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바오로는 율법 전체를 비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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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바오로는 율법 전체를 비판하지 않았다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8.12.09 2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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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율법 - 6
사도 바오로

현대 성서학에서 역사적 예수와 바오로 연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룬 학자는 샌더스(E.P. Sanders)이다. 그는 1977년에 발표한 저서인 “바오로와 팔레스타인 유다이즘(Paul and Palestinian Judaism)”에서 유다이즘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통해 예수와 바오로 연구에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였다.

샌더스는 팔레스타인 유다이즘의 종교적 패턴을 찾고자 한다. 이를 위해 유다이즘의 다양한 문헌들을 분석한다. 기원전 200년경부터 기원후 200년경까지의 유다 문헌들인 탄나임 문헌, 사해 사본, 구약성경의 외경과 위경 등을 연구하여 그는 새로운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즉 바오로 당시의 유다이즘은 율법에 대한 준수로 구원되는 율법주의(legalism)의 종교가 아니라 하느님 은총의 선택과 계약의 종교라는 것이다. 즉 하느님의 백성으로 “들어가기”(getting in)는 하느님 은총의 선택이고, 하느님과의 계약 관계 안에 “머물기”(staying in) 위한 수단이 율법 준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샌더스는 팔레스타인 유다이즘의 종교적 패턴을 “계약적 율법사상”(covenantal nomism)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새로운 주장은 제2성전 유다이즘을 율법주의적 종교로 해석해 왔던 역사에 대한 혁명적 도전이었다. 이것은 당시의 팔레스타인 유다이즘을 새롭게 이해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바오로를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의미하였다. 또한 이 시도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였다. 즉 바오로의 서간에서 발견되는 당시 유다이즘에 대한 비판적 정보를 토대로 유다이즘 전체를 재구성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유다이즘과 바오로의 관계를 해석한 역사에 대한 비판이었다. 따라서 샌더스는 “계약적 율법 사상”으로 새롭게 이해된 유다이즘에 근거하여 역사적 예수와 바오로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했던 것이다.

“바오로와 유다이즘”의 문제에 대한 샌더스의 새로운 접근 방법을 따르는 학자들은 던(J.D.G. Dunn), 레이제넨(H. Raeisaenen), 도널슨(T.L. Donaldson), 라이트(N.T. Wright) 등이다. 이들은 유다이즘에 대한 샌더스의 새로운 해석에 근거하여, 바오로의 의화론을 구원론의 중심으로 보기보다는 이방인 선교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즉 선교적이고 교회론적인 문제로 해석한다.

던은 샌더스 이후의 이 새로운 경향을 바오로 연구의 “새 전망”(the new perspective)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바오로 연구, 특히 “바오로와 유다이즘” 연구에 있어 “옛 전망”(the old perspective)과 구별되는 새로운 경향이다. “율법의 행위 없이 믿음으로 의화된다”라는 바오로의 가르침에서 “율법의 행위”는 종교 개혁자 이래로 “옛 전망”에서 율법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새 전망”의 대표적인 학자인 던은 이 “율법의 행위”를 할례, 안식일 준수, 음식 규정 등과 같이 유다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규정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던에 따르면, 바오로의 의화론은 안티오키아 사건을 계기로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갈라티아의 유다주의자들에 대한 바오로의 대답이었다.

이 “새 관점”은 전통적인 해석인 “옛 관점”과 뚜렷이 구별되었다. “옛 관점”에 따르면, 바오로 당시의 유다인들은 율법을 준수하는 인간의 행위를 통한 공로에 힘입어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 관점”은 바오로 당시의 유다이즘 그 자체와 그것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율법주의적 해석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유다이즘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는 포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새 관점”에 따르면 유다이즘과 그리스도교의 종교적 패턴은 더 이상 대조적(antithetical)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둘 다 은총과 계약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율법의 행위 없이 믿음으로 의화된다”는 바오로의 주장은 당시에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바오로가 그의 서간에서 비판하는 “율법의 행위”란 무엇인가? “새 관점” 학파에 따르면, 바오로가 비판한 “율법의 행위”는 율법 전체와 그 준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율법의 행위”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약의 관계 안에 “머물기” 위해 필요한 특정한 율법 규정의 준수를 가리킨다. 즉 하느님의 백성과 이방인을 분리하는 정체성 표지(identity badges) 혹은 경계 표시(boundary markers)로서 할례, 안식일, 정결 규정, 음식 규정 등의 준수를 의미한다.

송창현 미카엘 신부
지곡성당 주임,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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