밧세바, 낭군도 정조도 지키지 못한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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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세바, 낭군도 정조도 지키지 못한 슬픔
  • 한상봉
  • 승인 2018.11.1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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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조연들-4

무력한 여인의 삶이란 게 이런 것인가요? 저는 한번도 제 뜻대로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늘 남자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들에게 모든 결정을 맡긴 채 살아왔어요. 사실 제게 어떤 생각이 있다한들 그 이야기를 성의껏 들어줄 남자도 없었는지 모르지요.

헷 족속에 속했던 제 남편 우리야는 그야말로 전사(戰士) 기질이 뚜렷한 사내였고, 저는 늘 뒷전이었죠.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남편은 별로 집에 돌아올 틈이 없었답니다. 그 사람은 강직한 사람이었고 공적인 임무가 더 중요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여자들이란 ‘사랑’이 더 필요한 법이지요.

사내들이 전쟁을 하는 동안 여자들은 사랑을 생각합니다. 만약 여자들에게 공적 임무를 온전히 맡긴다면 아마 전쟁이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을 나눌 틈도 부족한데 왜 남과 다투겠어요. 사랑만으로 충분한데 뭘 더 바라겠어요.

저는 우리야를 사랑했지만, 정작 그가 필요할 때 제 낭군은 제 곁에 계시지 않았답니다. 그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 사이에 제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고, 그러니 그를 원망할 밖에 다른 도리가 있을까요? 그날 밤, 사령을 보내 저를 궁전으로 불러들인 것은 지존(至尊)이신 왕 다윗이었고, 그분을 거부할 힘이 제게는 없었던 거지요. 저는 이방인 출신 용병(傭兵)의 아내였을 뿐이니까요.

 

Bethsabée, by Jean-Léon Gérôme

하필이면 그분이 궁전 옥상을 거닐 때 제가 목욕을 하게 되었을까요? 저를 예쁘게 보아준 것은 우리야 만이 아니었지만, 누구나 저를 오라 가라 명령할 수는 없었겠지요. 왕은 힘으로 저를 범했고, 저는 힘없이 그분의 아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제 몸에 태기가 느껴지면서 당황한 저는 누구에게도 감히 하소연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다윗 왕에게는 알려야 했는데, 그분이 문제의 당사자였기 때문입니다.

급한 마음에 다윗왕은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불러들였어요. 서둘러 그를 제 침소에 들게 하려던 것이지요. 제 몸에 깃든 아기가 우리야의 아이인 것처럼 꾸미려고 말입니다. 첫날은 술상까지 딸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대궐 문간에서 근위병들과 함께 잤지요. 둘째 날도 그러했고, 셋째 날에는 아예 다윗 왕이 급한 마음에 자신의 식탁에서 제 낭군 우리야를 술에 흠뻑 취하게 만들어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날도 우리야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근위병들과 함께 밤을 보냈습니다.

예전처럼 더 이상 군대와 더불어 생사고락을 나누지 않고 궁전에 남아 있던 왕에게 우리야는 자신이 집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고 합니다. “지금 온 이스라엘과 유다군이 야영 중입니다. 법궤도 거기에 있습니다. 제 상관 요압 장군이나 임금님의 부하들도 들판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만 집에 가서 편히 쉬며 먹고 마시고 아내와 더불어 밤을 지내다니,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제 낭군 우리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왕이었지만 우리야는 전사였고, 그는 과연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요, 히브리인이 아니었지만 진짜 히브리 사람처럼 살았던 것이지요. 그러나 다윗 왕은 자신의 계책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깨닫고, 즉시 요압 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지요. “우리야를 가장 전투가 심한 곳에 앞세워 내보내고 너희는 뒤로 물러나서 그를 맞아죽게 하여라.”

이런 편지를 전쟁터로 돌아가는 우리야의 인편에 붙여서 요압 장군에게 보냈다는 사실은 나중에 소문으로 알아낸 것이지만, 참 경악할만한 일이지요. 이건 절대로 제가 원한 게 아니었어요. 저는 무력한 여인이었고, 갈피를 잡지 못했을 뿐이었어요. 만약 제가 좀더 현명한 여인이었다면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았을까요? 어쩌면 저는 무력한 것이 아니라 무기력한 사람이 아니었나 지금 와서 생각해 봅니다.

누구와도 맞서지 못하고 평생 남자에게 순종하는 법만 배웠던 저였습니다. 우리야의 죽음에 대한 아픔이 채 가시기 전에 다윗은 법으로 정해진 애도기간이 끝나자 곧바로 저를 궁으로 맞아들여 아내로 삼았지요. 이 일을 두고 예언자 나단이 야훼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윗왕의 범죄를 탄핵하였고, 결국 애꿎은 제 아기만 중병에 걸려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다윗 왕에게도 순종하였고, 다윗 왕을 빼닮은 둘째 아이인 솔로몬이 왕이 되기까지, 아들에게도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제 인생은 도대체 어디로 증발한 것일까요? 저는 많은 세월을 궁에서 살았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우리야에 대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그 후로 수없이 발생한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은 남자들의 일이었고, 저는 항상 주변에서 슬픔을 삭여야 했지요. 여인의 생애가 꼭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요?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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