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성탄절에 죽음의 외주화 반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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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성탄절에 죽음의 외주화 반대하다
  • 가톨릭일꾼
  • 승인 2018.12.2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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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 비정규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형제의 죽음에 대한 전국 천주교 노동사목위원회, 정의평화위원회, 수도회단체 성명서]

-“너희나 너희 후손이 잘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신명 30,19) -

1. 지난 12월 11일,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스물네 살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형제가 연료공급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시 위험에 노출된 위험한 작업장 안에서 최소한의 인원규정 조차 지켜지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결코 개인적 아픔의 차원으로 축소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낸 사회적 희생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갑작스럽게 아들을 잃은 유가족 여러분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참담한 사고로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어머니께서 뼈가 녹는 고통을 느낀다는 말에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디 하느님께서 고 김용균 형제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치유의 힘으로 자식을 잃고 아파하는 부모님과 유가족의 고통이 하루빨리 극복될 수 있기를 마음 모아 기도드립니다.

2.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우리에게 고 김용균 형제의 사고는 너무나 큰 아픔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악한 현장에서 발전 설비를 점검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기로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음이 미안했습니다. 이 시대가 또다시 누군가의 아픔과 수고로 돌아가고 있다는 현실에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소중한 꿈을 간직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애써야 할 청년 노동자가 죽음에 이르러야 다시금 관심과 시선을 보내는 스스로의 무관심에도 성찰과 통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이와 같은 일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많은 지혜를 모으고 노력을 기울이는 일에 동참할 것을 다짐합니다.

 

사진=한상봉

3. 사건이 일어난 후, 많은 사람들이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원인으로 법 제도의 미비를 제기했습니다. 사업장에서 사고가 반복되어도 고용구조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을 지적합니다. 위험한 작업이 비정규직에게만 떠넘겨진 기형적 고용구조에 대한 문제제기가 많았습니다. 이를 두고 “위험의 외주화”, “죽음의 외주화”라 표현하며, 안전한 작업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용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또 다른 해결책으로 고용 형태의 구분 없이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산재 사고에 있어, 책임 있는 위치의 사람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반복되는 사고를 줄일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이른바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벌금과 구속을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면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진단과 처방에 모두 동의합니다. 따라서 이번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가장 약한 사람의 권리가 보호되는 방향으로 법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함을 촉구합니다.

4. 더 큰 권한을 가지는 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 과정으로 법과 제도가 개선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법과 제도만으로 반복되는 산재사고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법과 제도를 넘어, 우리시대가 우선시 하고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대가 겪고 있는 유혹을 깨닫고, 회심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인간은 목적일 뿐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당연한 듯 말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쉽게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안전설비를 갖추는 것보다 노동자의 산재를 보상하는 비용이 더 싸다고 생각할 때, 대규모 안전시설을 갖추는 것을 망설이게 됩니다. 사람의 목숨을 지키는 설비를 갖추기 위해 재화를 투입할 때, 큰 비용이 들기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것 역시 인간을 도구로 사용해 버리는 것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생산자의 안전이 포함된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더 값싼 제품만을 찾고자 할 때, 금전적 가치를 인간의 가치보다 우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익추구 만능주의 유혹을 극복하고 사람의 가치, 생명의 가치, 노동의 가치를 기억할 때 법과 제도의 개선도 그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모든 경제 사회 생활의 주체이며 중심이고 목적(사목헌장 63항)”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5. 다시 한 번 김용균 형제의 사고에 아픔을 겪는 모든 이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불안정한 고용형태와 위험한 작업장에서 노동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기억합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을 위해 국회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것을 촉구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도 인간 생명과 노동의 가치가 보호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물질만능의 유혹을 이겨내고 하느님 생명의 질서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2018. 12. 24.

천주교부산교구노동사목위원회, 천주교서울대교구노동사목위원회, 천주교인천교구노동사목위원회, 천주교광주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대구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대전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마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부산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서울대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수원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안동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원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의정부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인천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전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제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청주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춘천교구정의평화위원회, 천주교남자수도회장상협의회정의평화환경위원회, 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생명평화분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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