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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서로 다른 두 교황, 성인이 되다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코-42
요한 바오로2세와 요한 23세 교종

프란치스코 교종은 2013년 7월 5일 첫 회칙 <신앙의 빛>(Lumen Fidei)을 발표했다. 이 회칙은 전임 교종 베네딕토 16세가 2005년에 발표했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2007년의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를 이은 ‘믿음에 관한 삼부작’ 회칙의 완결판이다. 이 회칙은 베네딕토 16세 교종이 사임하기 직전에 완성한 초고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몇 가지 생각을 덧붙여” 완성한 것이다.

베네딕토 교종은 가톨릭교회가 처한 ‘위기’를 직감하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 50주년이 되는 2012년 10월 11일에 시작하여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 ‘신앙의 해’로 선포했다. 그리고 신앙의 해를 마무리 짓기 전에 사임함으로써 이 모든 과업은 고스란히 프란치스코 교종에게 위임한 셈이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종은 <신앙의 빛>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교종 요한 23세와 교종 요한 바오로 2세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시성식은 2014년 4월 27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되었다.

가톨릭교회는 순교자 또는 높은 성덕을 지니고 죽은 이들 가운데 선정된 인물을 일정한 심사를 거쳐 성인품에 올려 왔다. 성인이 되면, 미사 경본과 성무일도 기도문에 그 이름이 삽입되고, 동방과 서방 교회 모두의 전례력에 축일이 지정된다. 성체행렬에서 성인의 유해를 공경하고, 성화를 그릴 때 천국의 영광스런 빛을 가진 인물로 묘사할 수 있게 된다.

요한 23세 성인 교종의 축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막일인 10월 11일, 요한 바오로 2세 성인 교종의 축일은 그의 교황 즉위일인 10월 22일로 정해졌다. ‘교회사적 전환’을 이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던 요한 23세 교종은 1963년 6월 3일 선종한 뒤 37년 만에 시복되고, 50년 만에 시성된 셈이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대해 다른 시선을 품고 있던 요한 바오로 2세 교종은 2005년 4월 2일 선종한 뒤 6년 1개월 만에 획기적으로 시복되고, 9년 만에 시성되었다. 이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엄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해당자가 죽은 뒤 5년간 시복 절차를 추진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관례를 깨고 서둘러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 절차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결국 두 교황의 동시 시성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신앙관의 절묘한 결합처럼 보인다.

철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는 “서구세계가 카이사르가 정복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을 때, 그리고 카이사르의 법률학자들이 편집한 서구신학의 텍스트를 받아들였을 때, 겸손을 모토로 하는 소박한 갈릴래아의 신앙관은 여러 시대에 거치면서 수그러들었다. 반면에 이집트와 페르시아 및 로마제국의 지배자들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진 하느님에 대한 뿌리 깊은 맹목적 숭배는 계속 유지되었다. 교회는 오로지 카이사르에게만 속하는 속성들을 하느님께 갖다 붙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황제에게 속한 것을 교황에게 적용했다. 이를 두고 독일 신학자 칼 라너는 ‘제국교회’라 이름 붙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교회에서 ‘제국교회’적 관행과 시각에서 탈피해 갈릴래아의 예수를 닮은 소박한 교회로 가려는 교회 개혁의 출발점이었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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