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 낯선 분] 관습적인 길에서 벗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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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 낯선 분] 관습적인 길에서 벗어나라
  • 송창현 신부
  • 승인 2018.10.28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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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율법 - 2

신약 성경의 복음서들에는 예수와 반대자들 사이의 갈등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갈등이란 개인이나 그룹들 사이에서 생기는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 가치들의 충돌이다. 결국 예수와 반대자들 사이의 갈등은 당시 유다이즘을 대표하던 그룹들인 율법 학자들, 바리사이들, 사두가이들, 헤로데 당원 등이 지향하고 실천했던 길들과 예수가 걸어간 길 사이의 충돌을 의미한다. 이러한 갈등을 통해 다른 길들과 구별되는 예수 길의 독특함이 잘 드러난다.

예수의 길은 마태 7,13-14에서 분명하게 표현된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예수는 좁은 문, 좁은 길을 생명에 이르는 길로 제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늘상 다니던 길, 오래전부터 관습적으로 다니는 길,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길이 넓은 길이라면, 좁은 길은 사람들이 덜 다닌 길, 대안적인 길, 잘 다니지 않은 길인 셈이다.

 

사진출처=pixabay.com

예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성전과 율법의 넓은 길, 관습적인 길, 늘 다니던 길이 아니라 예수 당신의 가치 선택을 대안적 길로 제시하였다. 예수님와의 친교(communion)와 새로운 공동체(community)의 형성이 인간 구원의 길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실천하였다. 그 길은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가로막는 일체의 경계들을 철폐하는 해방과 구원의 길, 새로운 가치와 질서가 실현되는 대안적 길이었다.

예수 당시의 유다인 그룹들 중에서 바리사이파와 에세네파는 종교 사상에 있어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율법에 관한 해석과 실천에서 서로 분리되었다. 안식일 규정과 관련하여 에세네파는 매우 엄격한 안식일 준수를 고수하였다. 에세네파의 이러한 태도는 바리사이파에 비해 훨씬 더 철저한 것이었다. 에세네파는 바리사이파가 모세의 율법을 수정한 것에 대하여 “쉬운 것만 찾는 사람들”(CD I 18)이라고 비판적으로 표현한다.

쿰란-에세네파의 문헌들 가운데 안식일에 대한 규정을 기록한 대표적인 것이 『다마스쿠스 문헌』(=CD)이다. 특히 CD X 14-XI 18에는 안식일에 대한 상세한 규정들이 제시된다.

“안식일에 짐승이 새끼를 낳도록 도와줘서는 안 된다. 만일 짐승이 우물이나 구덩이에 빠졌어도 안식일에 끌어내어서는 안 된다. 안식일에 이방인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재산이나 이윤 때문에 안식일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만일 살아있는 사람이 물구덩이에 빠지면 사다리나 밧줄이나 도구를 사용하여 끌어내어서는 안 된다.”(CD XI 13-14.16-17=4Q270 6 v 17-18.19-20=4Q271 5 i 8-9.10-11)

그런데 사실 율법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이웃의 짐승을 도와야 한다고 명령한다. “너희는 너희 동족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거든, 그것들을 모르는 체하지 말고 반드시 너희 동족을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신명 22,4)

쿰란 제4동굴에서 발견된 사본인 4Q265에 따르면, 안식일에 물에 빠진 사람을 끌어내기 위하여 옷을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옷은 안식일에 그 사용이 금지된 도구에 포함되지 않는다. “안식일에 물에 빠진 짐승을 끌어내지 마라. 그러나 만일 안식일에 사람이 물에 빠진다면, 그를 끌어내기 위하여 그의 옷을 내밀어라. 그런데 안[식일에 그를 끌어내기 위하여] 도구를 사용할 수는 없다.”(4Q265 6 5-8)

이 쿰란의 규정들에 따르면 짐승의 경우와 사람의 경우는 구별된다. 안식일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짐승을 우물이나 구덩이에서 끌어낼 수 없지만, 사람의 경우는 금지하고 있는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한 그를 끌어낼 수 있다. 이 사본의 규정들은 기원전 2세기 당시 제2성전 유다이즘의 매우 엄격한 율법 해석을 보여준다. 짐승에 대하여는 부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며, 사람에 대하여는 긍정적인 표현을 한다.

안식일과 관련하여 쿰란 사본의 에세네파와 신약성경 복음서의 예수는 정반대의 견해를 표명한다. 『다마스쿠스 문헌』에서는 안식일의 거룩함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다. 이에 반해 역사적 예수에게 있어서는 자비로운 행동과 동정심이 안식일 준수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요구된다. 이러한 예수의 관대한 태도는 안식일의 기적과 치유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생명과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건강을 안식일의 준수보다 더 우위에 둔다.

마태 12,11-12: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에게 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양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을 잡아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니 안식일에 좋은 일은 해도 된다.”

루카 13,15: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송창현 미카엘 신부
지곡성당 주임,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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