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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그러나 예수의 자리는 없다

[유대칠의 아픈 시대, 낮은 자의 철학-36]

한 청년이 죽었다. 그 외로운 죽음의 이유는 참으로 슬프다. 화가 난다. 정해진 규정이 지켜지지 않아서. 위험하다는 노동자의 호소를 무시해서. 비정규직이라서. 그 청년이 가난하고 약해서. 귀에 들리는 이유라는 것들이 하나 같이 절망적이다. 어찌 이 세상은 이리도 절망적인가? 어찌 이리도 잔혹한가! 힘없고 나약한 이의 그 애씀에 대하여 어찌 이리도 잔혹한가!

수많은 이들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한 이들은 저리도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힘없이 가난한 이들은 어찌 그저 살아가는 것조차 어찌 이리도 힘든가! 직원을 장난감 다루듯이 때리던 어느 기업 대표의 당당함이 이 사회의 맨몸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다. 그리도 사악한 이의 당당함과 힘겨운 삶을 위해 애쓰는 가난한 이의 죽음 앞에서 한 없이 절망하게 된다. 절망. 그 절망 앞에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예수가 태어난 날, 그의 자리는 없었다. 출산의 아픔에 고통스러워하는 부부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 이는 없었다. 결국 예수는 가축의 자리에서 태어났다. 타인을 위해 태어나 타인을 위해 죽을듯이 일하다 타인의 고기가 되어 죽는 그 가축들의 자리에서 태어났다. 예수가 오던 날,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빛이 어둠 가운데 내렸지만 어둠은 빛과 함께 하지 못했다. 빛이 바로 옆에 있어도 감은 눈으로 볼 것은 어둠뿐이다.

 

광화문에서. 사진=한상봉

남이 어찌 살든 남이 어떻게 아프든 보이지 않는다. 자기 아픔만 보이고 자기 기쁨만 보인다. 자기 좋은 것만 생각하고 욕심내며 살아간다. 영혼의 눈을 감은 이에게 세상은 그것뿐이다. 자신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뿐이다. 나에게 좋은 것만을 생각하고 욕심내는 곳에 예수는 바로 옆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일 뿐이다. 이런 곳에 예수의 자리는 없다. 아직도 없다.

예수의 자리가 없는 곳에 그 청년의 자리가 있을까? 없을 듯하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가난한 이를 억누름은 자신을 모욕하는 것이라 했다. 가난한 이와 함께 함은 자신을 높임이라 하셨다.(잠언14,31) 또한 거지들의 아버지이며(욥기29,16), 고아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보호자라 하셨다. 그러니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돕는 것을 잊지않고 응답하신다 하셨다.(잠언19,17)

하느님은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아버지이고 보호자이며, 우리에게도 그들과 함께 하라 하셨다. 그런데 우린 과연 가난한 이와 함께 하였는가? 힘든 이들과 함께 하였는가? 억울하고 힘든 이들의 억울함에 같이 분노하고 그 힘겨움에 같이 울었는가! 혹시나 그들의 억울함과 아픔 앞에서 나의 좋은 것만 생각하고 살아가느라 돌아보지 않은 것은 아닌가. 나의 삶에 그들을 위한 자리가 없던 것은 아닌가. 어쩌면 나의 삶에 예수의 자리가 없던 것은 아닌가.

혹시나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것을 빼앗아 나의 배를 채우고 그것으로 하느님 앞에 제물로 바친 것은 아닌가! 하느님은 이러한 제물에 분노하며 가난한 이에게 작은 빵 한 조각도 생명이니 절대 빼앗지 말라 하셨다.(집회서 34,20-21) 그런데 우린 너무나 쉽게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이기는 것에 기뻐하고 그들의 아픔을 대가로 웃은 것은 아닌가.

남의 아픔을 보기 보다는 빨리 더 많이 공부해서 남을 이기고 살라 말하고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중고기업과 공존하는 ‘대기업’보다 이기는 대기업, 그렇게 이김으로 더 많은 것을 욕심내는 대기업을 떠올리는 것이 쉬운 이 세상이 슬프다. 공존하는 ‘대학’보다 시간강사를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대학을 떠올리는 것이 더 쉬운 세상이 슬프다. 그 슬픈 세상을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이 아프다.

요즘, 대림 시기다.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돌아본다. 나의 이 공간에 예수의 자리는 있는지 돌아본다. 성당과 교회의 화려한 장식에 기뻐하실 분이 아니다. 눈을 감고 어둠 속에서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들의 자리에 예수의 자리는 없다. 아무리 화려한 성탄 장식이 있다 하여도 말이다.

지금 여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지하철에서 발전소에서 열심히 일하던 청년에게 작은 자리 하나 내어주지 못한 이곳에 예수의 자리가 있을까?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멸시받는 사람들,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1고린 1,28)과 함께 하시는 분, 바로 그곳이 예수의 자리가 아닐까?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 그들을 위한 공간, 그들과 함께 하는 공간, 그 예수의 자리는 있을까?

절망 앞에서 우린 무엇을 해야 할까? 가난하고 힘든 이들의 아픔을 외롭게 두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바로 그 자리가 예수의 자리이고 이 땅 가득한 절망이 희망이 되는 시작일 것이니 말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이 세상에 남은 없다 했다. 너가 아프니 나도 아프고 우리가 아프니 더불어 같이 풀어가자 한다. 남의 아픔으로 고개 돌리고 살아가는 것이 참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너의 아픔에 고개 돌리고 살아가면 결국 나도 아프게 된다. 그때 나의 아픔 역시 철저하게 외롭게 될 것이다. 철저하게 말이다. 예수의 자리는 희망이다. 너에게도 희망이고 나에게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더불어 희망이다. 대림 시기다. 돌아본다. 나의 자리를 그리고 그의 자리를. 
 

유대칠 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한다.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고전 세미나와 연구, 번역을 하고 있다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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