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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하느님을 찾아서, 나를 찾아서, 길을 찾아서

[글쓰기 연습-신배경]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사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한다. 막다른 골목을 마주했을 때, 혹은 절망의 벼랑 끝에 섰을지라도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겐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아직도 가야할 길>(M.스캇 펙, 열음사, 2007)에 담긴 스캇 펙의 글을 좋아합니다. 삶의 길 위에서 예기치 못한 변주가 부담스러울 때마다 꺼내 봅니다. 주저앉고 싶을 때 일어서게 하는 친구처럼 다가오는 글. 넘어짐의 연속이었던 여정 중에 받은 위로 편지입니다.

그 때는 평범했고 지금은 특별한 각자의 신앙

조부모님은 절에 다니셨고, 어머니는 성당에 다니셨습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와 새벽운동을 다니고는 했는데, 공원으로 가는 길목에 작은 절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절 앞을 지날 때면 허리 굽혀 절을 하셨는데, 제게 따라서 하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절 앞을 지날 때, 저는 성당 앞을 지날 때 각자의 방식대로 인사 했습니다. 집에 우환이 생기면 할머니는 염주를 돌리셨고, 저는 묵주를 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누구도 서로에게 염주나 묵주를 권하지 않았고, 각자가 편한 기도문을 읊을 뿐이었습니다.

때마다 절에 다니시던 할아버지는 어찌된 영문인지 돌아가시기 전에 ‘비오’라는 세례명을 받으셨고, 몇 년 후에 할머니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석가, 공자, 예수 모두 성인일 뿐이라며 종교와는 거리를 두셨습니다.

외할아버지 쪽은 구교 집안이었지만 외할머니는 혼자 교회에 다니셨습니다. 평소에도 찬송가를 즐겨 부르는 분이셨지요. 어머니와 이모는 천주교, 삼촌들은 개신교였습니다. 집안 어른들 각자 신앙이 달랐지만 그 때는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은 같았으니까요. 다니던 성당 바로 옆에 예배당이 있었는데, 성탄제를 하면 성당과 예배당을 오가며 놀았습니다. 부처님, 하느님,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그렇게 만났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불편한 편안함

가톨릭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교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예수 성심상, 늘 열려 있는 성당, 매 주 토요일 자율 참석이 가능한 미사, 종교시간, 성탄연극. 익숙한 문화 안에서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학기가 거듭되면서 나의 편안함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일 년에 몇 번 전교생이 참석하는 미사가 학교 공식일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생 대부분은 신자가 아니었지만 참석해야 했습니다. 본인이 원할 경우 빠질 수 있는 길은 열려 있었지만, 빠지는 학생은 거의 없었습니다.

다른 신앙을 가진 학생들에게 ‘미사가 강요로 느껴지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불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배정되어 3년 동안 매일 등교할 때 마다 불상을 보고, 학교 행사로 법회, 참선, 108배를 해야 한다면 불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익숙함 안에서 느꼈던 편안함이 미안해졌고, 불편해졌습니다.

편안함과 불편함 사이에서 ‘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무엇이고, 부처님의 자비는 무엇인가? 왜 같은 존재를 하느님, 하나님이라고 구분해서 부르는 것인지? 같은 존재를 믿으면서 왜 그리 싸우는 것인지? 종교에 따라 죽어서 가는 곳이 다를까? 많은 종교가 사랑과 선을 이야기 하는데 결국 그게 그거 아닐까? 태어난 곳의 환경에 따라 하느님을 평생 모를 수도 있는데, 믿을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은 영혼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왜 대부분의 전쟁은 종교 때문에 발생하는지? 종교 없이도 선한 이들이 많지 않은가? 윤회는? 천국은? 신은 어떤 존재인가?

끝날 줄 모르는 물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사랑의 빚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동시에 성당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누가 종교를 물으면 ‘가톨릭’이라고 대답하고, 묵주를 소중히 여겼지만 성당과 멀어져 갔습니다. 하느님을 믿었지만 어떤 분인지 몰랐습니다. 종교는 사랑을 ‘가르치기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종교 없이도 선한 이들을 일상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만 성당에 나가지 않는 ‘냉담자’가 되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바쁘게 지내던 어느 날 낙상으로 다리를 다쳤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시간이었지요. 사진첩을 보는데 초등학교 때 만났던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왜 20대의 꽃다운 시절을 성당에서 피워냈을까 궁금했습니다. 잊고 있던 얼굴들과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깁스를 풀고 다시 걷게 될 무렵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성당을 떠날 때도 갑작스러웠지만 돌아가는 것도 갑작스럽게 주임신부님을 찾아갔고,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했습니다. 성당과 직장을 오가며 아이들과 만나고, 본당생활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 했습니다. 다시 찾아간 울타리 안이었지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지, 사랑은 무엇인지, 여전히 막연했습니다.

하느님을 찾아서

학교를 졸업하고 교육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만족스럽고 편안한 시간도 잠시, 안정적인 정규직을 내려놓고 헤매고 또 헤맸습니다.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일을 하더라도 수입보다는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집을 떠나 시골의 작은 성당에서 일하기도 했었지요. 떠돌다 서울로 돌아와 비영리단체를 거치며 저절로 가난해졌고, 부모님이 기대하셨던 삶과 멀어졌습니다. 또래의 평범한 삶과 분명한 거리가 생겼습니다.

당시에는 몰랐고 지금 아는 한 가지.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 온 몸으로 찾은 시간이었습니다. 넘어짐의 연속이었습니다. 골목을 걷든 대로를 걷든 쉬운 날 보다 다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안정적인 삶과 멀어졌고, 최근에는 건강이 무너졌습니다. 걷던 길을 멈추고, 아픈 몸을 추스르며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봅니다. 지금까지 여정 중 가장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아픔 속에서 쉼이 허락된 시간.

돌아보니 그 분을 찾아 헤맨 길과 나를 찾아 떠난 길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아직도 가야 할 길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을 찾아 헤맨 시간. 혼자라고 생각한 고단한 여정이었습니다.

‘찾고 싶었던 것일까? 찾기 싫고, 만나기 싫어서 도망 다녔던 것은 아니었나?’라는 질문과 마주하니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올라 온 몸을 휘어 감는 아픔이 느껴집니다. 뛰쳐나가 헤매던 모든 순간에 함께 하셨음을, 내 모든 길이 하느님과 함께 걸었던 여정임을 이제서야 봅니다.

“님은 나와 같이 계시건만 나는 님과 함께 아니 있었나이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고백록에 담은 글이 단순한 문자가 아님을 느낍니다.

매 순간 나를 창조하시는 그 분 숨결 안에서 새롭게 생각하는 법과 새로운 언어를 배워나가려 합니다. 모든 것 안에 계시는 하느님과 함께. 지금, 여기에서.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기에.

신배경 클라우디아
가톨릭일꾼 글쓰기 참가자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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