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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주교직을 노리는 야심가들을 조심하라.”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33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6월 29일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에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19개 나라에서 새로 임명된 대주교 34명에게 팔리움을 수여했다. 팔리움은 교황과 대주교의 직무와 권한을 상징하는 것으로, 제의 위에 걸치는 하얀 양털 띠다. 이날 교황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하느님의 계획이 작은 조각으로 나뉜 거대한 모자이크와 같다.”고 말하고, 이어 “팔리움은 분열의 상처를 지닌 교회가 일치의 길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항상 일깨워준다.”면서 로마 사도좌와 지역교회의 일치를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교회 주교들과 교황의 인격적 만남이 중요할 텐데, 통상 각 나라에 파견되어 있는 교황대사들은 일상적으로 지역교회와 로마 사도좌의 일치를 도모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여전히 주교 선출권을 교황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교회의 주교를 선출하는 데 교황대사의 태도와 견해가 절대적이라는 점은 교황대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확인해 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6월 21일 각 나라에 파견된 교황대사들과 교황사절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공석인 교구들의 필요를 살피고 교황이 적합한 주교 후보자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어 교황은 새로운 주교 후보자를 찾는 일은 “까다로운 임무”이며 “야심 있는 이들, 주교직을 노리는 이들을 조심하라.”고 당부하면서 “우리는 주교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을 원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기업 안에서 승진을 위한 경쟁이 치열한 것처럼, 교회 안에서도 고위 성직자가 되고 싶은 열망은 사제들에게 여전히 커다란 ‘유혹’이다. 교회법에서 어떻게 규정하든, 교회 직무가 ‘봉사’보다는 ‘권력’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교황은 주교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안에서 이루시는 계획들을 사랑과 인내로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자신이 바라는 주교는 “신자들 가까이 있는 사목자, 온유하고 인내심 있으며 자비로운 아버지요 형제”라고 말했다. 이어 주교는 ‘군주’로 군림하지 않고, 영적이며 실제적인 가난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심이 없고, 출세 지향적이거나 권력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가난의 영성’ 안에서 겸손하고 청빈한 인물이 주교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줄곧 교회 안의 ‘출세지상주의’를 비판해 왔다. 교황이 추기경 시절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대-라틴아메리카 신학교 학장인 랍비 아브라함 스코르카와 나눈 대담이 실려 있는 《천국과 지상》에서 교황은 “가톨릭교회에 일어난 한 가지 좋은 일은 교황령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1870년까지 교황이 다스리던 중부 이탈리아 지역을 빼앗기고 나서야 교황이 영주라기보다 순전한 종교지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은 지금도 교회가 “음모와 책략에 뒤엉켜 있다”고 하면서, 가톨릭교회의 주교나 사제들은 “자신이 기름부음을 받은 의미를 지키려면 바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경우에도, 서울대교구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당시에 최소한 2석 이상의 주교가 공석으로 남아 있어서 얼마간 논란이 인 적이 있었다. 물론 2013년 12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에 유경촌 신부와 가르멜수도회의 정순택 신부를 임명했지만, 그전까지는 주교에 대한 추가 임명을 두고 주한 교황청 대사의 의중에 관심이 쏠렸던 것이 사실이다. 보좌주교 임명에 현직 교구장 대주교의 입장이 가장 중요할 테지만, 그다음은 교황대사의 입김이 가장 짙을 수밖에 없다. 교황대사가 이른바 ‘주교 임명 제청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몇몇 사제들에게 서울대교구 중견사제들 명의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를 비난하는 편지가 발송된 적이 있었다. 그 편지 내용의 진위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란이 일어나는 현실 자체다. 이 편지에는 주로 몇몇 주교 후보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 가운데는 스캔들로 문제가 된 사제들도 있고, 어떤 사제는 교회 특권층과 모종의 거래가 진행되고 있다는 혐의도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가톨릭교회가 민주적 원칙에 따르지 않고, 교권의 비밀스러운 결정에 따라 주교를 임명하는 제도를 취하는 데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지역교회의 직무책임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교구장과 교황대사에게 그날따라 유독 성령이 듬뿍 내리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는 하급 사제들과 신자들의 처지는 옹색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지역교회의 주교 임명을 지역교회의 사정에 어두운 교황청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가톨릭교회가 유럽 중심에서 탈피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상황에서 교황의 주교임명제는 ‘교황군주제’를 연상시킬 뿐 그다지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 지역교회는 몇몇 현직 교구장 주변 인물과 교황대사의 천거에 의해 결정되다시피 한 인물을 자신들의 주교로 받아들여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대로, 주교 후보자가 ‘군주적 마인드’를 지니지 말아야 한다면, 교황대사와 교황 역시 ‘군주적 마인드’를 버려야 하며, 특별히 군주제적 관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지역교회의 주교 임명은 그 주교 후보자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 및 평신도들의 의견이 가장 잘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 위해 전직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국정원 게이트’ 같은 불법을 용인하는 것처럼, 교황대사뿐 아니라 현직 교구장이 줄 세우기 차원에서 주교들을 천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인사 권력의 집중은 그 권력을 둘러싼 온갖 추잡한 거래가 등장할 위험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좀 다른 경우이기는 해도, A.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에서 프란시스 치셤 신부는 교권 세력에게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고난과 궁핍 속에서 중국 선교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시골 본당의 사제로 늙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참 애달프면서도 아름다운 사제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신학교 동기생인 안셀름 밀리는 뛰어난 외모와 재빠른 눈치, 빼어난 언변과 사교 수완으로 우등생, 수석 보좌, 외방 전교회 참사, 주임신부, 주교 등의 출세 가도를 달리면서 치셤 신부를 그렇게 괴롭혔다. 불우한 치셤은 성공한 밀리에게 아마도 영적 열패감을 던져 준 유일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대로 이제는 주교를 선임하는 다른 잣대와 방법이 필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랍비인 아브라함 스코르카 교수와의 나눈 대담에서 “오늘날의 교회가 제왕교권설, 법률주의, 절대주의 시대에서 변화한 것처럼, 미래에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다른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 가톨릭일꾼 www.catholicworke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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