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돕는 부부처럼, 어린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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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돕는 부부처럼, 어린이처럼
  • 서공석 신부
  • 승인 2018.10.22 2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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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경전 묵상-서공석 신부]

<그때에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그들이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마르 10,2-16)>

 

사진출처=pixabay.com

오늘 복음은 두 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결혼한 부부에 대한 이야기와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인은 신약성서가 전해 주는 예수님의 언행에서 하느님과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알아듣습니다. 오늘 두 개의 이야기가 모두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오늘의 첫째 이야기는 모세가 허락한 대로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으냐는 바리사이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모세가 남성들에게 준 특권이 아니라, 지켜야 하는 법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완고하기에 그 사실을 감안해 모세가 그 법을 제정해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법을 남성들에게 허락된 특권이라 생각하였고, 예수님은 그것이 남성들의 학대에서 여성들을 구출하는 수단으로 모세가 제정한 법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인류역사는 강자가 약자를 학대한 이야기로 꾸며져 있습니다. 인류역사가 여성의 인권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현대에도 여성을 학대하는 문화권은 아직 있습니다. 유엔이 발간한 세계 인권 현황을 보면, 세계 곳곳에서, 특히 중동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아직도 많은 여성이 여러 가지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에게 네 명까지의 아내가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나 남편의 뜻을 거역한 여성을 잔인하게 체벌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 바리사이가 거론하는 것은 신명기(24,1)가 전하는 법입니다. “아내가 남편의 눈 밖에 나면 남편은 이혼 증서를 써주고 그 여자를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는 법입니다. 철저한 남존여비(男尊女卑)에다 일부다처(一夫多妻)의 사회였습니다. 여성이 남편의 눈 밖에 나면, 그 여성은 학대당하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모세는 그런 여성을 남편의 학대에서 구출하기 위해 집에서 내어보내라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남성들은 그 법을 자기들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해석하였지만, 실제로 그 법은 남성의 학대에서 여성을 해방시켜 살리는 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창세기 2장의 창조 설화를 인용하면서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남편이 아내를 버리게 하여 약자인 여성을 구해내는 소극적 방법이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 하느님이 살아계셔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라는 말씀은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과 은혜로우심을 두 사람이 서로에게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관계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2장은 하느님이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갈비뼈는 심장을 보호하고 심장의 고동이 들리는 뼈입니다. 부부는 서로 심장의 고동을 들으면서 상대를 보호하고 위해주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창세기는 또한 여성은 남성을 ‘거들어 줄 짝’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들어 준다.’ 혹은 ‘돕는다.’는 말은 보조적 역할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하느님도 인간을 거들어 주고 도와주신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부부는 서로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곧 상대의 뜻을 존중하며, 거들고 도와서 상대를 살리는 노력을 하는 관계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돕고 살리는 일은 서로 상대의 존재를 은혜롭게 생각하고 자비롭게 행동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이 짝지어주셨기에’ 하느님이 두 사람 사이에 살아 계시게 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로우심이 두 사람 사이에 살아 있으면, 두 사람은 서로 헤어질 이유가 없습니다. 자비롭고 선하신 하느님은 인간을 짝지어주고, 함께 있어 행복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완고하여 미워하고, 서로 갈라집니다.

오늘 복음의 둘째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이 어린이를 데려와 예수님이 그들을 축복해 주실 것을 청하였고, 제자들은 그들을 막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행동을 언짢아하시고 어린이를 받아 안고 축복하시면서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어린이와 같이 겸손하라는 교훈으로 알아듣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어린이는 겸손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는 작고 약합니다. 어린이는 자신감을 갖지 않으며,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우고, 베풀어진 것을 받아들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런 자세, 곧 자신감을 갖지 않고,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알아들은 하느님을 배우고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분과 함께 있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말씀입니다.

남녀가 부부로 가정을 이루고 살 때, 두 사람 사이에 살아 있어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심장의 고동을 듣고, 상대를 거들어 주어 살리고 용서하면, 은혜로우신 하느님의 일이 두 사람 사이에 살아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린이와 같이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자신감을 갖지도 않습니다. 사람을 무시하지도 않고, 짓밟아서 불행하게 만들지도 않습니다. 함께 있는 배우자를 은혜로운 존재로 생각합니다.

가톨릭교회에는 ‘결혼의 불가해소(不可解消)법’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근거로 교회가 만든 법입니다. 결혼한 부부는 헤어질 수 없다는 법입니다. 부부가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재혼하면, 신앙생활에 장애가 있다고 말하는 법입니다. 그러나 그 법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 정신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인간 마음이 완고한 것을 감안한 모세는 법을 만들어 남성의 학대에서 여성을 구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라는 사실을 말씀하면서, 하느님을 의식하고 그분의 자비와 은혜로우심을 서로에게 실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결혼의 불가해소법’은 부부가 헤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에만 충실하고, 자비하신 하느님을 잊었습니다. 하느님이 사라지면, 완고하고 모진 인간의 마음만 남습니다. 혼배 조당 법도 그 모진 인간 마음의 산물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결혼했거나, 이혼했거나, 어른이거나 어린이거나 모두에게 하느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 분, 자비로운 분이라는 사실을 알립니다. 그 자비하신 하느님을 선포하고 그분의 일을 실천하는 그리스도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많은 상처를 받고 이혼한 사람, 그리고 새로운 배우자를 맞아 행복하게 살겠다는 사람에게도 자비하신 하느님은 살아계십니다. 교회는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 안에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살아있게 도와야 할 것입니다.

[출처] <맘울림>, 2018년 9월 통권 제43호

서공석 신부
부산교구 원로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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