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심판’ 아래서 선출된 개혁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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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심판’ 아래서 선출된 개혁교황
  • 한상봉
  • 승인 2018.10.1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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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30

가톨릭교회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만한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는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아침 추기경들이 성녀 마르타의 집(Domus Sanctae Marthae)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으로 절차에 들어갔다. 이 집은 콘클라베 기간 동안 추기경들이 머물 숙소였다.

전 세계의 추기경단은 67개국 207명이다. 그 가운데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과 한국 교회의 정진석 추기경 등 80세 이상의 추기경을 제외하면 2013년 추기경 선거인단은 50개 나라의 117명이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의 율리우스 다르마트마자 추기경은 건강 때문에 불참했고, 스코틀랜드의 케이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부적절한 성행위 때문에 공적 활동에 나설 수 없었다. 결국 115명의 추기경이 숙소에서 바티칸 궁 내 바오로 성당으로 이동했다.

이 성당에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십자가에 매달린 성 베드로’ 등 다소 음울한 프레스코화가 걸려 있었다. 그곳에서 추기경들은 살라 레지아 홀을 지나 시스틴 성당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이동하는 중에 성인호칭기도를 올리며 “주님 저희를 구하소서.”라고 읊조렸다. 그리고 오래된 성령찬미가인 ‘임하소서, 성령님(Veni, Creator Spiritus)’을 불렀다. 이윽고 시스틴 성당의 문이 닫히면서 콘클라베가 시작되었다.

 

사진출처=나무위키

교황을 선출하는 투표가 진행되는 시스틴 성당의 천장에는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가 그려져 있으며, 성당 제대 뒤에 전면으로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이 프레스코화는 이번 투표에서 특별한 빛을 내고 있었다. 미켈란젤로가 1525년부터 1541년까지 그린 걸작 ‘최후의 심판’ 앞에서 투표가 이루어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종교적 본성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미켈란젤로는 그 어떤 교리와 장식도 하느님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한창 나이 때 교황이 성당 천장에 금칠을 더 많이 하라고 명령하자 “교황 성하, 예전 사람들은 금으로 몸치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화가들이 그리는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라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호사스러움을 업신여겼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항상 흠모하던 시인 단테가 “네가 너 자신의 황제, 너 자신의 교황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세속과 교회 권위에 종속되지 않고 고독하게 은자처럼 자신의 길만을 따라 걸었다. 그가 활동했던 15세기는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악취가 흑사병처럼 번지던 때였는데, 이때 불같은 열정으로 그리스도교 윤리를 강조한 예언자가 나타났다. 도미니코회 수도자 사보나롤라(G. Savonarola, 1452∼1498)였다. 그는 사자와 같은 열정으로 형식화된 전례와 부패한 교회에 맞서 싸웠다.

사보나롤라는 성직자들 대부분이 그리스도교적 삶을 장려하기보다 파괴하는 데 적당한 사람들이라며, 그들이 진정한 하느님의 예배를 소멸시켰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성직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오늘 다시 로마에 오신다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을 사람들”이라며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음란한 교회’의 개혁을 호소했다. 그러나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이 예언자를 파문하고, 붙잡아 공공장소에서 교수형에 처한 뒤 시신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나 피렌체의 사보나롤라는 “사랑을 해치는 자가 바로 파문당한 자!”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미켈란젤로는 사보나롤라를 마음으로 지지했으며, 사보나롤라의 성직자 비판을 받아들이며 이런 시를 썼다.

“그들은 성작을 녹여 투구와 창을,
십자가와 못을 녹여 칼과 방패를 만들게 합니다!
오, 주님, 돈을 벌기 위해
당신의 피를 주전자에 담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로마에서는 당신의 인내도 지치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미켈란젤로는 사보나롤라를 통해 예언자를 발견했다. 그에게 예언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깨어나 일어선 사람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쳐 온 힘으로 백성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싸운 사람들”이었다.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는 분노하는 에제키엘과 얼음 같은 고독에 싸여 있는 예레미야를 그렸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예레미야는 자신이 예언한 재앙을 직접 체험해야 했다. 그는 아직 연기가 올라오고 있는 예루살렘의 폐허 한가운데 앉아서 오랜 세월 억누른 흥분과 서글픈 탄식을 토해 냈다. 예레미야는 종교적 우울로 인해 굽은 상체를 하고, 엇갈린 다리를 하고, 손으로 머리를 받치며 ‘단단한 고독’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시스틴 성당의 성화를 통해 성직자 교회에 예언이 절박함을 다시 환기시켰다. 예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백성들에게 절망한 예레미야의 심경으로, 미켈란젤로는 단테의 <신곡>에 따라서 ‘최후의 심판’을 그려 과거와 현재의 인류와 교회를 심판했다. 이 그림에서 수염이 없는 그리스도는 위협적인 몸짓으로 천둥 같은 심판을 거행한다. 말년에 미켈란젤로와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교회 개혁의 지지자 빅토리아 콜로나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 오신다. 첫 번째는 온유함 그 자체로 오신다. 어진 마음, 부드러움, 그리고 자비만을 드러낸다. 그분은 죄인과 약자들에게 평화의 빛, 그리고 은총을 주기 위해 오신다. 그분은 연민 때문에 어쩔 줄 몰라 하시며 겸허하시다. …… 그러나 두 번째로 오실 때는 무기를 들고 당신의 정의와 위엄, 위대하심과 전능하심을 보여 주신다. 그러면 더는 자비의 시간이 없으며 은총의 공간도 없다.”(발터 니그, <미켈란젤로 하느님을 보다>, 2012)

미켈란젤로는 단죄 받은 이들이 느끼는 극한의 두려움을 ‘최후의 심판’에서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교회를 액면 그대로 하느님 은총의 중개자로 예찬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처음에 그린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그가 교황이든 주교든 할 것 없이 모두가 벌거벗은 채 그리스도 앞에 노출되어 있다. 속내가 다 들여다보이는 모습이 당대의 성직자들을 불쾌하게 만들었고 반발을 일으켰다.

이 그림을 본 교황의 의전관이 “거룩한 장소에 상스럽게 온몸을 드러내는 나체가 웬 말이냐. 이것은 교황의 성당이 아니라 목욕탕이나 음식점에 어울릴 그림이다.”라며 흠을 잡았다. 화가 난 미켈란젤로는 의전관이 나가자마자 그를 지옥에 있는 미노스의 얼굴로 그려 넣었다. 심판의 날에는 옛날 아담이 나뭇잎으로 치부를 가린 것처럼 눈속임이 불가능하다. 그날에는 모든 존재가 벌거벗은 모습으로 하느님의 재판석 앞으로 나와야 한다고 미켈란젤로는 생각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 그림이 논란이 되어 훗날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벌거벗은 몸은 모두 옷으로 덧칠되었다.

 

그림으로 예언을 하던 미켈란젤로는 평생 은수자처럼 살면서 “최후의 심판 때 나는 넘어지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그날에 오른편에 서기 위해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고심했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에서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벗겨진 살가죽에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복음이 실종된 시대, 복음과 상관없는 교회에서, 이 끔찍한 자화상은 ‘나는 그리스도인인가?’ ‘지금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인가?’ 하고 시스틴 성당에서 여전히 묻고 있다.

그 자리에 추기경들은 향후 수십 년 동안 교회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모였다. 매튜 번슨은 <가톨릭뉴스 서비스>에 실린 네이피어 추기경의 당시 심경을 소개하고 있다.

“투표용지를 손에 들고 제단 앞으로 나아가 그것을 쥔 채 ‘나는 나의 판단을 심판하실 주 예수를 믿습니다. 내가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을 증언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이 가장 엄숙하고 두려웠습니다. 이때는 정말 감정과 신앙이 동시에 복받쳐 올랐습니다. 만약 내가 적절하지 못한 마음가짐으로 투표를 한다면 예수께서 나를 심판하시고 나를 벌하실 것이므로 매순간이 엄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하양인, 2013, 160쪽 재인용)

그리고 3월 13일 수요일 오후 7시 6분, 시스틴 성당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침내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 76세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주교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프란치스코처럼 제 몸과 언어로 교회를 개혁할 것이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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