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화형당한 전투적 성인, 잔 다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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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화형당한 전투적 성인, 잔 다르크
  • 한상봉
  • 승인 2018.11.2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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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Lynch - Jeanne d'Arc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싶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 거사에 나갈 때마다 생각하오. 죽음의 무게에 대해. 그래서 정확히 쏘고 빨리 튀지... 양복을 입고 얼굴을 가리면 우린 얼굴도 이름도 없이 오직 의병이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꼭 필요하오. 할아버님껜 잔인하나 그렇게 환하게 뜨거웠다가 지려 하오. 불꽃으로. 죽는 것은 두려우나 난 그리 선택했소.”

청명한 하늘아래 차가운 바람이 벌써 옷깃을 스친다. 가을이다. 죽음을 원하는 이는 없으나 ‘의’를 위해 죽어야 했던 이들이 있었다. 의병이다. TV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일본군 모리 다카시 대좌가 묻는다. “조선은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았어요. 민초들이 그때마다 나라를 구하겠다고 목숨을 내놓으니까. 임진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을미년에 의병이 됐죠. 을미년의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뿐인가, 갑오년 동학꾼들이 광복군이 되고, 4.19와 5.18에 일어난 이들이 광화문에서 촛불이 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죽었지만 불씨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진 초이가 애신에게 애잔한 눈빛으로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내 기억 속 사대부 연인들은 다들 그리 살던데.”라고 묻자, 애신은 꽃은 꽃이지만 ‘불꽃’이 되려고 한다고, 그리 선택했다고 말한다. 이완익 같은 버러지 같은 매국노는 아예 관심도 없다. 오히려 돈이 되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낭인 구동매의 혼란이 애처롭다. 낭인들처럼 의병들은 칼날이 목줄기에 닿아도 의연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낭인과 의병에게는 이유가 다른 의연함이 있었고, 구동매의 혼란은 ‘내게 해 준 것 하나도 없는’ 나라에 대한 의병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받은 게 없어도 목숨을 바치는 것은, 사실 ‘나라’ 때문이 아니라, 그 나라에 사는 ‘백성들’ 때문이다.

백년전쟁으로 황폐화 된 프랑스를 영국의 침략에서 구출한 잔 다르크 역시 “꽃으로 살고 싶었으나 불꽃으로” 살고, “죽는 것은 두려우나 그리 선택”한 여성이었다. <잔 다르크>(한길사, 1998)에서 헤르베르트 네테는 “잔은 자기가 속한 땅을 사랑하고 프랑스를 체화한다고 여겼던 왕세자를 연민하였기 때문에 길을 서둘렀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니, 그저 종교심과 애국심을 섞어서 ‘민족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것은 잔 다르크를 오해하는 것이다.

그의 투쟁은 사실 루앙에서 재판을 받는 동안 확연히 드러나는데, 그는 국가주의자도 아니고, 맹목적인 가톨릭 교인도 아니었다. 그를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 땅에 살았던 백성들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잔 다르크 자신이 고난 받는 그 백성 가운데 하나였고, 위태로운 ‘처녀’ 가운데 하나였다. ‘처녀’란 잔의 실제이면서, 동시에 언제든 침범당할 수 있는 백성들의 상태를 이르는 은유라고 보아도 좋다. 재판기록에 보면, “피고가 처녀성을 잃으면 행운을 잃고 음성들이 더 이상 돕지 않으리라고 계시하시던가?” 묻는 판사의 질문에 “그런 계시는 받은 적 없다.”고 잘라 말한다.

 

Eugene Thirion, Joan of Arc, 1876

소명: 잔 다르크, 갑옷을 입다

잔 다르크(Jeanne d'Arc, 1412-1431)는 독일에 접한 프랑스 북동부 로렌 지방(Lorraine)의 마스 강변에 자리한 작은 마을, 동레미에서 주님 공현 대축일인 1월 16일에 태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 자크 다르크는 상파뉴 출신으로 방목지가 딸린 작은 농장을 갖고 있었고, 마을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잔은 집안 일을 돕고, 가축에게 꼴을 먹이거나 양을 돌보면서 자랐다. 영국인들은 나중에 심문과정에서 잔을 ‘농가 처녀’ 또는 ‘양치기 처녀’라고 낮추어 불렀다. 잔은 독실했던 어머니 이사벨에게서 주님의 기도와 아베마리아와 신앙고백을 배웠다면서 “어머니만이 내 신앙의 지도자였다.”고 고백한다. 동네 사람들은 잔을 “부지런하고 겸손하고 자애롭고 경건했다”고 증언했다.

잔 다르크가 역사 무대에 등장한 것은 백년전쟁(1339-1453) 때였다. 영국군은 프랑스 내 부르고뉴파와 손잡고 1415년 노르망디 전체를 정복했다. 이어 파리를 점령하고 루아르 지역까지 진격했으며, 1428년 10월 루아르 남부지역의 마지막 보루인 오를레앙을 포위하였다. 프랑스 제후들은 왕세자 샤를 7세를 왕으로 추대해 영국군대에 맞서고 있었으나 전세가 불리하기만 했다. 잔의 나이 열여섯, 열일곱 때의 일이었다.

로렌은 전쟁과 내분, 강도질과 노략질, 방화로 혼란스러웠고, 주민들은 보호받을 방법이 없었다. 주민들은 야간 경보와 종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야 했다. 때로는 영국∙보르고뉴 연합군의 습격을 피해 뇌샤토 요새까지 피신해야 했다. 피신처에서 돌아오면 마을은 쑥밭이 되고, 가축은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없었다. 이 고난을 멈추려면, 프랑스 국왕이 자기 나라를 되찾는 방법밖에 없다고 잔 다르크는 확신했다.

잔 다르크의 고백에 따르면, 그가 오를레앙으로 달려간 것은 순전히 “나를 이끄시는 음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잔은 “나는 말을 타거나 전쟁을 할 줄 모르는 힘없는 소녀일 뿐”이라고 대꾸하였으나, 그 음성은 보쿨뢰르 성채의 사령관 보드리쿠르를 찾아가면 군대를 내어줄 것이며, 이들이 오를레앙의 점령군을 몰아내리라고 예언했다.

잔 다르크가 “하느님이 원하신다.”면서 처음 보쿨뢰르 성채에 들어섰을 때 한 말은 <미스터 션샤인>의 고애신을 빼박았다.

“오로지 나만이 프랑스 왕을 도울 수 있소.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가련한 우리 어머니 옆에 앉아 물레질하는 게 낫소. 여기는 내가 있을 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오. 어쨌든 나는 가야 하오. 일해야 하오. 행동하기를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이오.”

잔 다르크가 시농에서 왕을 만나, 하느님이 그에게 맡긴 소임은 두 가지라 했다. 첫째는 오를레앙을 해방하는 일이고, 둘째는 왕세자를 모시고 랭스로 가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즉위하게 하는 일이다. 시농에서 그는 고위성직자들과 법학자와 왕정위원회의 청문을 받아야 했다. ‘양치기 처녀’라고 자신을 소개한 잔에게 몇 주 동안 지루하고 끝없는 질문이 던져졌으며, 잔은 이런 태도에 격분했다. 그녀가 귀족신분이고 남자였다면 이런 과정은 상당 부분 생략되었을 것이다. 하느님이 잔더러 프랑스를 구하라고 위임하셨다면 전사는 왜 필요한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잔의 답변은 명쾌하다. “전사들은 싸우고 하느님은 그들에게 승리를 부여하신다.”

잔의 답변은 그리 얌전하지 않고, 한심한 질문에 공격적이며, 양치기의 지혜가 귀족들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잔이 들었다는 음성은 어디 말이더냐는 질문도 나왔다. “귀하들이 쓰시는 말씀보다 아름다운 언어였소.” 하느님을 믿느냐는 질문에 “그렇소! 귀하들보다 더욱더 깊이 사모하오!” 이런 잔이 신학교수에게 종이와 잉크가 있는지 묻고, “나는 A도 B도 모른다.”면서 ‘영국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구술하도록 했다. 프랑스의 비옥한 토지를 돌려주지 않으면 하늘의 군주께서 너희를 모두 쫓아버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잔 다르크의 자신에 찬 확고한 답변은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잔 다르크가 하느님이 보낸 예언자요 투사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Entrée de Jeanne d’Arc à Orléans by Jean-Jacques Scherrer

투쟁: 오를레앙의 수복과 왕의 대관식

잔 다르크는 하얀 갑옷을 입고 백합 무늬로 덮힌 휘장과 칼을 손에 쥐었다. 잔이 군대의 지휘권을 지닌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존재가 군대의 명분과 사기를 북돋았다. 사병들은 잔을 믿고 따랐으며, 잔이 내보이는 승리의 확신에 고무되었다. 그가 오를레앙에 들어섰을 때 주민들은 하느님의 천사를 맞는 품이었고, 주변에 몰려들어 그가 탄 말의 말굽이라도 만져보려 하였다. 그러다가 횃불 하나가 인파에 밀리는 바람에, 백합 휘장에 불이 붙었다. 잔은 신속하고 침착하게 불을 끄고 놀란 말을 달랬다. 감탄하는 군중들에겐 그런 모습도 기적 같았다. 잔의 군대는 주저하지 않고 삽시간에 생루 요새와 투렐 요새를 공격해서 탈환했다. 잔과 프랑스 군대의 기세에 눌린 영국군은 달아나기에 바빴고, 잔은 도주한 적을 계속 쫓지는 않았다.

오를레앙에 온지 겨우 열흘 만에 다시 길을 떠나 자르고를 공략했다. 주춤거리는 프랑스군을 향해 잔은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확신이 없었다면 난 이 위험한 곳에 나를 던지지 않고 양을 치러 집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였다. 공격은 개시되고 자르고는 함락되었다. 영국 병사들은 용기와 자신감이 무너졌고, 죽은 이들을 보고 잔은 울었다. 이때 잔을 괴롭힌 것은 오히려 부상당한 포로에 대한 프랑스군의 잔인성이었다. 잔은 말에서 뛰어내려 죽어가는 영국군 포로의 머리를 무릎에 끌어당기며 위로했다. 파테 전투에서는 사령관 존 톨벗 경도 포로로 잡았다.

이처럼 오를레앙 전역이 수복되자, 잔 다르크는 곧바로 왕의 즉위식을 위해 랭스로 달려갔다. 겁먹은 랭스는 스스로 성문을 열고 잔의 군대를 맞이했다. 1429년 7월 16일 랭스의 대성당에서 샤를 7세는 왕으로 선포되었으며, 잔은 대관식 내내 깃발을 들고 제단 옆에 서 있었다. 왕은 이날 잔 다르크의 아버지를 만나 그를 비롯한 동레미의 모든 농부들에게 각종 조세를 영원히 면제하리라고 약속했다. 거리 곳곳에는 인파가 몰려, 어떤 여인들은 기도서와 성화를 들고 나와 잔이 한 번이라도 손을 대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잔은 웃으며 “자기 손으로 쓰다듬으세요. 여러분들 손이나 내 손이나 마찬가지인 걸요.” 하였다.

그러나 랭스에 이은 파리 공격은 불길한 징조로 시작되었다. 전투에서 적이 쏜 화살이 잔의 갑옷을 뚫고 정강이에 박혔다. 또 하나의 화살이 날아와 잔의 깃발을 든 젊은 기사의 미간을 맞혔고, 잔의 하얀 깃발은 바닥에 떨어졌다. 샤를 왕은 부르고뉴와 평화협정을 맺는데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잔은 계속 싸웠으며, 결국 콩피에뉴 전투에서 잔 다르크는 부르고뉴 군대에게 포로로 잡혔다. 1430년 5월 23일 저녁 여섯 시쯤이었다. 이후 잔은 루앙에서 이듬해 1월 9일 종교재판을 시작해 5월 30일 화형 당할 때까지 6개월간 사실상 전투보다 감동적인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Joan of Arc (1879) by Jules-Eugene Lenepveu

종교재판: 성직자보다 깊은 신앙, 학자보다 깊은 지혜

잔 다르크가 잡히자, 영국에 충성하는 동조세력인 파리대학은 “파리대학 박사들과 석사들을 비롯한 여러 자문위원들의 조언과 도움이 보장되는 터이니 이들의 도움을 받아 마녀재판을 수행하게 하라.”고 요청했다. 영국인들은 ‘마녀이며 이단자’의 불운을 기뻐했으나, 프랑스 사람들은 슬픔과 경악에 잠겼다. 잔을 자유롭게 해달라는 청원미사가 이 도시 저 도시에서 봉헌되었고, 아군포로로 있는 영국군 사령관 톨벗과 교환 협상에 나서라는 요구도 있었지만 왕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르고뉴의 필리프 공작은 영국군과 넉 달 동안 흥정해서 결국 1만 프랑의 몸값을 받고 잔 다르크를 영국군에게 넘겨주었다.

그해 12월 루앙에 도착한 잔은 브뢰이성의 탑에 갇혔고, 영국 어전회의는 “미신과 혹세무민, 그리고 위대하신 하느님을 여러모로 거스른 죄를 묻도록” 철저히 영국 편에 섰던 보베의 주교 피에르 코숑에게 재판권을 위임했다. 이미 정치적 판단은 내려졌고, 재판부는 잔을 ‘이단자’로 지목할 꼬투리만 찾으면 충분했다. 코숑 주교는 파리대학 교수들과 루앙 교구의 주교, 수도자, 성직자들을 포함해 60명의 배석판사를 세웠다. 그중에 노르망디 출신의 장 로이에 신부는 잔에게 법률후견인이 없다는 이유로 질책하다가 죽을 뻔했고, 우프빌 석사는 잔을 옹호하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재판의 독립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변증법을 훈련한 명망 있는 학자들 60명이 다른 한편 배운 것 없고 세상에 홀로 선 열아홉 살의 시골처녀를 상대로 심문에 나섰다.

심문 전에 자료수집차 잔의 고향으로 파견되었던 공증인 니콜라 바이이는 코숑 주교에게 “그녀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들을 수 없었다”고 보고해 욕을 먹었다. 첫 번째 공개재판에서 잔은 몸에 묶인 쇠사슬과 족쇄를 벗겨달라고 했다. 쿄숑은 잔이 여러 번 감옥에서 탈출을 시도했다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그때 잔은 이렇게 응수했다. “탈출하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오. 지금도 탈출하고 싶소. 왜냐하면 탈출한다는 것은 갇힌 자라면 당연히 찾을 권리이기 때문이오.” 그후로 공개재판은 다섯 번 더 진행되었으나, 재판관들은 잔의 죄를 찾아낼 수 없어서 이러저리 돌려가며 유도심문을 거듭했다. 말을 가로채거나 답변 중에 다른 질문이 던져지면, 잔은 “고귀한 어른들이여, 하나하나 차례차례로 하시오!” 라든지 “그 문제는 벌써 답변하였소. 저 서기장에게 물어보시오!”하며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들은 교묘하게 질문했고, 잔은 맑은 정신으로 대답했다. “네가 은총아래 있다고 확신하는가?” 묻자 잔은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하느님이 도우셔서 은총의 그늘 아래로 부르시길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이미 은총 아래 있다면 하느님이 붙들어 주실 거요. 아예 죄악 중에 있었더라면 음성들이 내게 오진 않았을 거요.” 심문이 예상을 빗나가는 결과를 낳자, 재판관들은 호기심이 낳은 엉뚱한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나 잔은 이 모든 질문을 역질문으로 통쾌하게 날려버린다.

“성 미카엘에게 털이 있더냐?”
“왜 밀어버리기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벌거벗었던가?”
“하느님이 그에게 옷도 못 입힐 정도로 가난하다고 생각하는가?”
“성 마르그리트는 영어로 말하던가?”
“그가 영국인 편도 아닌데 어찌 영어를 쓰리라고 생각하시오?”

 

fairytalesandfrills: Joan of Arc statue

선택: 교회에 대한 복종과 하느님께 대한 복종

잔 다르크는 심문 내내 “음성을 향해 기도하며 오로지 내 영혼의 구원을 간절히 구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명령을 내린 음성은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임을 확신했다. “그리스도를 믿고 하느님이 우리를 지옥의 고통에서 해방하신 것을 믿는 것처럼, 그 사실을 확신한다.”고 했다. 깃발과 칼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지 묻자, “칼보다 깃발이 훨씬 더 좋소. 난 직접 깃발을 들었소. 적이 공격해 올 때 사람 죽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오.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은 없소.”라고 답했다.

재판관들은 내내 잔이 남자옷을 입고 있는 사실이 퍽 불쾌했다. 당시 가치관에 따르면 남장은 교회의 규칙을 거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잔은 “[옷보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일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라 말한다. 결국 보베의 주교 코숑은 재판에서 별 소득을 올리지 못했다. 판사들은 잔이 이단이나 마법사, 마녀라는 것을 딱 부러지게 증명할 수 없었다.

잔의 감방에서 비밀리에 진행된 최종 심문에서 판사가 마지막으로 연거푸 질문한 것은 “피고가 행한 모든 일에 대해 우리들의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가 내리는 결정에 승복하겠는가?”였다. 잔의 대답은 모호했기에 현명했다. “나를 보내신 하느님과 성처녀 마리아와 낙원에 사는 모든 성인들의 뜻에 복종하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오류를 범하지 않는 지상교회에 복종하겠는지 물었다. 잔은 지상교회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와 낙원에 사는 성인들과 그리고 높은 곳에서 승리하는 천상교회가 나를 프랑스 왕에게 보냈소. 내가 이룬 모든 행위와 내가 앞으로 이룰 행위는 승리하는 그 천상교회에 바쳐지는 것이니 지상교회에 승복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지금 답변할 게 아니오.”

지상교회가 내리는 판결에 승복할 것인지 같은 질문이 재차 삼차 거듭되었다. 잔의 답변은 교회에 대한 충성에 앞서 하느님께 대한 충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세상 누구도 우리 주님이 명하신 일과 명하실 일을 못 하도록 나를 훼방 놓을 수 없소. 하느님이 맡긴 사명에 어긋나는 일을 하라고 교회가 요구한다면 세상 전부를 준다 해도 거절하리다.”

영국 편들이 득실거리는 재판정에서 “하느님이 영국 사람들을 미워하는지” 묻는 판사에게 행한 잔 다르크의 최후진술은 이러하다.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하느님이 영국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프랑스 땅에서 죽지 않으면 쫓겨나리라는 것과 하느님이 프랑스 사람들로 하여금 영국 사람들을 누르고 승리하게 하시리라는 것은 아오.”

영국 왕은 당연히 잔을 화형에 처하고 싶어 했다. 급기야 5월 29일 피에르 코숑과 42명의 다른 배석판사가 최종판결을 내렸다. 교회에서 축출된 이단자를 세상 권력에 넘겨 화형에 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잔은 “주교님, 주교님이 나를 죽이시는군요. ... 하느님 앞에서 문책 받게 될 거요.”라며 반항했다. 얼마 후 잔 다르크는 마지막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했으며,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은 울었다.

5월 30일 아침 아홉시 경 영국군들은 잔 다르크를 루앙의 옛 장터에 설치된 처형장으로 끌고 갔다. 이때 코숑 주교는 “잔은 이교의 사탄이 스며든 신체 부위와 같아 다른 부위에 독성이 퍼지기 전에 교회라는 몸체로부터 끊어내야 한다.”는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잔은 십자가를 가슴에 얹고 자신에게 해악을 끼친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고 빌며, 하느님께 영혼을 의탁했다. 그의 뼛가루는 센 강에 뿌려졌다.

잔이 죽고 5년이 지나서 1436년 샤를 7세가 파리를 수복하고, 1449년 영국군을 몰아내고 루앙에 입성하면서 1455년부터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 잔 다르크에 대한 복권재판이 열렸다. 코숑 주교 등은 이미 사망한 뒤였고, 종교재판에 참여했던 다른 이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기억나지 않는다.”며 초라하게 발뺌하는데 급급했다.

1456년 7월 7일 루앙대교구는 판결문에서 “지난 번 재판과 판결은 ... 누가 보아도 분명한 오류를 범했기에 ... 전에도 효력이 없었고 앞으로도 효력이 없다.”며 무효를 선언했다. 그러나 바티칸은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에 대해 수백 년간 침묵을 지켰으며, 오를레앙 사람들만이 잔을 추모하며 기억을 생생하게 다듬었다. 결국 1909년에야 교황 비오 10세가 잔을 복자품에 올렸고, 1920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토 15세가 그를 시성했다.

 

Joan of Arc (1873), Henri Pierre Hippolyte Dubois

거룩한 주님의 종, 잔 다르크

잔 다르크의 평전을 쓴 헤르베르트 네테는 “영웅의 모습에는 의심할 나위 없이 그 존재의 특성, 즉 연민하는 마음, 너그러운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잇기 마련”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승리를 위해 영국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지만, 영국 군인 개인에게는 여지없이 가엾은 마음을 느끼고, 그들 역시 하느님 백성임을 잊지 않았던 잔 다르크. 그는 하느님의 음성에 따라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분투했다.

네테의 전언대로 “전투에서는 언제나 선봉이었고, 군대가 안전하게 퇴각해야 할 때에는 언제나 맨 마지막에 후퇴했다.” 결국 이 때문에 성채로 제때에 퇴각하지 못해 영국군에게 잡혀서, 종교재판으로 포장된 정치재판으로 죽임을 당했다. 잔이 들었던 ‘음성’은 사실상 하느님의 음성이면서 전쟁으로 고통 받던 프랑스 민중의 ‘살려 달라’는 외마디이기도 했다. 그가 군 지휘관이나 왕보다 민중에게서 더 사랑받은 이유이며, 오를레앙의 전설로 남은 이유다.

네테는 잔을 두고 ‘헌신적 고귀함’이라 했다. 잔에게서 이기심은 찾아볼 수 없다. 시농의 왕국에서나 다른 어디서도 최소한의 보상도 바라지 않았고, 누리지도 않았다. 자신을 신격화 하는 행위는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적을 이루는 여인으로 여겨 추종자들이 그의 말발굽이라도 만지려고 다가오면 언짢아하면서 이를 물리쳤다. 무엇보다 잔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그리스도교 교의의 요청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았다. 다른 성인들처럼 고독 속에 침잠해 살지도 않았다.

잔은 ‘전투 성녀’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현장으로 나갔으며, 거기서 승리하였으나, 이사야 예언서의 ‘주님의 종’처럼 어느 성인들보다 더 고통스럽게 죽었다. 로마제국 등 정치권력에 의해 순교한 성인은 많았지만, 교회의 종교재판으로 화형당한 성인은 잔 다르크가 유일할 것이다. 시인 백석이 말했던가.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백석, 흰 바람 벽이 있어) 

[출처] <가톨릭평론> 2018년 10-11월호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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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ifer76 2018-12-11 07:22:24
고맙습니다....!

Vic 2021-01-06 09:07:25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