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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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무는 침묵
  • 한상봉
  • 승인 2016.05.18 1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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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여덟 단계-4
제네시 트라피스트 수도원 전경 ⓒ한상봉

침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끝없이 일을 찾아 나선다

로버트 엘스버그는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성인들>에서 먼저 히말라야 산맥 아래 자리 잡고 있는 부탄왕국을 소개한다. 작은 불교국가인 부탄왕국의 정책은 ‘국민총생산’이 아니라 ‘국민총행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인근의 네팔이나 티벳이 밀려드는 관광객 때문에 ‘순박한 예전 생활방식’이 무너지고 있는 것과 달리 부탄왕궁은 해마다 관광객 수를 7,5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의 경우에 1인당 1일마다 250달러를 받는데, 이 비용은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포함된 차량, 호텔, 식사, 광광지 입장료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관광객이 내는 체류비용의 47%는 부탄의 교육과 의료 등 복지에 쓰이는데, 이 나라는 무상교육과 무상복지를 이룬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고 있다.

엘스버그는 이들이 ‘시간’을 자기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현대인들은 ‘시간은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운전을 하면서도 휴대폰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한다. 이들이 늘 아쉬워하는 것은 시간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휴식시간이 주어지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문을 보거나 전에 경험한 것보다 더 우리를 소진시킬 수 있는 여행을 계획한다. 늘 우리를 번잡하고 다급하게 부추기는 것은 앞으로 해야 할 일, 잘못 처리한 일,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엘스버그는 이런 상황을 ‘내적 소음’에 시달린다고 표현했다. 이런 소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지금 현존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떼어놓는다. 이를 두고 <팡세>를 쓴 파스칼은 “우리는 늘 더 행복해지려고 계획하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해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파스칼은 “진정 행복해지고 싶다면 성인들과 하느님처럼 고요 속에 머물러야 한다. 침묵할수록 우리는 더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가 끝없이 일을 찾는 이유는 “침묵 자체보다 자신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엘스버그는 말한다. 그리고 “상업문화는 내적 삶을 벗어나도록 부추기고 소비, 기분전환, 최신 화젯거리나 또 다른 전율을 만끽하게 함으로써 불안한 욕망을 충족시킨다.”고 말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엘스버그는 틱낫한 스님이 쓴 <혼자 있기 위해 더 나은 길 익히기>라는 책을 소개한다.

“현재로 돌아가는 것은 생명과 만나는 일이다. 생명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발견할 수 있다.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곧 부처됨, 해방, 깨달음, 평화, 기쁨, 행복은 오직 지금 이 순간에만 발견할 수 있다. 생명과 만남은 지금 이 순간 일어난다. 우리의 약속 장소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다.”

이런 점에서 엘스버그는 정주수도원을 시작한 성 베네딕토 성인을 기억한다. 베네딕토 성인은 이 수도원에서 저 수도원으로 돌아다니는 ‘순회 수도승’들을 꾸짖으면서 “그들은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차기 취향에 따라 살아간다.”고 꾸짖었다. 결단을 내리기 싫어하는 수도승은 마치 결혼을 미루고 있는 배우자들과 같다. 오늘 결혼했는데, 이튿날 더 좋은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이다.

어딘가에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인다면 결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늘 쫓기듯 살아가는 삶은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을 모른다. 그러니, 침묵 속에서 조용하고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필요가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깊은 심연에 닻을 내리는 것과 같다.

헨리 나웬 “도대체 나는 왜 이러고 있나?”

헨리 나웬

네덜란드 출신의 영성작가 헨리 나웬이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가 노트르담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고, 1971년부터 예일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1974년 6월 1일 뉴욕 주에 있는 제네시 트라피스트 수도원으로 들어가 ‘단기 수도자’로 7개월 동안 살기로 결심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제네시 일기>에서 헨리 나웬은 “나는 내적 자유, 마음의 평화가 중요함을 가르치고 강의하고 글로 펴내면서 줄곧 내 자신의 강박충동과 환상으로 비틀거려 왔다.”고 고백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 기획에서 저 기획으로 치닫게 하였던가? 물었다. 도대체 무엇이 나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분의 실재’를, 실재하는 모든 것을 다 본 사람처럼 진지하게 생각하고 이야기하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라는 나의 소명을 지루한 하나의 직업으로 바꾸어버린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진지하게 물었다.

나웬이 발견한 자신은 “하느님과 함께 있기보다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쪽”이었다. 기도에 관해 글을 쓰느라 기도하는 생활을 떠나 있었다는 자책이다. 사실상 나웬이 존경하던 또 다른 영성작가로 유명한 토머스 머튼도 같은 고민에 휩싸이곤 했었다. 헨리 나웬이 수도원에 들어갔을 때 만난 엘리아 수사는 머튼 이야기가 나오자, 이렇게 말했다. “그분은 훌륭한 저술가였지요. 그분의 책은 정말 좋습니다. 그다지 고독을 체험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이것은 머튼을 비난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홀로 지낼 수 있기를 갈망했던 머튼이 사실상 수많은 사람들과 편지 사이에 파묻혀 있었다는 딜레마를 표현한 것이었다. 마음은 그러하고자 하나, 주변사람들과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말을 이럴 때 써도 좋을까, 싶다.

나웬은 작가와 교수생활을 하면서 “이제는 뒷걸음질을 쳐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강박에 시달렸지만, 그다지 쉽지 않았다. 항상 수업 준비와 강연, 만나야 할 사람과 걸어야 할 전화, 답장을 아직 보내지 못한 편지더미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너무 성공한 나머지, 나라는 사람은 결코 여기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여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요구들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면서도 요청받는 일이 하나도 없으면 기분이 편치 않았다. 편지 써야 한다는 부담을 이야기하면서도 우편함이 텅 비어 있으면 서글펐다. 지루한 강의 일정 때문에 초조해 하면서도 아무런 초청이 없으면 실망감을 느꼈다. 텅 빈 사무실을 동경하면서도 실제로 그렇게 될 날이 올까봐 두려웠다.”

헨리 나웬은 일과 관계에 대한 자신의 애착이 얼마나 큰지 경험하면서 “내 삶이 닻을 내리고 또 내가 거기에서부터 희망과 신념을 가지고 뻗어나갈 수 있는 정점이 과연 있는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작파하고, 자신이 존경하던 요한 에우데스 밤버거 신부가 대수도원장으로 부임한 제네시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작심했다. 그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자이며 안내자였다. 좋은 상담자이면서 동시에 그의 절박한 필요를 알아주는 지도자였다.

제네시 수도원 성당으로 들어가는 크리스천 수사. ⓒ한상봉

수도원 체험, “지금여기에 현존하기”

헨리 나웬이 처음 수도원에 들어가서 경험한 것은 날씨 변화가 하느님에 대한 갈망을 깊게 해준다는 사실이다. 엘리아 수사는 이렇게 말한다.

“폭풍이 그로 하여금 부드러운 미풍을 염원하게 하고, 구름이 태양을 염원하게 하며, 메마른 공기가 비를 염원하게 할 때, 그의 마음은 하느님을 갈구하는 법을 배우게 되며 어느 것 하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된다.”

엘리아 수사는 말하기를, 항상 햇볕이 내리쬐면 사람은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잊어버리고, 더 이상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주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확인되면서 흥분이 일어날 때, 이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유혹이 생기지만, 그 자리에 머물며 기도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헨리 나웬은 그 다음 말이 더 마음에 닿았다. “주님에 관해 어떻게 이야기할지 걱정하지 말아요. 주님은 당신 마음속에 들어오시도록 허용만 하면 그분이 당신한테 할 말을 알려주실 테니까요.”

헨리 나웬은 수도원에 들어와서도 아직 못 읽은 책에 관하여, 이곳 생활이 끝나고 나서 해야 할 강의에 관하여 계속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이 모든 것은 먼저 내려놓아야 할 숙제였다. 그는 여전히 과거와 미래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예전에 경험했던 산안농장의 야마기시 공동체에서는 연찬을 할 때 제일 먼저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 가졌던 모든 것을 원(zero, circle) 위에 내려놓을 것’을 요구했다. 아마 나웬에게도 이게 필요했을 것이다. 실제로 제네시 수도원의 일상이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제네시 수도원에서는 하루 일과가 새벽 2시에 시작된다. 간단히 체조를 하고 밤기도를 하고서, 아침에는 목공소나 빵공장에서 일한다. 오후에는 공부를 하고 묵상을 하다가 저녁 7시경에는 다음 날의 생기에 찬 시작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이들이 ‘밤’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왜일까? 침묵 속에 잠긴 대지 위에서 ‘미풍’처럼 감겨오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기 위함이 아닐까? 하느님은 우리의 심연 속에서 계시며, 우리는 그 심연에 닻을 내리는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것일까? 그렇게 그분을 만나고서야 태양 아래서도 그분을 기억하고 그분의 현존 안에서 생활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헨리 나웬은 빵공장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으리라.”(창세 3,19)는 말씀을 깊이 묵상할 기회를 얻었다. 나웬은 말한다. “내 인생에서 빵과 땀이 이처럼 밀접하게 이어졌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분은 이렇게 일상을 통해 현존하신다.

제네시 수도원 거실. ⓒ한상봉

'여기'서 '저기'를 사는 고장난 기계

6월 6일자 일기에서 헨리 나웬은 자신이 ‘고장난 기계’와 같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가 수도원에 들어갈 때 들고 간 소설책 <선(禪)과 오토바이 간수법>을 읽으며 발견한 것이다. 이 책에서 퍼시그(Pirsig)는 아욕등반(我慾登攀, ego climbing)과 무욕등반(無慾登攀, selfless climbing)을 구분 짓는다. 어떤 사람은 산을 오르면서 몸 상태에 비해 너무 빨리 가거나 너무 늦게 간다. 말을 할 때도 항상 어떤 곳, 다른 어떤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여기 있으면서 여기에 있지 않다. 그는 이곳을 거부하고 이곳에 불만을 가지며 오르막길을 더 올라가 있고 싶어 하다가 막상 그곳에 이르면 마찬가지로 불만에 싸인다. ‘그곳’이 이제는 ‘여기’가 되어버린 까닭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노역이 된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목표가 ‘외부에’ 그리고 ‘멀리’ 있다고 상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욕등반은 항상 여기에 머무는 사람이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충분히 즐기고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의도보다 주어진 상황에 감사하고 의미를 찾는다.

헨리 나웬은 퍼시그가 마치 자신을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웬은 하느님 현존 안에 머물며 그분을 맛보기 위해 수도원에 왔건만, 내면에서는 ‘아욕등반’을 계속하고 있다.

“나에게는 글로 쓰고 싶은 생각들이 너무 많고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고 배우고 싶은 기술이 너무 많다. 이제든 나중이든 다른 사람들한테 말해 주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은 나머지 나는 하느님이 바로 내 주위에 계시다는 사실을, 그리고 내게 항상 아주 가까이 계시는 그분을 간과한 채 저 앞에 있는 것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 하고 있다.”

결국 “나는 항상 영적 생활에 ‘관해’ 읽으려고만 하고, 왜 그것을 실제로 생활화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하고 나웬은 반성했다. 이 모든 태도의 배후에 무엇이 있는 걸까? 심지어 기도에 관한 독서를 하는 영신적인 일마저도, 주님을 찬미하는 통로로 삼지 않고 미래의 강의와 저술에 필요한 흥밋거리를 메모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예수회 회원들은 거의 모든 공책 페이지마다 “A.M.D.G(Ad Majorem Dei Gloriam, 하느님께 보다 큰 영광을)라고 적어놓는다는데, 자신은 결국 (무의식 안에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움직였던 것은 아닐까, 자책했다.

그분은 지금 있는 그대로 당신을 사랑하신다

그해 12월 25일까지 이어진 나웬의 수도원 생활은 “나를 이곳에 머물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말로 맺었다. 12월 22일 주일에 나웬은 자신의 7개월 동안의 소회를 나누는 시간을 수도원 형제들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나웬은 어렸을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이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어머니는 “사랑하는 예수여, 모든 것을 당신을 위하여!”라는 간단한 기도를 가르쳤다. 정말 간단한 기도였지만 알아듣기 힘들었다.

나웬이 바라본 자신의 인생은 이런 식이었다. “예수여, 일부는 당신을 위하고 일부는 나를 위하는 것으로 나누기로 합시다.” 온전히 자신을 바쳐야 성덕이겠지만, “내 삶은 늘 일종의 타협과 같았다.”고 나웬은 말한다. “분명히 나는 사제이지만 사람들이 나를 사제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들한테 내가 심리학자라는 사실도 제시할 수 있고 그러면 그들은 그 때문에 나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사랑받을만한 일을 하는데 힘을 쏟았다고 고백했다.

수도생활을 통해 헨리 나웬은 “주님이 중심에 자리 잡으시도록 할 때 삶은 한결 단순하고, 한결 일관성 있게 되며, 한결 집중력을 가진다.”고 말했다. 한편 수도생활은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더 가까이 이끌었지만, 더불어 세상과도 더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이곳 수도원에서는 장소, 주(州), 나라, 대륙의 경계선 너머를 훨씬 쉽게 바라보고 온 세상의 고통과 아픔을 보다 절실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또한 하느님과의 친교가 두터워지면서 기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확대되는 것을 체험하였다.”

실제로 헨리 나웬은 수도원에 머물며 형제들에게서 자신의 잘못이 거의 비판받지 않는 반면에 자신의 업적 또한 별로 칭찬받지 못한 경험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악전고투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성공과 실패보다 훨씬 깊은 차원에서 사랑받고 있음을 체험함으로써 나는 내 자신 및 하느님과 훨씬 깊이 있게 접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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