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서운한 추석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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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서운한 추석 저녁
  • 조현옥
  • 승인 2018.09.27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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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현옥

어머니 혼자 지내는 부엌 한 켠에서
성서쓰기를 하던 흔적을 보았습니다.
어느결엔가 돋보기를 쓰셨지만 서툰 글씨는 여기저기서 드러납니다. 


에폿, 
을 '에쫏'으로,
어떤 때는 바르게 쓰고.


어머니의 글씨가 눈물겹습니다.
여섯살 나이에 친어머니가 화재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동생하나와 새어머니 슬하에 여러 동생 돌보며 자라느라,
국민학교 2학년이 학력의 전부이던 어머니.

사진=조현옥


처음
갈매못 성당 수녀님으로부터 격려받고 시작한
창세기 쓰기는, 정말 삐뚤빼뚤이었지요.
지금 많이 쓰셨네요. 


추도.
10가구가 전 식구이고
대여섯분이 사시는 섬.
게서 홀로 천주교 신자 생활을 하십니다.
어부였던 베드로 아버지를 보냈으니, 추도공소회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배시간에 쫒겨
어머니 일손 돕고
되돌아 나옵니다.
옆집 고추밭에선 한쪽 눈이 아픈 고양이 한마리가
배웅을 합니다.


안나할머니가 사셨던 가운데 빈 집의 꽃밭에는
서글픈 꽃무릇이 해보내기를 하고요,
어머니는 홀로 제 배웅을 나왔습니다.
유일하게 섬에서 그물 내고 주벜을 두는 효성이네 그물이
무거운 짐처럼 누워있습니다.


한가하지만
살짝 서운한 추석 저녁입니다.

 

조현옥 프란치스카
<현옥공소여행센터> 이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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