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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선택예수와 사회정의-1
  • 죠지 쏘아레스 프랍후 신부
  • 승인 2018.11.05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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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사명의 사회적 배경

예수는 그 당시 가난과 억압의 사회적 상황에 어떻게 응답했는가? 로마 지배자들은 1년에 6백만 데나리온의 세금을 걷어갔고 유다의 엘리트 계층이 여기에 가담하고 있었던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오늘날 제3세계의 처지와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네 가문으로 구성된 사제귀족 계층은 매년 사제장을 선출하였고 성전세금과 봉헌제물 판매의 수입을 독점하고 있었다(마르 11,15-19).

또한 세속귀족 계층은 예루살렘의 상인들, 갈릴래아 같은 지역의 농지를 독점하고 있던 대지주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들 역시 교역과 대농으로 부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이 결과로 서민들은 점점 궁핍해지고 있었다. 과중한 시민세와 종교세로 인하여 농가부채는 점점 불어나 로마 이전 시기 팔레스타인의 전형적인 농가제도인 소-자작농들은 농촌을 떠나는 경우가 증가일로였으며 대신 대 부재지주들이 늘어났다(마르 12,1). 따라서 농민들은 농촌노동자나 소작농들, 실업 노동자들로 전락하였으며(마태 20,1-16), 산적이 되거나(루카 10,30), 젤로트파에 가담하여 로마에 대항하는 게릴라가 되기도 하였다(마르 15,7).

경제적으로 가난한 이들의 집단외에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이 또한 있었다. 이들은 종교적인 엘리트 계층(바리사이파 등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계층)에 의하여 철저하게 낙오자로 대우 받았다. 이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인간들’은 직업 때문에 정결 예식이 소용없는 이들(세리, 목자, 가죽쟁이 등), 흉한 질병을 앓는 이들(나병환자), 정신병 즉 악령에 사로잡힌 이들(마귀들린 자들), 율법을 모르는 이들(작은 자들), 윤리, 율법의 위반자들(죄인들)이었다.

 

사진출처=pixabay.com

성경의 가난한 이들

이러한 사람들 모두가 성경의 가난한 사람들을 이루고 있었다. 유다교 후기에 ‘가난’이라는 단어는 가끔 ‘마음이 가난한’(마태 5,3)이라는 종교적 차원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쓰여졌으나 본래 의미는 사회학적인 것이다.

‘가난한’ 이들은 사회학적으로 가난한 이들(루카 6,20)이며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소외, 정신적 질병과 신체적 장애 등 어떤 이유에서든지 능력과 가치가 상실된 사람들이었고 비인간화된 사람들이다.

이러한 의미로서 가난한 이들은 언제나 불의의 희생자들이다. 성경에 나타난 가난은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적인(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소외) 혹은 악마적인(질병과 마귀들림 등) 억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이스라엘인들은(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은) 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다. 이 땅에 대한 권리는 단순히 토지에 대해서 뿐 아니라, 자유와 평화, 공동체, 독립, 번영에 대한 권리를 상징한다. 다시 말하면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권리인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이러한 권리가 부족하게 되면 그는 불의하게 자신의 몫을 빼앗기는 것이며 억압받게 되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하느님의 선택

정의를 지키고 강한 자에 대항하여 약한 이들을 보호하는(시편 72,1-4 : 이사 11,4) 왕으로서 구약의 하느님은 항상 불의한 억압의 희생자인 가난한 이들의 처지를 옹호하는 분이다. 이집트의 억압으로부터 그의 백성을 구출하는 자(탈출 6,2-9)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야훼는 되풀이하여 무력한 이들 ‘과부와 고아와 피난민’(신명 10,17-18 :시편 68,5)을 보호하고 이 지상의 모든 억압받는 이들을 변호하는 그의 결단을 확인한다.

예수와 가난한 이들

하느님의 왕국을 선포하며(마르 1,14-15), 불의를 거부하고 인간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하는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전달하는 사자로서 예수는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 편에 서서 부자와 억압자들에 대항하며 당시의 착취적인 상황에 맞서고 있다.

예수의 선포는 필연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는 기쁜 소식’(루카 4,18; 7,22)이며 부자들에게는 ‘나쁜 소식’(루카 6,24-27)이었다. 그 소식은 모든 억압이 끝나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선포했으며 따라서 억압받는 이들이 해방되고 억압자가 권좌에서 물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2-53).

[원출처] <예수는 어떻게 살았나-그리스도교적 사회활동>
[번역문 출처] <참사람되어>, 2012년 8월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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