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 바티칸을 구할 교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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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속 바티칸을 구할 교황은?
  • 한상봉
  • 승인 2018.10.07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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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29

교회의 심장은 그리스도뿐

“최근 몇 년 동안 교회는 기쁨과 빛의 순간들뿐만 아니라, 어려운 순간들도 함께해 왔으며 순례의 길도 함께 걸어왔습니다. 나는 갈릴래아 바다에서 배를 타고 있던 성 베드로와 똑같은 처지임을 느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맑은 날과 감미로운 미풍을 여러 날 주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다는 거칠어졌고, 교회 역사상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폭풍을 맞이했습니다. 그때는 주님께서 주무시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보수적이긴 해도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3년 2월 12일 사임 의사를 표명하고 교황직에서 떠나기 하루 전인 2월 27일 베드로 광장에서 20여만 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한 말이다. 그는 “그렇지만 주님께서 그 배에 계시고 배는 내 개인의 것이 아니므로, 배가 가라앉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배를 조종하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통해” 그 일을 하리라고 말했다.

2월 28일 베네딕토 교황은 바티칸 사도 궁 클레멘스 홀에서 바티칸의 교황청 사무국 직원들과 장관들, 그리고 144명의 추기경에게 일일이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미래의 교황에게 무조건적인 존경과 순명을 약속드린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면서 ‘주님의 종’ 로마노 과르디니((R. Guardini) 신부가 한 말을 인용했다.

“교회는 책상 위에 비치되거나 구축된 장치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실재입니다. 교회는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살아 있는 존재처럼 시간에 따라 변화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심장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진출처=pixabay.com

교황청 개혁을 위한 구원투수는?

영원한 도시, 바티칸에서는 수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들어 바티칸조폐소에서 발행한 베네딕토 16세 교황 사임 기념 동전과 우표 세트를 구입하려고 줄을 서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추기경단 의장인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3월 1일에 전 세계의 추기경들에게 로마로 모이라는 공문을 띄웠다. 이들은 3월 4일부터 바오로 6세 알현실과 주교 시노드 사무국에 모여 예비 콘클라베를 열고 교황 선출을 위한 투표 방식을 검토하고, 콘클라베 일정을 확정하며, 가톨릭교회의 현실에 대해서도 논의할 임무를 띠었다.

콘클라베 날짜가 3월 12일로 정해졌다. 그동안 추기경들은 성령의 뜻을 헤아리고, 교회의 상태를 진단하며, 후임 교황을 물색하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추기경들은 이 과정에서 서로 안면을 익히고, 인격을 확인하며, 상대방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추기경들이 가톨릭교회의 당면한 쟁점으로 삼았던 것은 교황청 개혁과 성추행으로 야기된 교회의 위기, 세계교회의 요청과 새로운 복음화였다.

바티칸은행 재무 비리

추기경들이 교황청 개혁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여긴 것은 바티칸 재무 비리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IOR’이라고 불리는 바티칸은행은 오랫동안 비리와 음모의 대상이었다. 로마 금융 담당 경찰이 은행의 운영 방식에서 심각한 비리를 발견함에 따라, 이탈리아 치안 판사는 바티칸은행이 이탈리아은행에 맡겨 놓은 2억 3천만 유로를 동결시켰다. 이 조치는 2011년 6월에 해제되었으나, 유럽연합 47개국의 돈세탁 감독 기관인 머니발(Moneyval) 위원회가 바티칸은행이 금융 체크리스트 핵심 조항 19개 중에서 9개만 통과했다면서 2012년 6월 10개 조항에 대한 비리 내용을 모아 보고서를 작성했다.

바티칸은 유럽 금융연합의 통제 시스템에 협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교회로서는 굴욕적인 일이었다. 이 보고서가 작성되기 직전인 2012년 5월, 은행 자체의 국제감시위원회는 바티칸은행의 은행장 에토레 고티 테데시를 파면했다. 2013년 2월 15일 바티칸은행의 새 은행장으로 임명된 에른스트 폰 프레이베르그의 첫 번째 임무는 은행 내부의 행정 부서를 재조직하고 실추된 교회 이미지를 개선하는 일었다. 게다가 교황의 개인 비서였던 파올로 가브리엘레가 교황의 개인 문서를 비롯해 민감한 바티칸 문서들을 대량 유출시킨 이른바 ‘바티리크스(VatiLeaks, 바티칸과 위키리크스의 합성어)’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바티칸은 금융 스캔들과 문서 도난 사건을 시작으로 부패와 동성애 사제들의 음모, 공갈과 협박이 난무한 곳이라는 선동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이 때문에 교황청 사무국과 기능을 완전히 개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추기경들 사이에 터져 나왔다. 당시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의장인 가나의 베드로 투르크슨 추기경은 요한 타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티칸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갱단이나 마피아가 있습니다. 이 돈이 바티칸을 시궁창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신뢰를 회복해야 합니다. 나는 베네딕토의 후계자가 될 자격에 이것을 최우선 조건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새로운 복음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모든 교황은 끊임없이 말보다는 증언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짐은 모든 일에 신뢰성과 성실함을 보이는 것입니다.” - 매튜 번슨, 《교황 프란치스코 그는 누구인가》

 

사진출처=pixabay.com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청 개혁을 위한 자문단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는지,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된 지 한 달 만인 4월 13일 교회 개혁의 신호탄으로 교황청 관료들이 아닌 전 세계에서 선정한 8명의 추기경으로 교황청 개혁을 위한 자문단부터 구성했다. 자문단은 바티칸 시국 행정 책임자인 주제페 베르텔로 추기경을 제외하면 모든 대륙에서 골고루 선정됐다.

당시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National Catholic Reporter)>는 자문단에 “수년간 교황청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 온” 추기경들이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톨릭교회에서 발생한 아동 성추행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응해 온 미국 보스턴 교구의 션 오말리 추기경과 독일 뮌헨 교구의 라인하드 막스 추기경도 자문단에 속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외에 자문단에 속한 추기경은 칠레 산티아고 교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에레주리스 오사 추기경, 인도 뭄바이 교구 오스왈드 그라시아스 추기경,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교구 로렌 몽센궈 파싱야 추기경, 호주 시드니 교구 조지 펠 추기경, 온두라스 테구시갈파 교구 오스카 안드레스 로드리게즈 마라디아가 추기경이다. 이 자문단은 바티칸은행을 비롯해 교황청 구조와 기능까지도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교황의 자문에 응한다.

아동성추행 문제에 대한 대책

한편 추기경들은 아동 성추행 문제 때문에 교회가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을 강하게 요청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사임 이전에 교황청 신앙교리성을 통해 2010년 7월 15일자로 아동 성추행 등 교회법의 위반 사안을 다루는 <더욱 중대한 범죄에 관한 규범(Norme de gravioribus delictis)>을 이미 발표한 상태였다.

이 규범에서는 아동 성추행뿐 아니라 사제의 아동 포르노물 이용까지도 “극히 중대한 범죄”로 규정했으며, 성추행 고발 시한 역시 피해 미성년자가 만 18세에 성인이 되고 난 후 10년에서 20년으로 연장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성추행도 아동 성추행과 똑같은 중죄로 단죄했다. 이에 따르면,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추기경 등 고위 성직자라 할지라도 죄상이 분명하고 중대한 경우 별도의 교회 재판 없이 바로 환속시키도록 교황에게 요청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신앙교리성에서 이 규범을 발표하기 몇 달 전인 그해 4월에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등의 책으로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교황의 영국 방문을 앞두고, 영국 경찰 당국에 ‘인간성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로 교황을 체포하라고 청원한 사건도 발생했다. 교황과 고위 성직자들이 미국 내에서 제기된 한 신부의 아동 성추행 혐의를 은폐하고 문제의 신부를 감쌌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10대 청소년 시절인 1965년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한 신부에게 여러 차례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과 변호인은 베네딕토 16세가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2년에 교황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교황청이 그 신부의 성직을 박탈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는 데 그친 책임을 물은 것이다. 소송을 맡은 하급 연방법원들이 성추행 사제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자 교황청은 주권국가인 바티칸이 지닌 면책특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중단해 달라고 대법원에 항소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2010년 6월 11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사제의 해 폐막 미사에서 “하느님과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절실하게 용서를 구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아동 성추행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아동 성추행 문제는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이후에도 가장 뜨거운 쟁점 가운데 하나였다. 2014년 1월 16일 유엔 아동권리위원회(CRC)가 사상 처음으로 교황청을 상대로 가톨릭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과 관련한 강도 높은 청문회를 실시했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인권최고대표(OHCHR) 청사에서 유엔 대사인 실바노 토마시 대주교와 바티칸에서 성추행 문제를 10년 넘게 조사해 온 찰스 스치클루나 주교 등 5명의 교황청 대표를 상대로 청문회를 벌였다.

유엔 아동인권위원회는 2월 5일 보고서를 통해 바티칸이 가톨릭계를 정화하겠다고 거듭 밝혔으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하면서, 성추행 혐의가 있거나 그렇게 알려진 성직자들의 명단을 공개하고 이들을 퇴출시킬 것을 요구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아동 성추행을 한 성직자를 다른 교구 또는 외국으로 전출시키는 바티칸의 정책이 많은 나라 어린이들을 성추행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바티칸은 낙태에 관한 교리를 변경하고 신학교에서 성교육을 강화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3월에 숀 패트릭 오말리 보스턴 대주교 등을 포함한 ‘교황청 아동 성추행 근절을 위한 대책위원회’ 창설 위원을 발표하고,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근절 및 피해자 지원에 나서는 것은 물론 성직자 행동 강령 정비 및 예비 성직자 심사 강화 등의 활동을 펼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5월 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고문방지위원회에서 “지난 2004년 이후 3,400여 건의 성직자 관련 아동 성폭행 및 성추행 사건이 보고됐으며, 848명의 성직 박탈 외에도 2,572명이 평생 속죄와 기도로 지내거나 공직 취임을 금지 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심각한 부담을 느끼고 교황직 사임을 결정하고 마지막 강론에서 “교회 역사상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폭풍을 맞이했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 세계인에게 이 시기만큼 가톨릭교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처] <행동하는 교황, 파파 프란치스코, 한상봉, 다섯수레, 2014

한상봉 이시도로
<가톨릭일꾼> 편집장
<도로시데이 영성센터>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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