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영을 분출하는 예언자가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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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영을 분출하는 예언자가 필요한 시대
  • 세바스티안 카펜 신부
  • 승인 2018.11.2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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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문화적 변혁-1

예수 당시에 팔레스타인의 많은 사람들은 이중으로 문화적 지배를 받고 있었다. 하나는 외세의 지배로부터 오는 문화적 억압이요, 또다른 하나는 바빌론 유배 이후 유다주의 자체에서 생겨난 억압적인 경향이었다.

B.C. 3세기부터 유다–헬레니즘 문화는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다가 시리아의 지배에 들어갔을 때에는 헬레니즘이 더욱 강요되었다. 그리하여 희랍의 전통과 생활방식, 교육방법 등은 처음에 문화적 공존이라는 차원에서 전래되었으나 점차 유다인들에 대한 박해와 그들 문화의 파괴를 초래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의미심장한 것은 이러한 문화 침략이 숫자는 적으나 당시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제나 상류신자 계층 그리고 일반 부유층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에 매달렸으며 마카베오 투쟁을 지지하는 정도로까지 외국문화에 저항하였다. 그 후 로마지배 시대에도 민중들은 그들의 종교적 감각에 반대되는 어떠한 것에 대해서도 저항하였던 것이다.

이처럼 외세의 지배뿐 아니라, 민중들은 유다주의의 억압에 이중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예수 시대에는 종교예식과 땅과 계시주의가 예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귀족계층을 이루고 있던 사제들은 평신자 귀족들과 야합하였고 성전수입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예언과 예언자들이 부재하였으므로 자연히 계시주의 예정론이 두각을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주도와 또한 똑같이 자유로운 인간의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미래의 정의의 시대를 선포하였다. 그런데 계시주의자들은 역사는 이미 예정된 길을 따라 진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현세의 극도의 비참에 이어 미래에는 자유와 행복의 새로운 시기가 저절로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예수 당시에는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로부터 시작된 율법주의와 궤변철학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었다. 즉 율법에 대한 지식이 사랑을 우선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유다종교의 근저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종교였던 유다교는 이제 민중으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율법 지식을 독점하는 지식층의 종교가 되어버렸다. 유일하게 민중들에 가까웠던 종교문화 운동은 젤로트 운동(열혈파 운동)이었다. 열혈당원들은 무력으로 로마인들을 축출하려고 하였으며 민중들의 지지를 받았다.

 

La Palabra ilustra la persona del profeta llamado Amós. Era un pastor

문화적 위기

이처럼 예수 당시의 유다는 문화 위기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예언자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나자렛의 예수는 바로 시대가 필요로 하는 예언자이었다.

문화란 사회제도를 형성하는 본질적인 부분, 즉 모든 현실전체를 의미한다. 문화는 사람들 개인 혹은 공동체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결정짓는 모든 이념, 신념, 가치관의 유기적인 총체를 말한다. 그렇지만 문화와 사회제도의 관계는 다만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양상을 띄며 어떤 때는 갈등의 모습도 드러난다. 왜냐하면 문화는 정체된 것이 아니고 역사적 변화와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위기는 사회제도가 실현시켜야 할 가치관을 만들어내지 못할 때에 혹은 문화의 발전이 기존제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에 일어난다.

또한 문화의 위기는 사회제도와 문화 사이의 불균형한 발전 때문만이 아니라, 과학과 기술이 향상됨에 따라서 혹은 다른 문화와의 만남이나 외세의 영향으로, 또한 창조적인 개인들의 자체 비판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문화 위기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문화의 계급성에서 비롯된다 하겠다. 억압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문화가 주류를 형성할 때, 억압받는 계층 사이에는 불만이 고조된다. 그리고 이 불만의 분위기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바로 예언성을 지닌 개인과 집단들이다.

그러므로 문화 위기의 상황에서 예언자들과 그들의 역할 사이에는 상호연관 관계가 이루어진다. 즉 문화적 위기는 예언자들을 배출하고 예언자들은 위기를 불러 일으킨다. 위기가 발생하고 있을 때에 예언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에 대하여 비판적인 안목을 표현하고 명료하게 선포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예언자는 자신들의 생각과 가치관, 규범과 희망을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는 사람들과 일치시킨다. 예언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문화적으로 혜택 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 안에 녹여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예언자는 단순히 억압받는 계층의 갈망을 분출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영을 분출한다. 이 현실들은 서로 수렴되고 일치되는 두 개의 다른 실재가 아니라 하나의 실재이다. 하느님의 영은 가난한 이들의 갈망을 더 심화하는 것이다. 땅에 뿌린 씨앗이 그 표면을 뚫고 나와 한낮의 빛 속에 싹을 틔우듯이 억압받는 이들 속에서 침묵 중에 일하시는 하느님의 영은 예언자의 말과 행동 속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제 부르시는 하느님 자신이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된다. 이 예언적 육화를 통하여 하느님만도 사람만도 아니며 사람 안의 하느님이요 하느님 안의 사람이 탄생한다. 예언자를 통하여 공동체는 인간운명의 궁극적인 수평 즉 정의와 사랑과 자유가 충만한 하느님의 공동체 안으로 뚫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공동체는 이상적인 세계질서라는 개념적인 모형으로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영웅적인 투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신화와 징표로서 표현되어야 한다.

옛 신화와 상징은 사용될 수 있으나 새로운 내용, 새로운 의미를 나타내야 하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신화와 상징이 형성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신화와 상징은 남성과 여성의 이미지를 함께 내포하기 위하여 전승되어 오는 감정과 사상의 총체와 어떤 유사성도 지녀야 할 것이다. 진정한 예언적 실천은 불의의 폐기와 생명의 보존 그리고 승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삶의 운동을 역동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종말론적인 희망의 예언직분은 문화위기의 부재, 전승과의 절연, 새로운 문화유포 수단의 부족 등 객관적 여건의 미성숙과, 예언자 쪽에서 민중과의 일치 실패나 행동의 추진 수단부족 등 주관적 여건이 형성되지 못하는 경우에 행동으로 신속하게 이어질 수 없기도 하다.

예언직분의 실천으로 형성되는 창조적인 활력이 변혁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그러한 활력은 비현실적이고 보상적인 배출구를 찾아 헤맬 것이다. 그러나 변혁을 위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예언자와 추종자들은 끊임없는 박해에 시달릴 것이다.

[원출처] <예수는 어떻게 살았나-그리스도교적 사회활동>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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