러온 엄마의 친구를 보기 힘든 딸내미. 어린이집에서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딸아이가 “엄마는 왜 친구가 없어?”라고 묻는다며 J가 한참을 웃었다.

늘 작품에 매달리고, 해외로 전시 다니기 바쁜 일상. 모처럼 1월에 시간여유가 있다며 초대를 했다. 조건은 길게 머물다 가기. 하하... 

월요일 수업이 마음에 걸리지만 J의 딸내미에게 얼굴을 보여주러 가야겠다. 아기 때 함께 찍은 사진을 가지고. 이모는 네가 태어나기 전 부터 널 알고 있었노라고 이야기해 주어야겠다. 낯가림이 심한 개월 수에도 내게 안겨 잘 놀았던 아이. 잘 통할 것 같은 예감이다.

요즘 여기저기에서 쉬었다 가라는 연락을 받고 있는 중이다. 체력이 안 따라주어 못 움직이고 있었는데, 이제 슬슬 다닐까보다. 내 평생에 언제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싶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하고, 만날 수 있을 때 만나는 것. 올 해 목표다. 사랑을, 만남을 미루지 않는 것. 사랑은 미루는 것이 아님을 이제서야 배워가는 중이다.

J가 먹고 싶은 것을 해준다고 해서 돼지고기 넣은 김치찌개를 해달라고 했다. 더 맛있는 것 해준다지만, 사실 고기를 잘 먹지 않지만, 난 그게 제일 좋다. J가 처음으로 해주었던 메뉴. 그 날의 감격을 기억하고 있기에.

J에게... 기다려. 곧 갈께.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글쓰기 참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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