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푸스 데이에게 ‘나쁜 저녁’이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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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푸스 데이에게 ‘나쁜 저녁’이 오다
  • 한상봉
  • 승인 2018.10.2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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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31

예수회 출신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이 266대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세계교회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작 1773년 예수회를 해체시켰던 클레멘스 14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수도회 출신이지만, 역대 프란치스코 수도회 출신의 교황들이 창립자인 ‘프란치스코’를 교황 이름으로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베르골료 추기경은 예수회 창립자인 ‘이냐시오’를 교황 이름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프란치스코’를 교황 이름으로 채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대한 어떤 악감정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가난’과 ‘평화’와 ‘생태계 보호’라는 우리 시대의 징표로 ‘프란치스코’를 선택함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를 시작한 것이다.

흔히 ‘현대화’로 번역하는 아조르나멘토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함축하고 있는 말로 ‘쇄신과 적응’의 의미를 갖는다. 요한 23세 교황이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바깥의 신선한 공기를 교회 안에 가득 채우기 위해 창문을 열라.”고 했던 것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의회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시대의 징표’를 읽으면서 ‘복음화’를 위한 교회 개혁을 꾀하고 있다.

예수회원이 교황이 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문장에는 사목 모토 'miserando atque eligendo'(자비로이 부르시니)라고 적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선출 이후 문장을 만들면서, 1992년 주교품을 받을 때 만들었던 디자인을 기초로 했으며, 모토 역시 주교 시절의 ‘자비로이 부르시니’를 그대로 사용했다. 그런데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푸른색 바탕에 예수회와 예수회원의 상징이 새겨져 있다. 십자가의 후광으로 둘러싸인 금색 태양 안에 예수의 이름을 표시하는 ‘IHS’라는 문자가 있고, 그 아래에 십자가 상의 세 개의 못이 있다. 이것은 교황이 예수회원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교황이 예수회원이라는 점 때문에 무엇보다 지난 30년 동안 교황청의 지원 아래 영향력을 키워 온 오푸스 데이의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푸스 데이(Opus Dei)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비호 아래 정치력을 키워 왔으며 교황청 뿐 아니라 특별히 페루 등 라틴아메리카 교회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해 왔다. 이번 새 교황이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이었으며, 오푸스 데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한 예수회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 지역에서 오푸스 데이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커졌다.

오푸스 데이 성직자치단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오푸스 데이 성직자치단(Prelature of the Holy Cross and Opus Dei)’을 창설한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Josemaria Escriva)는 1975년 사망할 때까지 오푸스 데이를 교황청에 전격적으로 진입시키지 못했다. ‘일상의 거룩함’을 강조하는 오푸스 데이는 에스크리바가 999개의 격언을 모아 영적 안내서인 <길>을 쓸 때까지만 해도 매력적인 영성 운동으로 보였다. 그러나 에스크리바는 로마로 가면서 ‘바티칸의 게임의 법칙’을 배웠으며, 엄격하고 권력에 굶주린 관료주의를 낳았다.

에스크리바는 자신과 추종자들을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가톨릭교회 안의 ‘부패’와 싸우는 ‘기사’로 생각했기 때문에,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했다. 그래서 행정부와 산업계, 금융계, 언론계에 진출할 엘리트 집단을 형성하고자 열망했다. 1973년 오푸스 데이 동조자인 카레로 블랑코 수상이 암살될 때까지 오푸스 데이는 스페인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이었다. 스페인 정부의 각료와 은행장에 오푸스 데이 회원이 포진하고 있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2005년 9월 14일 베드로 대성전 남쪽 외벽에 새로 안치한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조각상을 축복하고 있다. 16.5피트(4.95m) 크기의 이 조각상은 베드로 대성전 외벽에 설치한 아홉번째 조각상이다. 오푸스데이 창립자 에스크리바 성인은 2002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교황청에 진입한 오푸스 데이,
에스크리바는 단시간에 시성되고...
 

요한 23세와 바오로 6세 교황은 오푸스 데이가 지역 주교들의 관할권을 벗어나 독자적인 세계적 관할권을 갖는 ‘면속구(免屬區)’로 승격되는 데 반대해 왔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이 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폴란드의 보이티야 추기경(요한 바오로 2세)은 1978년 요한 바오로 1세의 장례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에 와서 3년 전에 죽은 에스크리바의 유해가 안치된 지하 납골당에서 기도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오푸스 데이 동조자인 팔라치니 추기경을 시복시성성 장관으로 임명했고, 팔라치니 추기경은 에스크리바의 시성을 심사하는 최고 자문위원으로 에스크리바의 후계자인 폴틸리오를 임명했다. 결국 1982년 오푸스 데이는 면속구로 추인되었고, 교황은 직접 오푸스 데이 소속 사제들에게 서품을 주었다. 오푸스 데이 소속 사제인 오카리츠는 라칭거 추기경이 맡고 있는 신앙교리성의 최고 자문위원이 되었다.

오푸스 데이는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 그중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페루, 칠레에서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오푸스 데이 회원들은 미국 CIA와 더불어 칠레 아옌데 대통령을 실각시킨 군사 쿠데타를 지지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그중 한 명이었던 헤르난 쿠빌로스는 쿠데타의 주역인 피노체트 군사정권에서 외무부 장관이 되었다.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한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해방신학을 공인하고, 기초 공동체를 격려해 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CELAM)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교황의 주교 임명 독점권을 충분히 활용했으며, 오푸스 데이 소속 주교 등 보수적인 인물을 대거 라틴아메리카 교회에 이식했다. 다행히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해방운동을 지지했던 브라질의 아른스 추기경과 로샤이더 추기경 등은 해방신학자로 유명한 레오나르도 보프와 마찬가지로 프란치스코회 출신이었으며,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라틴아메리카 수도자연합(CLAR)’을 통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을 이어 갔다. 수도회는 회헌, 지도자 선출, 재정 조달 등에서 독립적일 뿐 아니라 창립자의 고유한 카리스마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교황청의 영향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선종한 지 채 30년도 되지 않은 에스크리바를 성인으로 선포했으며, 후임 교황인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5년 9월 14일에 베드로 대성전 남쪽 외벽에 성 호세마리아 에스크리바 조각상을 만들어 축복하기도 했다.

베네딕토 교황은 2012년 6월 25일 ‘바티리크스’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면서 교황청 국무원에 홍보·커뮤니케이션 수석 고문 직책을 신설하면서 미국의 주간지 <타임>과 <폭스뉴스>의 로마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그렉 버크(Greg Burke)를 고용했다. 그렉 버크는 교황청 대변인인 예수회의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와 별개로 교황청과 관련된 모든 언론과 출판물 등의 홍보 전략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그는 오푸스 데이에 속한 뉴머러리(numerary)이다. 뉴머러리는 독신 생활을 하는 오푸스 데이 평신도 정회원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저지한 오푸스 데이 한국진출

한국 천주교회에서도 서울대교구와 대전교구에 오푸스 데이가 진출해 있다. 오푸스 데이는 지난 1970년대에 한국 교회 안에 알려졌으나, 1986년 11월 17일부터 29일까지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에서 열린 강연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혜화동 강연회는 오푸스 데이 델 뽀르띠요 총장이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당시 혜화동성당 사목회장이었던 박정훈의 주선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박정훈은 1987년 이후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를 주도한 인물이다.

오푸스 데이는 1987년 초에 서울대교구장이던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해 허가 지원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거부당했으며, 이후 당시 청주교구장이던 정진석 주교가 1998년에 처음으로 오푸스 데이 활동을 청주교구에서 승인했다. 한편 정진석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이 되면서 다시 정진석 대주교는 구두로 서울대교구에서 오푸스 데이 활동을 인가했다. 그 후 대전교구의 유흥식 주교가 오푸스 데이를 승인했고, 서울대교구에서는 2011년 1월에 정진석 추기경이 공식적으로 오푸스 데이를 승인했다.

오푸스 데이에 대한 이제민 신부의 반응

서울대교구의 오푸스 데이 성직자치단의 승인과 관련해 마산교구의 이제민 신부(명례성지, 전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종교란 정형화된 틀을 깨고 인간이 자유롭게 사람과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야 하는데, 오늘날 교회는 오히려 자기의 틀을 더욱 강하게 만들면서 배타적이고 근본주의로 치닫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세상의 복음화는 세상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안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느끼게 해 주는 일이다. 그런데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조하면서 세상을 부정적인 시야로 보려고 하고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를 부정적으로 대할 때가 많다.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가르침(복음)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과 자기의 종교성에 대한 이런 오해는 종교를 세상과 동떨어진 게토로 만들 뿐 아니라 결국 종교의 타락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종교의 이름으로 종교를 타락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이 점에서 이번에 서울대교구가 오푸스 데이를 공식 승인한 것은 스스로 근본주의의 길을 택하여 종교의 이름으로 종교를 욕되게 하는 불행한 일이다.”

이제민 신부는 오푸스 데이가 가톨릭교회 안에서 자라는 근본주의적 경향을 가진 단체라면서, “이들은 신심을 교회 안에서만 이룰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민 신부는 “신심은 예수님을 향해 기도하는 것뿐 아니라 세속적 차원을 지니고 있으며, 세상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기도와 신심을 교회의 영역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 일로 보는 사고로는 세상의 복음화는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이제민 신부는 “오푸스 데이에 대한 공적인 승인을 통해 한국 교회가 더욱 보수화되고 정치와 종교를 갈라서 보려는 태도를 갖는데 탄력을 주지 않을까 걱정한다.”며 우려감을 표명했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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