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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당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가톨릭일꾼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면서 참가자들과 더불어 저도 ‘자기소개서’를 적어 보았습니다]

“가장 훌륭한 삶이란 사랑으로 고무되고 지식으로 인도되는 삶이다.” 버트란트 러셀의 말입니다. 제 좌우명처럼 여기는 글입니다. 하필이면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아닌가>라는 책을 쓴 철학자를 꼽았는지, 의아해 하실 분도 계실 겁니다. 그가 무신론자라 표명하든 그리스도인이라 표명하든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삶이며, 그 생각의 올바름입니다. 사실 교회가 복음과 아주 동떨어져 살아갈 때, 교회가 권력투쟁으로 흉물이 되었을 때, 교회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시킨 사람들은 대부분 무신론자였습니다.

‘신의 죽음’을 선언한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실상 ‘교회의 죽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노예들의 종교’를 창시했으며, 노예들에게 희망의 근거가 되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노예종교의 수장이 천상천하 최고 권력인 ‘교황’이 되었다는 역설을 폭로한 것입니다. 그 후로 교회는 낮은 자들에게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신앙인들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다시 확인시켜준 은인은 반교회적 무신론자들이었던 셈입니다. 지식은 사랑의 방향을 정해주고, 사랑은 인간을 완전하게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 그 자체이므로.

 

사진출처=pixabay.com

가난해도 행복했다

이입분. 인천 제물포에 낡은 철로가 있었습니다. 한겨울, 기차가 다니지 않는 이 철로변에서 만난 여인입니다. 지적 장애를 겪고 있었던 이 여인은 노숙인이었고, 역한 냄새로 보아 상당한 기간 길에서 지낸 모양입니다. 당시 고교생이었던 나는 ‘착한’ 신자가 되어 그녀의 얼굴을 씻어주고, 인근 포장마차에서 우동을 먹였습니다.

그녀는 집에 가고 싶다고, 기차를 타고 여기까지 왔는데 가족들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이름을 써 보라하니, ‘이입분’이라고 적어 주더군요. 정황을 들어보니, 가족들이 버리고 간 사람인 거죠. 내가 이걸 어쩌겠습니까? 이분을 파출소에 데려가 맡기고 돌아오는 길은 참 울적했어요. 이런 사람들을 파출소에 데려간다 한들, 아마 파출소에선 슬그머니 다시 내보냈겠지, 지금은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라 여겼습니다.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무엇보다 든든한 신앙이 있으니 말입니다. 신앙은 사명을 낳고, 사명은 삶에 의미를 새겨 줍니다. 소(小)목수였던 아버지와 행상을 하던 어머니.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때는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종이로 집에서 봉투를 붙였고, 나중에는 쇼핑센터에서 유부우동을 말았습니다. 당시에는 저희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사람들이 낳은 아이들이 동네에 넘쳐나서, 가난이 흠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가족보다 더 가난한 이들이 많았고, 나의 신앙은 그들을 먼저 보게 하였습니다. 사제가 되거나 교사가 되고 싶었던 시절입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그냥저냥 기쁘게 먹고 삽니다

사제도 교사도 되지 못한 나는 ‘가난의 경험’이 오히려 고마운 ‘활동가’로 스물다섯 해 가까이 살았습니다. 천주교사회문제연구소 연구원,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간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사무국장. 게 중엔 듣기에 번듯해 보이는 직함도 있어요. 격월간 잡지 <공동선> 편집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에 주필까지.

제가 신문과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민망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던 프로필도 있었죠. 무주에 귀농했을 때는 ‘농부이며 평신도 신학자’라고 적어 넣었습니다. 지금 들어도 손이 오글거리는 프로필입니다. 그렇지만 제일 만족도 높은 자긍심입니다. 일하며 공부하는 그리스도인, 세상에 유익한 재화를 생산하면서 성찰하는 신앙인, 스콧 니어링을 흠모하던 사람에겐 기분 좋은 프로필이었죠.

내가 청춘을 바쳤던 이 모든 삶은 내핍생활에 익숙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이런 이상주의자도 아이를 키우고 나이가 들면서 ‘돈벌이’를 비켜갈 수는 없었습니다. 사실 가난하게 살고 싶어서 가난했던 것은 아닙니다. 내가 원하던 삶을 살고자 하니, 가난이 뒤따라 왔을 뿐입니다. 가난은 ‘정말’ 불편합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자발적 가난’이란 말이 와 닿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만 ‘복음적 삶’을 선택할 수 있지만, 애써 ‘가난한 삶’을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예수가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려 했지, 십자가 죽음을 갈망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만 사회적 투신에 따라오는 결과를 기꺼이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 사람이 신앙인이겠지요.

동기와 불가피한 결과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물론 교회사에서 영웅탁덕들이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던 사례가 많지요. 저는 이런 태도를 '의도적 가난'이라고 부르고 싶군요. 그들은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방함으로써 예수의 구원행로에 올라타기를 갈망했으니까요. 저는 이것 역시 종교의 병리적 현상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친구라 부르며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노예’가 되기로 작정하고 주인을 찾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분은 동지를 부르는데, 우리는 종이 되려 합니다. 그분은 나란히 걸으며 말을 나누자고 하시는데, 우리는 뒤에서 고개 숙여 걸으며 스승의 그림자만 밟습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복음적 삶의 결과로 주어지는 가난을 받아들이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지만, 삶이 주는 기쁨 또한 만끽하는 ‘유쾌한 성인’을 기대합니다. 그런 성인을 만나고, 나 또한 그 길에 동행하기를 자청하는 운동이 ‘가톨릭일꾼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자유롭게 투신하기 위해 조직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2016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마저 떠나서 ‘가톨릭일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아는 사람은 다 알 테지요. 세 달에 한 번 주어지는 상여금은 잠시나마 또 얼마나 안도의 숨을 쉬게 하는지요. 이런 안정된 봉급을 포기했지만, 어차피 자유를 얻으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허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릴 것이라 믿는 게 또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먹고 사냐고요? 그냥저냥 기쁘게 먹고 삽니다. 후원에 기대어 일을 하다보면, 그 돈이 얼마나 귀한 줄 알기에, 다른 단체 후원하던 것도 계속 하고 있어요. 사실 십여 만 원 정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내 목줄을 쥐고 있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나 혼자 감당할 만큼 일하고 소득을 얻는 ‘구멍가게 정신’으로 일하면서, 십시일반 정신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우리시대의 미덕이라 여깁니다.

지금은 도로시데이영성센터를 통해 <가톨릭일꾼> 신문과 웹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주로 의식을 공유하고 일꾼을 양성하는 게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려는 것이지요. 현장지향적인 가톨릭일꾼운동은 나보다 이런 일을 더 잘하는 분들이 계시리라 믿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그 사람이기를 기대합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내 인생의 잠복기 또는 은둔기

요즘은 웬만해서는 서울에 나가지 않습니다. 일산과 파주 일대에서 먹고 자고 일합니다. 사무실도 없습니다. 넘쳐나는 책은 후배가 운영하는 출판사에 맡겨두고, 작업은 주로 집에서 합니다. 글을 쓰고 편집하는 일이 본업이지만, 출근하는 아내 대신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고양이도 돌보고 있어요. 올 가을부터는 도시농부 코스를 밟으며 광탄 성당 인근 텃밭에서 채소도 키웠습니다. 얼마 전에 서리가 내리는 바람에 급하게 배추와 무를 뽑고, 시래기도 만들어 아파트 빨래 줄에 걸었습니다. 이걸로 김장도 했습니다. 

본당에선 사목평의회 일을 하며, 장례미사가 있으면 운구봉사를 하고, 심지어 성찬봉사까지 하고 있습니다. 결국 집과 성당과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라는 거지요. 지금을 잠복기라고 해야 할지, 은둔기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 얼굴 보여 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는 분들도 계신 모양입니다. 암튼 그런대로 평온한 하루가 지나갑니다. 그리고, 불쑥 성령께서 다른 일을 맡기시면 굳이 거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요즘은 우리 삶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그저 살아갈 뿐, 길을 밝혀 주시는 분은 따로 있다는 생각. 이것도 신앙일 수도 있겠다, 싶네요.

나는 나를 강제할 생각이 없습니다. 인생의 청사진을 미리 그려 둘 마음도 없습니다. 제대로 사랑하려면 먼저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갈라 5,13 참조) 이런 점에서 나는 언제나 경계선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편에도 명시적으로 가담하지 않고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은 자유롭지만 외롭습니다. 예전에는 교회 제도권 바깥으로 조금 비켜나 있었다면, 지금은 교회 제도권 안으로 조금 들어와 있습니다. 복음 선포에 교회의 안팎이 따로 없다고 믿습니다. 교회 밖에서 교회를 보면, 교회는 추상적인 권력집단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교회를 보면, 그 안에도 생생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당한 제도는 비판하지만, 교우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요한처럼 요르단 강가에 머물지 않고 회당으로 호숫가로 나가신 것은 ‘사람’을 만나려는 것입니다. 구원이 필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결국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교회개혁을 위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 안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당 구조 안에서 어렵사리 만난 뜻있는 분들과 힘든 싸움을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성직주의를 비판하지만, 성직자들도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제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동무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전사들 뿐 아니라 일상을 튼튼하게 살아가는 신자들도 훌륭합니다. 그들은 드러나지 않게 복음을 실천합니다. 나는 열심당원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교회를 비판하면서도 교회를 사랑했던 도로시 데이처럼. 

* 이글은 종이신문 <가톨릭일꾼> 2018.12-2019.1월호(통권 16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한상봉 이시도로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가톨릭일꾼> 편집장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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